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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공학도 Apr 28. 2024

[글감] 변화에 대하여2 (feat. 초심)

#0. 학부 때 교양과목으로 두 번의 문학 강의를 들었다. 첫 번째 과목은 한국 문학 수업이었는데, 나혜석 작가의 '경희'를 시작으로 평소에 접하지 못했던 작품들을 교수님의 가이드를 따라 한 학기 동안 읽어가는 것은 꽤 인상적인 경험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매주 새로운 작품을 읽고 다양한 생각을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다.


#1. 그 당시 나는 따로 톨스토이의 그 유명한 '안나 카레리라'의 거의 끝부분을 읽어가던 참이었는데,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어떻게 세세하게 계획하고 썼을까' 궁금해하면서도 동시에 감탄하던 중이었다. 그래서 문학 교수님께 수업이 끝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이런 내 감탄(?)을 조금 더 일반화하여 질문을 드렸었다. 


"모르겠네요, 그래서 천재인가? 그런데 사실 톨스토이도 그 소설의 모든 것을 처음부터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은 아니지 않을까요?"


#2. 이야기의 첫 시작은 작가가 열었지만, 이후 이야기는 마치 생물처럼 자라나기 시작해 이야기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고 그 속에서 캐릭터가 작가의 손을 빌려 구체화되고 점점 입체적으로 발전해 간다. 다만 작가는 큰 틀에서의 방향이 틀어지지 않게 파수꾼이 되어 각 캐릭터와 이야기의 대리인으로 이를 기록한다. 점에서의 환경은 점점 시간이 지나며 계속 그 문맥이 달라지기 때문에 이야기와 캐릭터는 또 다른 변화를 계속해서 도모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달라진 문맥 속에 왠지 모를 어색함이 쌓여간다.  


#3. 따라서 초심이라는 것도 그때의 상황에서 받아들인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기준으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항상 초심을 유지해야 돼'하는 것도 올바른 방향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어쩌란 말인가...? 이 애매모호한 지점에서 선택의 어려움과 고뇌가 늘 발생하는데, 우리는 살면서 적당한 YES와 적당한 NO를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 과도한 YES는 나의 시간과 취향을 지키기 어려워지고, 과도한 NO는 내가 아직 접하지 못한 우연한 재미들과 경험을 쉽게 놓쳐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즉, 과도한 YES는 나를 지키기 어렵고, 과도한 NO는 새로운 나를 만나기 어렵게 한다. 그런 면에서 좋은 변화란 큰 틀의 방향은 잡아두되 작은 방향으로의 그 모든 것까지 세세히 통제하려는 마음을 살짝 내려놓는 것이 아닐까. 사실 그렇게 할 수도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해 집중하되 나를 조금 더 가볍게 유지하는 것.


언제나 말은 쉽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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