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고 기억하기. 넷째 날
오늘은 일어나서 체크아웃하고 공항 가서 비행기 타는 게 전부다. 일정이랄 게 없다. 마지막 짐 정리를 하고 일행 모두 같이 아침 식사를 한다. 아침을 먹는 동안 또 직원과 약간의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생성했다. 이틀 전에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직원의 일 처리 방식과 태도에 황당했었는데 두 번째가 되니 그러려니 하게 되었다. 수도의 이렇게 큰 호텔에서 서비스 마인드랄게 없는 직원과 영어 소통도 전혀 되지 않으니 답답하기 그지없었지만 그 부분에서 기대치가 크진 않아서 나중엔 허허 웃고 말았다. (아마 다른 국가에서 겪은 일이라면 리뷰를 남겼을지도) 중국 유학을 하고 돌아온 친구에게 얘기했더니 체크인 담당하는 직원 말고는 영어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 외 직원들은 지방에서 올라와 일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 부분의 개선은 아직 한참 걸릴 것이라고 했다.
나중에 생각하니까 웃겨서 다녀와서 주변 사람들에게 일화처럼 들려주었는데 다들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얘기하는 나만,
"웃기지 않아? 웃기지? 이게 다른 나라 호텔 직원이었으면 가능한 얘기냐고." 깔깔거렸다는 이야기
사람도 여행의 크나큰 부분
주말이라 호텔에서 결혼식이 있다고 했다. 이 정도 규모의 호텔에서 결혼하면 부자라고 했고, 그래서 신랑 신부가 탄 차량 외 7대가 비호하듯 호텔 입구를 지난다고 했다. 그리고 그 시간에 맞추어 폭죽도 터뜨린다나. 시간에 여유가 있어 우리도 그 광경을 기다렸다가 구경하기로 했다. 근데 기다리는 시간에 비해 터지는 시간은 잠깐인데 폭죽 소리가 너무 커서 귀가 아팠다. 여기서 본건 폭죽이 아니라 나흘 내내 함께 했던 기사님의 인성인데 가이드 말대로 흔하지 않은 품성의 사람 같았다. 용모는 범죄도시 악인 3쯤 나올 것 같은 떡대와 헤어 스타일을 가지고 계셨는데 굉장히 순박하고 섬세한 분이었다. 거리에서 우리가 조금만 버스를 기다리면 가이드에게 손님분들이 혹시 기다리셔서 화나셨냐고 물어보고, 가이드가 장난친다고 "내가 모르는 길인데. 너 우리 어디 다 팔아먹으려고 하는 거 아냐?"라고 하면 진심으로 받아 화들짝 놀라 그런 게 아니라며 손사래 치던 분.
이때에도 작은 사거리를 통제하고 있는 와중에 오지랖 넓게 지나가고 있는 노인 분들을 다 부축하고, 강아지가 있으면 폭죽 소리에 강아지 놀란다며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저분의 성품은 원래 저렇게 따듯한 분이구나 새삼 느꼈다. 엄마는 이 기사 한 분이 나라에 대한 이미지를 바꿀 정도였다고 했으니 나도 한국에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더 친절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기엔 영어를 잘 못해서 슬프다.(??)
아무튼 그래서 공항에 도착해서 팁도 드렸다! 셰셰!
갈까 말까 할 땐 무조건 가야 무조건 남는 것.
라운지까지 들러 잠시 쉬고 비행기를 탑승했다. 올 때에도 신청해 둔 특별 기내식. 어김없이 먹고 치우자마자 곧 착륙 방송 안내가 나온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한 비행기. 김포공항으로 마중 나온 아빠와 함께 엄마는 내려가고 나도 집으로 귀가한다. 비행시간이 짧다 보니 확실히 피곤도도 낮다. 일요일 오후 집에 도착해서 짐 정리까지 끝내고 나니 평소의 주말 저녁 같은 기분이 든다. 3박 4일 일정이 마치 잠시 잠들었던 낮잠같이 느껴진다.(낮잠 거의 안 자는 사람인 건 비밀)
2025년 인생의 한차례 폭풍이 지난 후 떠난 첫 여행지였다. 힐링이라고 하기엔 짧은 일정과 구성의 여행지였지만 늘 주장하듯 여행은 떠나는 순간이 시작이 아닌 가기 위해 마음을 먹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이 여행은 인생의 굴곡점을 겪기 전부터 시작해 괴로운 정점마다 현실을 도피시켜 주는 환기구 역할을 했다. (계획을 엎고 뒤집느라 잠시 현실을 잊었다.)
중국어를 할 줄 아는 친구와 함께 하지 않는 한, 다시 중국을 갈 일이 생길 것 같진 않지만 헤이티 다육 포도 음료는 다시 먹어보고 싶고, 보지 못한 금면왕조쇼는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는다.
하긴... 여행지를 떠나올 때 단 하나도 아쉽지 않은 적이 있었으랴. 모든 여행은 그러므로, 그 부족함으로, 그 못다 함으로 더 기억에 남게 되는 것이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