다 보긴 했지만 다 일부(?)만 본 온 둘째 날.
오늘도 아침부터 화창한 둘째 날. 대망의 만리장성을 가는 날이기 때문에 반드시 날씨가 좋아야만 했다.
만리장성은 정말 너무너무 크고 베이징에서 가장 유명한 몇몇의 코스는 정해져 있다. 사전 조사 시 만리장성 계단의 높낮이가 균일하지 않고 경사가 너무 가파르다 하여 나는 케이블카가 포함인 상품을 골랐는데 그렇게 해서 가는 코스는 대부분 팔달령이라 불리는 코스다. 가장 유명하고, 가장 번잡하여 늘 TV에 소개되는 그곳.
시내에서 버스를 타고 조금 외곽으로 달린 끝에 입구에 도착했다.
오늘은 금요일. 단체 무리들이 심상찮다.
(크기가) 얼마나 클까? (사람이) 얼마나 많을까? 가늠할 생각 하지 마세요.
가이드를 따라 케이블카를 타기 위한 줄 끝을 따라간다. 음? 여기가 끝이 아닌가? 끝인가 했던 줄의 끝은 끝이 아니었다. 저기 저기 저 멀리까지 서 있는 줄.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다. 가이드가 결단을 내린다.
"아. 안 되겠어요. 여기 줄 서면 몇 시간 있을지 모르겠어요. 여기서 걸어서 6-7분 가면 다르게 가는 코스가 있는데 그리로 갑시다."
아! 모노레일을 말하는 것 같았다. 케이블카 말고 모노레일도 있다 들었다.(패키지라도 웬만한 자유여행 객보다 힘들게 알아가는 자) 신기하게도 모노레일을 타러 갔더니 사람이 한 명도 없다. 도대체 무슨 차이인 걸까?
"저 사람들은 중국 시골에서 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에요. 그러니까 평생 케이블카를 한 번도 못 타봤다 말입니다. 케이블카 타는 것도 관광인 거예요. 그리고 중국 사람들은 줄 서는데 익숙합니다. 세 시간씩, 네 시간씩 기다려요. 한국 사람은 안 돼요"(가이드가 조선족이었으므로 억양을 살려 읽어주길 바랍니다.)
그렇다 한들 이렇게 차이가 날 정도인가? 내 생각에 모노레일을 타고 가는 구간은 가장 유명한 구간보다 조금 덜 유명한 구간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만리장성이 다 거기서 거기지. 게다가 그래서 사람이 많지 않았다. 성수기에 가면 사진은커녕 앞사람 목덜미만 보고 올라가야 한다고 했으니.
사실 너무 크고 모든 구간이 다 비슷하고, 너무 큰 데 한 프레임에 담을 순 없고 오히려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사진을 여기서도 찍고 저기서도 찍고 많이 찍었지만 결국 다 비슷비슷한 배경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다.
고지대라서 좀 추울까 걱정했는데 경사가 가파른데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니까 덥고 숨이 찼다. 여름에 가면 더위 조심이란 말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정확하게 관광지 냄새가 물씬 나던 곳들
조금 이른 점심을 먹고 용경협이란 곳을 갔다.
북경의 작은 계림이라 불리는 풍경구로 7km 길이의 협곡인데 계곡이 모양이 용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유람선을 타며 풍경을 감상하는 곳이다. 여기는 중국 사람은 거의 없다고 들었다. 진짜로 없었다.
가이드 말로는 입장료가 만리장성 세배인데 중국 현지인들은 이런 자연경관을 돈 주고 보지 않는다고 했다. 무슨 말인지 이해는 했다. ㅋㅋ 그런데 현지인은 고사하고 관광객 자체가 없어서 유람선 사람 채우는데 시간이 걸리려나 했는데 우리 포함 10명만 타고 출발했다. 한적하고 널널했다. 오히려 복잡한 만리장성보다 한국 사람들은 용경협 풍경을 더 좋아한다고 하는데 이미 북유럽 피오르드와 그리스 고린도 운하 협곡을 보고 온 엄마와 나는 감탄보다는 잠시 쉬면서 시원함을 만끽했다고 한다.
이어진 메인 관광지는 서태후의 여름별장인 이화원.
베이징에서 현존하는 황실 원림 중 건축규모가 크고 보존이 잘 되어 있고 자금성보다 더 넓다. 인공호수인 곤명호는 15년 동안 만들었고 여기서 파낸 흙과 돌은 그 옆자리에 위치한 인공 산인 만수산을 만드는 데 사용됐다고 하는데 상상이 되시나? 안된다. 봐도 안 됐다. 자금성은 공간 자체라도 넓었지 여긴 들어가는 입구와 공간이 한정적이라 사람이 더 많게 느껴졌다. 감상하고 느낄 시간이 안된다. 그냥 '아 크다. 크다. 크다'만 생각하게 된다.
사전 조사를 할 때도 그랬지만 진짜 막상 가보니 자금성, 만리장성, 이화원 모두 '크다'가 그냥 키워드이다. 여러 번 와서 여러 번 보지 않는 한 그냥 관광객으로서 방문하여 다 보는 건 불가능하다. 시도하지 마시라.
"나이는 비밀이에요." 중국어로 '비밀'이 떠오르지 않았던 게 못내 아쉬웠네.
많이 걸은 날 일정의 마지막에는 발마사지가 포함되어 있다. 사실 엄마는 그동안 한포진+내성발톱 등으로 1년 넘게 고생하고 있는 중이라 처음엔 마사지를 안 받겠다 하였는데 마사지 외 옵션을 선택하면 티눈제거, 굳은살 제거, 내성발톱 치료까지 해준다고 하여 마사지와 함께 치료를 받기에 이른다. (진단해 주는 사람이 만지니 어쩐 일로 아프지 않아 신기하다며 혹했다.)
결과적으로 아무도 관심이 없었던 우리 단체 5인은 아저씨 빼고 4명이 각자 발 진환을 가지고 있어 다 옵션을 선택했다. 나는 굳은살 제거를 했는데 사실 받을 정도는 아니었으나 진료와 함께 족욕에 좋은 티백? 도 함께 약으로 준다 하여 엄마에게 주려고 유료결제 했다.
밑져야 본전으로 한 건데 아직 굳은살 제거한 두 곳은 말랑말랑한 상태이고 무엇보다 내성발톱으로 오래 힘들었던 엄마는 그 이후로 발톱이 아직은 파고 들어가지 않는다며 신기해하고 있다.
"야야.. 이거 진짜 이대로 치료되는 거면 중국 가서 본전 뽑은 거야"라고 말하는 어무니. 그동안 남몰래 고생한 시간이 길었나 보다. (한국 피부과는 자랄 때까지 지켜보자+연고 처방이 전부라고..)
가이드는 중국이 그런 치료를 잘한다며 엄마보고 중국에 남으라고 했다.
발마사지의 시간은 나에게도 추억을 남겼는데 마사지를 하러 들어온 마사지사들은 대부분 20대 중-후반 아기같이 생긴 남자아이 들었다. 내가 드라마로 배운 중국어를 몇 마디 하자 내 담당 아이는 중국어를 할 줄 아냐, 몇 살이냐, 남자친구가 있느냐 묻다가 없다는 내 대답에 옆에 동료와 서로 '얘 어떠냐며' 발그레하게 웃었는데 그런 경험이 너무 오랜만이고 귀해서 나는 가슴이 벅차올랐다.
숙소로 돌아와서 나는 친구들에게 그날의 후기를 남겼다.
"야야. 20대 남자애랑 그런 얘길 했다니까. 아... 정말 너무 오랜만이었어. 기분이 좋았어. 대놓고 아줌마로 보였으면 남편 있냐고 묻지 않았을 거 아냐. 나 오늘 만리장성도 가고, 용경협도 가고, 이화원도 가고 되게 중요한 관광지 다 갔는데 그 후기는 하나도 없어. 오늘 가장 인상 깊은 건 그 남자아기가 나한테 남자친구 있냐고 물어본 거야."
이런 일에 기뻐하다니 진짜 주책맞게 나이 들어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