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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파랑 Jan 04. 2023

현대미술관 방문기

아이와 함께 현대미술 따라잡기

2014년 어느날 우연히 국립현대 미술관 사이트에 방문했다. 

아들과 나는 종종 선희네를 만나러 경복근 근처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놀러간다. 선희씨도 나도 동갑내기이지만 아이들도 동갑이고, 우리들은 다른 곳보다 전시관을 선호했다. 선희씨는 상명대 후문에 거주하고 있고 나는 경복궁 옆 서촌에서 잠원동으로 이사했다. 우리가 만나는 곳은 나름 중간에 위치한다. 


국립현대미술관_서울관이 개관한지는 몇년 되었다. 나와 함께 일했던 M 건축가들이 오픈 전시에 초대되어 참여했다. 2010년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았던 나는 엄마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미술과 건축 프로젝트에서 배재되었다. 나는 일이 정말 하고 싶었지만, 내 마음은 자꾸만 거리를 두었고 내 체력은 아이를 돌보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아쉬운 마음은 주최할 수 없이 커져갔지만 나는 방법을 몰랐다. 알았다 한들 체력과 환경에서 박차고 나올 에너지가 부족했었다. 


결혼 후 남편과 나는 작은 사업을 시작했지만 실패했다. 그런 연유로 각자의 나라에서 잠시 떨어져 지내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의 여유가 찾아왔다. 나는 우연히 국립현대 미술관 사이트에 접속이 되었고, 우연하게 기획자 교육에 참여하게 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나는 오전 시간을 틈타 3호선 지하철을 타고 안국역으로 향했다. 종종 경복궁 역에 내려 아들과 거닐었던 경복궁 안 쪽 은행나무 아래에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오래되고 커다란 은행나무를 지나 경복궁 터를 가로질러 현대갤러리를 거쳐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걸어가는 것을 좋아한다. 30여명 되는 참가자와 함께 국립현대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자신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했고, 과천에서 서울로 이사오게 된 이유도 밝혔다. 종종 외부 강연자를 초대했는데 그곳에서 처음 유영만 교수님의 강연을 듣게 되었다. 언어의 마술사인 그는 단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자신을 설명했고, 그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자신이 가지고 노는 단어들로 생각의 전환을 강조했다. 나는 종종 느끼곤 했다. 예술이라는 것은 생각이 전환되거나 다른 생각이 끼어들거나 기존의 틀을 깨부수며 발전했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기에 다른 생각은 중요하다고 하지만, 성장해 오면서 어른들에게서 혹은 학교에서 배운 것들은 온통 규제와 복종 혹은 군중심리 등 사회속 규칙들 뿐이었다. 그러한 생각에 힘들었고 외로웠던 나는 이런 강의를 들을 때마다 혼란스러워 하곤 했다.


5회 정도의 강연을 들었다. 그리고 서촌을 산책했다.

신혼시절 2년간 살았던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이라는 동네는 마치 시간이 멈춘듯한 서울이다. 나의 경력도 그곳에서 멈춰버렸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했고, 아름다운 아들을 얻었다. 그 아이의 눈과 표정에서 한없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존재를 만날 때마다 피곤에 쩔었지만 웃을 수 있었고, 남편과 소통은 어려웠지만 행복한 시절을 보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좁은 길, 아들이 아장아장 걸어다녔던 골목 사이사이를 지나쳤다. 그곳에는 작고 귀여운 소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많다. 작은 것에 감동하며 오래된 골목길에서 유명 건축 사무소도 발견하고 플랜트 상점과 악세서리 가게 그리고 전시공간들을 차례로 들려본다. 소중한 시간이기에 아낌없이 나에게 다름을 선물한다. 기존 어른들이 내게 주었던 정답대신에 나만의 생각들을 차분히 발에서 다리로 그리고 배를 통해 가슴 그리고 눈과 함께 머릿속에 저장한다. 그러면서 다시금 마음에서 속삭인다. 효선아 너는 괜찮아, 너가 원하는 삶을 살아도 돼. 




그로부터 10년 정도의 세월이 흘렀다. 마음속 갈등들이 많은 경험으로 인해 이해가 되기도 했고 사라지기도 했다. 예전에는 5:5였다면 지금은 8:2 정도로 나의 갈등은 많이 해소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조금씩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다시한번 힘차게 걷는다. 


오랫동안 켜켜이 쌓여버린 껍질같은 습관들을 떼어내기 위해, 나는 오늘도 미술관을 찾는지 모르겠다. 아들과 함께 하고자 하는 이유는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철학적 고민을 시각적 언어로 받아들이는 것이 나에게 가장 쉬웠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아들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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