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의 어느 저녁, 클래식 공연을 보기 위해 예술의 전당으로 향했다.
평일 저녁의 교통 상황을 고려해 일찍 출발했지만 시간의 압박 때문인지 그날따라 유독 더 차가 막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렇게 엑셀과 브레이크를 반복하며 버스의 엔진이 만들어 내는 파도 위에 올라타 시도 때도 없이 핸드폰 잠금화면을 켰다 끄기를 반복했다.
결국 지각했다.
공연 시작은 7시 30분이었고, 나는 7시 35분쯤에야 헐레벌떡 공연장에 도착했다.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오늘 총 3곡이 연주될 예정이었고, 다행히 두 번째 곡이 시작되기 전 공연장에 들어갈 수 있다고 했다.
'언제 들어가지..?', '차가 막혀서...' 여러 복잡한 생각과 다급한 마음으로 큼직한 공연장 문 앞에 서있는데,
클래식홀 공연 내용을 실시간으로 보여주는 문 옆 TV 앞에 자리 잡고 앉아계시는 한 여성분을 보았다.
그 여성분은 집에서 손수 내린 커피가 담긴 텀블러를 옆에 두고, 직접 준비해 오신 방석에 앉으셔서 편한 복장으로 지금 연주되고 있는 공연을 공연장 문 앞 벤치에서 감상하고 계셨다.
공연의 첫 연주곡이 들리지 않던 나는 그제야 문 틈과 스피커 사이로 빠져나오는 연주를 들을 수 있었다.
저분이 '찐' 이시구나. 저분은 길가에서 우연히 들려오는 쇼팽의 곡에서도 자신이 찾는 기쁨과 환희를 보실 수 있을 것 같았다. 어떤 것을 사랑할 때에는 어떤 좌석에 앉아 공연을 보는지 보다 훨씬 더 중요한 본질적인 것들이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 삶의 여러 면에서 점점 더 그 본질적인 것이 희석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종종 느끼는 요즘.
실제로 하는 일보다 그 명함에, 실력보다는 이력에 더 쉽게 눈이 간다.
하지만 여러 번의 질문과 숙고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결국 중요한 것은 본질이라는 생각이 든다.
공연이 끝난 후, 좋은 좌석에서 오늘 공연을 봤던 그 어떤 사람보다 그분께서 이 시간을 더 온전히 즐겼을 것 같은 느낌은 착각일까.
바쁠수록 그리고 마음이 급해질수록 본질보다는 껍데기에 마음이 가게 된다.
침전물이 내려앉고 껍데기는 증발되어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차근차근 세심히 내 삶을 마주해야겠다.
PS) 약간의 질투심(?)과 함께 가르침을 주신 이름 모를 그분께 감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