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법륜 스님의 즉문즉설 영상을 보았다. 딸이 시집을 안 가서 고민이라는 한 어머니가 스님에게 딸에게 시집가라고 말 좀 해달라고 요청했다. 스님은 정색하며 “내가 당신 하수인이요?”라고 반문했다.
딸이 시집을 가고 안 가고는 딸 마음이라고 스님이 방금 말했는데도 그 어머니는 ‘당신이 영향력이 있는 유명 스님이니 내 딸을 설득하는데 당신 힘을 좀 빌려 쓰고 싶소, 그러니 내 생각을 당신이 대신 말해주시오.’라는 듯이 뻔뻔하게 요청한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자신의 하수인, 졸개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짧은 생을 살아온 나도 그런 사람들을 자주 만났고, 지금도 만난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을 타인이 실행하도록 설득하거나 부탁하거나 심지어 강제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이 그렇게 말했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입단속까지 한다.
이들의 사고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내 생각에는 네가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는 게 너에게 좋으니 네가 실행하거라’이다. 사실은 본인이 원하는 상황이나 행동이지만, 자기가 직접 창출하는 것은 여러 이유로 원치 않으므로 타인에게 무임금 용역을 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심해지면 가스라이팅이다.
이들은 그렇게 상대를 종용한 후에 결과를 지켜본다. 결과가 좋으면 사실은 자신이 제안한 것이라고 공을 가로채고, 결과가 안 좋으면 시치미를 뚝 뗀다. 개중에 그나마 양심적인 자는 공이 생겼을 때 가로채지는 않더라도, 네가 내 말을 들은 덕분에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가 발생하지 않았느냐며 다음번에도 상대가 자신의 지시를 실행하는 게 좋을 거라는 식으로 가스라이팅을 한다. 자신의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며 말이다.
혹시 결과가 좋지 않아 졸지에 비난을 받게 된 하수인 피해자가 진실을 폭로해도 오리발을 내민다. 자신이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아이디어 교류 차원이었고 실행에 대한 책임은 피해자에게 있다고 주장하면서 말이다. 스릴러 영화를 보면 유력 정치인이나 조폭 두목들이 졸개들을 시켜 적을 공격할 때 전형적으로 이렇게 행동한다. 아주 야비하고 교활한 행동이다.
위에서 소개한 어머니의 사례에서 만에 하나 법륜 스님이 어머니의 부탁을 받아들여 딸에게 시집가라고 종용한 후에 행여 딸이 가출이나 자살이라도 했다면, 그 어머니는 분명 법륜 스님을 탓하고 원망하며 소문을 냈을 것이다. 내가 비록 부탁은 했지만(이 사실도 얼버무리거나 숨길 가능성이 농후하다), 네가 뭔가 말을 잘못했으니까 내 딸이 이렇게 된 게 아니냐고 말이다. 전문용어로 ‘꼬리 자르기’다. 반대로 딸이 법륜 스님에게 설득되어 시집을 갔다면, 자신에게 공을 돌릴 가능성이 높다. 내가 법륜 스님까지 찾아가서 부탁드린 덕이다, 하고 말이다. 인간이 그렇다.
대개는 직장 상사나 집안 웃어른, 혹은 사회집단의 선배나 리더, 배우자나 연인 등 내가 쉽게 거절하기 힘든 사람들이 내게 이런 공작을 벌인다. 나는 현명하지 못하고 어리숙했기 때문에 성인이 되고 나서도 25년가량 하수인이 되는 경험을 반복하다가 어느 날 두 번 다시 타인의 하수인으로 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고 다짐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나를 하수인으로 삼으려는 이러한 공작은 선의의 부탁이나 대의명분을 위한 협조 요청 등으로 탁월하게 위장되어 오기 때문에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하수인이 되지 않기로 결심한 이후로도 울며 겨자 먹기로 몇 번 실행을 한 적이 있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차이가 있다. 도저히 거절하기 힘든 상대로부터 은밀한 용역 요청을 받아 어쩔 수 없이 실행하게 되었을 때는 직간접적으로 반드시 그 사실을 상대에게 밝힌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요청할 때 나는 내가 왜 상대에게 그런 요청을 하는지, 즉 애초에 누구의 어떤 부탁이 있었는지, 상대가 전후 사정을 알 수 있게끔 용역의 원천 발주자와 그의 의도를 밝힌다. 상대가 진실을 알 정도만큼은 자세하게, 그러나 원천 발주자가 너무 마음이 상하지는 않을 정도로 진실을 드러내는 고도의 줄타기 균형잡기 기술이 필요하다.
물론 이러면 원천 발주자는 싫어한다.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마치 나 자신의 고유한 아이디어인 것처럼 내가 말하고 행동해 주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네가 내 생각과 말을 따라서 행동하면 좋겠다, 잘되면 내가 말해준 것이라고 밝혀도 좋지만 잘못되면 네 책임이다’라는 뻔뻔한 태도인 셈이다. 그렇게 어떻게든 자신의 존재와 용역 발주 사실을 숨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나는 이 점에서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직장 상사든, 집안의 어른이든, 죽마고우이든 아내든, 혹은 염라대왕이나 예수님이나 부처님이 나타나서 명령하거나, 10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가 무덤에서 벌떡 일어나서 부탁하더라도 차라리 그 자리에서 혀를 깨물고 죽을지언정 그 부분만큼은 따르지 않을 작정이다. 내 삶은 내 것이다. 하수인의 삶은 삶이 아니다. 그것은 노예의 길이다.
오래전 다녔던 작은 회사에서 겪은 일이다. 프랜차이즈 회사였는데 장사가 잘되지 않자 가맹점 점주들과 본사의 사이가 불편해졌다. 결국 점주들의 요구로 점주와 본사 운영진의 대화 자리가 마련되었다. 본사 대표는 회장과 사장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주들과 회장과의 사이에 불만스러운 언사가 오고 가다가 흐지부지 모임이 끝났다.
흥미로운 일이 생긴 건, 뒤풀이 자리에서였다. 사장은 모임에 수행한 팀장들을 나무라는 듯이 가스라이팅을 했는데, 요지는 아까와 같이 회장님이 공격받는 상황에서 본사 팀장이라면 점주들의 발언을 방해하거나 반말, 혹은 욕설이라도 써서 적극적으로 반격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그래야 마땅한 도리인 것처럼 말하던 술로 붉어진 그의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사장은 그것 말고도 사내에서 여러 가스라이팅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모자란 것인지 몇 사람만 거치면 금방 탄로날 거짓말이나 가스라이팅을 남발해서 뒤에서 직원들의 비웃음을 사기 일쑤였다. 아, 그의 여성 편력이라고도 할 수 없이 애처로운, 예쁜 여직원들을 향한 그의 구애 행각을 차마 밝힐 수 없는 것이 정말 아쉽다...ㅎㅎ
부탁드리고 싶다. 남을 하수인으로 삼으려는 시도를 멈추라. 또한 누군가가 나를 하수인으로 삼으려고 할 때 그의 교묘함보다 더 정교한 교묘함을 발휘해서 자신을 지키시라. 그것은 자기 인생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다.
그런데 모든 인간은 사실 하수인이다. 타인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하수인이다. 세상에서 제일 교활하고 교묘하고 무서운 것은 사람의 마음이다. 마치 영리한 개가 어리숙한 주인의 심리를 교묘하게 조종해서 자신이 원하는 간식이나 산책을 얻어내는 것처럼 사람의 마음은 그 마음의 주인조차 속이고 조종해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한다.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주인도 속이는데, 타인이야 말할 것도 없다.
대부분 사람이 모르는 진짜 문제는, 마음이 단일하고 통일적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단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무수히 많은 주장과 믿음과 고집과 관념들이 모여서 악다구니를 쓰는 도떼기시장과 같다는 점이다. 지옥도도 이런 지옥도가 없다. 어떤 날은 이랬다가, 다른 날은 저랬다가, 또 다른 날은 이도 저도 다 집어치우고 가만히 있는다. 제 눈알을 빼줄 것처럼 누군가를 사랑하다가 수틀리면 돌변해서 칼부림한다. 그게 인간이다. 그게 나다.
남의 하수인이 되지 않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 내가 내 마음의 하수인이 되지 않는 것은 그것보다 백만 배쯤 더 중요하다. 내 마음은 내 것(즉 나의 소유)이고, 나는 내 마음이 아니다. 내 마음에서 한 발 떨어져서 살펴 보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진정한 마음공부의 시작이다. 타인에게 속지 마시라. 내 마음에도 속지 마시라. 속아 사는 삶은 가짜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