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obody Oct 19. 2022

모카 포트 중독자 이야기

아침에 일어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카푸치노를 마시고 싶어서다. 모카 포트로 만드는 커피는 엄밀하게 따지면 에스프레소가 아니라고도 하지만 내 입에는 웬만한 에스프레소보다 맛있다. 카푸치노로 마시면서 커피맛을 알긴 하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사실 우유도 까다롭게 고르는 편이니 우유맛일 수도 있다. 심지어 언제나 설탕도 한 숟갈 넣는다.


아무튼 매일 눈 뜨자마자 커피를 끓인다. 세수하는 것처럼 동작이 몸에 배어서 로봇처럼 같은 순서로 1초의 시간 낭비도 없이 설탕 넣은 우유를 데우고, 그동안 원두를 갈고, 포트에 물을 채우고, 분쇄된 커피를 바스켓에 채우고, 가스불에 올린다. 두 번째 잔에 든 우유가 1분 30초 데워지면 거품을 내고, 그러고 나면 푸칙, 쏴~ 하고 커피가 추출된다. 거품이 떠 있는 우유에 부으면 카푸치노 완성. (이 순서도 내 마음대로다.) 보통 두 잔을 만든다. 남편이 어쩌다 없으면 4컵 대신 2컵용으로 만들어 혼자 마신다.


비알레티 브리카에서 추출되는 커피






예전에는 빨리 마시고 한 번 더 만들어 마시기도 하고 점심 먹고 또 만들어 마실 때도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 카페인에 더 예민해지고 속쓰림도 생기다 보니 이제 눈뜨자마자 마시는 투샷 카푸치노가 하루에 마시는 커피의 전부다. 그래서 그 시간과 맛이 더 소중하고, 절대 원샷하는 법이 없다. 보통 20-30분에 걸쳐서 천천히 즐긴다. 반평생 신문을 보면서 아침 커피를 마시다가 작년부터는 이메일을 읽거나 책을 보면서 마신다.


2007년 호주에서 처음 모카 포트를 사용할 때에는 가장 오래된 기본형 비알레티 Bialetti 모카 엑스프레스를 썼는데, 6컵 짜리였다. 내가 두 잔, 남편이 한 잔 마셔서 아침에 둘이 마시는 우유만 해도 1리터 가까웠다. 몇 번 태우고 포트도 한 번 바꾸면서 쓰다가 비알레티 브리카 Brikka를 알게 되었다. 커피마니아 친구가 알려준 덕에 크레마의 신세계를 경험하고는 브리카 숭배자가 되어 집에 있던 그저 그런 에스프레소 머신도 누군가에게 줘버렸다.


그런데 브리카에는 문제점이 좀 있었는데, 일반 모카 포트보다 더 정확하게 만들어야 커피가 잘 나왔다. 원두 분쇄 정도, 원두 양, 물 양 등이 조금만 틀리면 제대로 추출되지 않을 때가 가끔 있었다. 시간이 됐는데도 안 나오고 있다가 갑자기 화산 폭발 같은 소리가 나면서 용암처럼 커피가 분출되어 가스레인지 위로 쏟아져 나오거나 커피가 나오다 말아 아주 쓰고 크레마 없는 커피가 1인분만 나올 때가 있었다. 윗부분에 있는 밸브를 살짝 건드려 주면 나오기도 했지만 일단은 모든 과정을 정확하게 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차츰 브리카 로봇이 되어갔다.


그런데도 브리카는 몇 년이 채 안 돼 말썽을 부렸고 가스켓 (고무 패킹)을 교체해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 내가 추천해서 브리카를 샀다가 추출 실패를 몇 번 겪은 친구가 나한테 거의 새것인 브리카를 넘겼는데, 그 포트를 한참 잘 썼다. 그러다가 최근 들어 작동이 잘 안 되는 사태가 일어나 또 가스켓부터 갈고 구연산으로 스케일링도 해봤지만 큰 효과가 없어서 2020년형 브리카를 새로 샀다. 신형이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것이 브리카는 출시 이후 몇 번이나 바뀌었다. 원래 사용하던 브리카가 뉴브리카였는데 그것도 그 전 모델과는 모양이 약간 달랐다.

2020년형 브리카





이번에 크게 달라진 점은 아래쪽 물탱크 부분이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고 포트 윗부분에 있던 밸브가 사라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고 작아져서 없는 것처럼 보인다, 크레마가 더 잘 생긴다고 하지만 새 포트라 잘 생기는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예전 브리카들과 비교를 해보니 바스켓이 턱도 없이 얇아졌고, 전체적으로 가볍고 얇아져서 허깨비가 된 것 같다. 물탱크는 몇 년 전에 산 2컵 브리카에서부터 검은색 칠이 되어 있었다. 그래도 그것은 윗부분 밸브와 H2O라고 양각으로 새겨진 물 표시선은 있다. 2020년형에는 물 표시선 자체가 없고 얇은 플라스틱 계량컵이 하나 들어있다. 부엌 공간만 차지하는 계랑컵보다는 양각 눈금이 훨씬 편리했는데 이런 개악은 분명 원가 절감 때문이었겠지만 말이다.


왼쪽부터 2020년형 브리카 - 몇 년 전 뉴브리카 - 그 이전에 나온 브리카


달라진 점이 또 있는데, 물 양이 약간 늘어나 4컵용에 180ml를 넣게 되어 있다. 전 모델에는 140ml 넣었다. 따라서. 추출되는 에스프레소도 강도가 약간 약하면서 양은 약간 많다. 추가 밸브가 달라졌음에도 크레마는 비슷하게 잘 생기고 맛도 크게 달라지지 않아 일단 만족하면서 마신다. 추출이 안 되는 것 같을 때 밸브를 톡 건드려 줄 수 없기 때문에 무작정 기다려야 하고 추출 시간이 20-30초 정도 더 걸린다는 단점도 있다.


진하기로 따지면 2컵용 브리카에서 나온 커피가 낫지만 오래돼 그런지 아주 약간 텁텁한 뒷맛이 있고, 적응이 되어 그런지 2020년형 브리카 맛이 더 깔끔해서 좋다. 깔끔하고 맑은, 그러나 크레마가 덜한 커피는 브리카 아닌 일반 비알레티에서 맛볼 수 있지만 말이다.


디자인을 따진다면 알레시가 한 차원 위에 있다. 매일 사용하고 보는 물건인데 예쁘고 독특한 시각적 효과 덕분에 기분은 좋겠지만 브리카 포트에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기가 어려워 당분간은 관상용 포트가 될 것 같다. 브리카가 이제 시커먼 치마를 입은 듯한 모습이지만 예쁜 드레스를 차려입은 것 같으 알레시보다 사랑스럽다. 알레시는 사용을 잘 안 하니 반짝이는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할 가능성이 크고, 그래서 심미적인 즐거움을 계속 줄 것이다.




기본적으로 모카 포트는 알루미늄 재질이라 건강에 별로  좋다는 설 때문에 예전에 사놓은 스테인리스 모카 포트도 있지만 커피맛과 추출 속도가 알루미늄 포트보다 못해서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인덕션 레인지가 대세인 요즘에도 가스레인지를 고집하는 이유도 모카 포트 때문이다.


아침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모카포트가 있어서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일이 그다지 괴롭지 않으니 1933년에 지금과 같은 형태의 모카포트를 처음 발명한 이탈리아인 알폰소 비알레티 Alfonso Bialetti에게 감사와 찬사를 바친다. 브라보!


작가의 이전글 아빠의 향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