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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밟은 대륙. 중국 베이징(3)

대단히 본 건 없지만 할 건 다 한 셋째 날.

by yosepina

큰 관광지는 어제, 그제 다 갔다고 봐야 한다. 오늘은 약간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인 일정만 남은 상황. 베이징 여행 중에 큰 기대 포인트였던 금면왕조쇼는 9월 한 달 동안 취소가 되었다고 여행 직전에 통보받은 상황이었다. 원래는 오늘 쇼를 보는 날이었는데ㅠㅠ

그래서 소림무술쇼로 대체된다고 했는데 찾아보니 후기도 거의 없는 정도의 공연이었다. 금면왕조쇼와 비교가 불가능한 공연이지만 여행사 입장에서는 뭐라든 대체하려고 끼워 넣은 듯.

첫째 날 일정이 서커스였는데 가이드가 그래서 셋째 날로 변경했다. 서커스와 소림무술쇼를 보는 공간이 같았기 때문이다. 소림 무술쇼는 정말 재미없다고 가이드가 거듭거듭 말했다. 그냥 이 일정 빼고 다른 걸 하는 게 어떻겠냐는 은근한 회유이자 권유였다.


자유시간은 돈 쓰는 시간

첫 일정은 798 거리로 간다. 원래는 베이징 주변의 공장지대였으나, 가난한 예술가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면서 자연스럽게 갤러리 및 아틀리에가 형성되었고 현재는 베이징 현대 미술의 집결지로 발전하였다. 798은 이곳에 있던 공장의 일련번호에서 따온 것이다. 딱히 대단히 할 것이 없는 곳이었지만 쇼핑센터 방문도 없는 상품인지라 자유시간이 1시간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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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는 깨끗했다. 최근 몇 년 동안 베이징은 아주 깨끗해졌다고 했는데 실제로 그랬다.

때마침 이곳에 밀크티로 유명한 헤이티를 발견하고 들어갔다. 오리지널 밀크티와 요즘 뜨고 있다는 시그니처 다육포도를 시켰는데(다행히 영어 메뉴가 있었고 다육, 한자를 읽었다 ㅎㅎ) 나오는데 체감상 한나절 걸렸다. 밀크티는 대만의 밀크티와 달리 너무 우유맛이 나서 별로였지만 다육포도는 맛있었다. 많은 사람의 리뷰는 대체로 정확하다.

20250920_110343.jpg 밀크티는 너무 우유우유 했다. 다음에 먹을 일이 또 생긴다면 전 다육포도만요

자유시간이 주어지면 돈을 쓰게 되어있다. 편의점에 가서 마트에서 다 못 산 과자를 사려는데 결제해 주는 직원은 없고 키오스크만 있는데 언어는 중국어만 지원한다. 땀이 삐질삐질 난다. 알리페이 QR을 찍고 계속 나오는 중국어는 번역기 어플을 통해 겨우 결제했다. 그러고 나오다가 잡화점에 들른 엄마가 '이런 가방이 있네' 라며 하나 남은 가방을 집어 들어 결국 또 결제를 한다. 가격표가 없어서 사장 아줌마한테 얼마냐고 물으면서 중국어로 답할까 봐 또 두려움에 떨었다는 후문.

더 플레이스라는 곳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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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 3대 야경중 하나인 곳으로 LED 전광판의 예술적인 스카이비전+유럽풍의 복합 쇼핑몰이 유명한 곳인데 왜 또 대낮에 왔는가. 패키지의 한계다. 밤엔 올 수 없고 관광지라 끼어넣긴 해야 하니까. 그저 쇼핑몰로 가서 화장실을 이용한다. (중국은 아직 화장실이 힘들었는데 그래도 여긴 쇼핑몰 화장실이라 가장 괜찮았다.) 그리고 지하에 유명한 마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거기를 들른다. 와... 근데 키오스크 결제다. 그런데 또또! 중국어만 있다. 그래도 도움을 주려는 직원(인지 경호 직원인지 모르겠음)이 서성이고 있어서 도움을 요청하고 결제를 했다. 셰셰!!


관광상품을 보며 타인의 인생을 생각하다.

서커스를 보러 간다. 서커스라는 걸 맨 눈으로 본 적이 있던가. TV로는 본 적이 있는데, 어렸을 때는 기억이 안 나는데 커서는 본 기억이 없다. 볼 일도 없거니와.

신기하긴 한데 마음이 편하진 않았다. 성인도 있었지만 아직 너무 앳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저런 쇼를 하기 위해 도대체 몇 살부터, 하루에 얼마동안 연습을 하는 걸까. 저 아이들의 생계를 위해 쇼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하는 걸까, 수요가 없어져야 저런 아이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는 걸까.

관람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단체 여행객이었는데 우리를 제외하고는 거의 현지인 관광객이었다. 쇼 시작 전에 무척이나 소란스러워서 우리는 환호와 호응이 격렬할 줄 알았다. 웬걸. 시작하자마자 조용해지는 관객들. 박수도 안치고 환호성도 없다. 우리 한국인 일행 5명이 가장 열심히 응원했다. 같은 일행 아주머니도 그게 의아했는지 그 이유를 가이드에게 물었더랬다.

"아, 중국 사람들 손뼉 치고 소리 지르는 거 못해요. 대부분 시골에서 온 사람들이라 그런 걸 부끄러워해요. 마음은 있는데 표현하는 법을 몰라요. 배운 적도 없고. 연습이 안 돼 있어요. 특히 시골 사람들은. 도시 사람이랑 시골 사람이랑 애들 때부터 차이가 많이 나요."

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중국인에 대한 이미지였다.

20250920_155128.jpg 모든 무대 연출이 중국 스럽다.

먹고, 생각하는 것도 여행의 일부

저녁 일정은 전날 갑자기 변경되었다. 연길 출신인 가이드는 한국 냉면은 너무 맛이 없다며 새콤달콤 맛있는 냉면을 손님들에게 먹이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원래 일정에 있던 식당을 가지 않고 가이드가 개별로 예약한 쇼핑몰에 있는 냉면집을 방문했다.

드셔보시라고, 아예 다른 냉면이라고, 그리고 냉면은 꿔바로우와 세트로 먹어야 한다며 함께 주문해 주었고 엄마와 나는 비냉, 물냉을 하나씩 시켰다. 진짜 우리가 아는 냉면과는 아예 다른 음식이었다. 이것을 같은 '냉면'이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되나 싶을 정도로. 어쨌든 소규모 패키지여서 변동 가능했던 식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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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면보다는 오히려 비빔면 맛과 가깝다고 느꼈는데 그렇다고 비빔면은 아닌

저녁을 먹고 서커스를 본 장소로 다시 왔다.

가이드는 거듭거듭 재미없으면 보다가 나오라고 자신은 여기서 대기를 하겠다고 했다. 모두의 기대치를 낮춰놔서일까. 다들 중간에 나올 정도는 아니라고 했다. (사실 중간에 나온다는 게 실례 같아서 나는 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냥 뭐랄까 쇼의 내용보다는 어쨌든 저 무술쇼를 하기 위해 매일 같은 훈련과 연습을 하는 저 사람들의 직업의식이 어떤 것일까에 대해서 궁금해지긴 했다.(쓸데없이 F 감성 드러내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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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지 않았던 마지막 일정을 끝내고 이제 조금 친해진(이라고 해봤자 가이드+엄마+일행 아줌마) 일행들은 수다를 떨며 숙소로 돌아왔다.

내일은 아침 먹고 비행기를 타는 일정만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관광 일정은 모두 끝났다.

마무리 루틴처럼 어김없이 온천 욕조에 물을 받아 들어가 앉아 있으며 오늘 하루 여행을 복기한다.

사실상 반은 등 떠밀려 추진한 여행 일정이었지만, 그럼에도 여행의 시간은 늘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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