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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파랑 May 23. 2023

인생 주기와 주체성

40대 여성 창업가 이야기 _ 나는 왜 일하는가?


2010년 아름다운 아들을 출산했다. 한 생명의 탄생은 크나큰 축복이고 행운이자 행복이었다. 내가 엄마가 되다니, 대단한 인생의 과업을 성취한 기분이었다. 아들의 양육에 집중하고 현실적인 부분은 남편이 해결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결혼 전 9년을 쉬지 않고 일이 전부인양 바쁘게 삶을 살았기에 스스로가 주는 여유로운 시간이 정당하다고 여겼다. 결혼 전 작은 디자인 기획 사무실을 운영하고 있었다. 신혼살림을 위해 사무실을 빼고 2층 양옥을 구했다. 1층에서는 업무를 보고 2층에서 신접살림을 위해 사무실 전세금을 신혼집으로 이동했다. 2009년 마침 큰 프로젝트들을 연거푸 끝내며 조금 쉬었다 가는 시점 혼인 신고를 했고 이사를 했다. 오랫동안 일은 하고 있었지만 진정한 독립을 못했기에 행복의 순간 변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여성의 혜택이자 걸림돌은 출산과 양육이지 않을까. 배가 꽤 불러 업무상 외부 미팅에 참석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남자들이었고, 장난으로 놀리긴 했지만 나는 창피했다. 몸 여기저기는 퉁퉁 부었고, 화장을 해도 연하 남편과 함께 쇼핑이라도 할 때면 나에게 부여되는 이미지는 가혹했다. 부부로 보이기보다는 누나 동생 혹은 엄마와 아들까지. 부모의 반대를 꺾고 결혼했던 나는 임신 과정 중에 알 수 없는 수치심을 종종 느꼈다. 어쩌면 준비 없이 빠르게 아이를 가지게 된 에 대한 후회까지도... 그 후 육아의 시기를 거치며 수없이 마딱드려야 했던 무기력과 체력의 한계는 좀처럼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울 수가 없었다. 여러 가지 이유로 경제적인 부분을 남편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이도 어렸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온 지 5년, 학생 신분이었기에 우리 둘은 생각보다 문제 해결 능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내 결혼의 목표는 친정 탈출이었는데... 출산 후 산후조리로 친정에 머물며 변화하는 삶 속에서 자꾸만 후회가 맴돌았고 죄책감이 올라왔다. 모성이 하늘을 치솟을 때, 불안감이 고조되었고 어떠한 도전도 원치 않았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나는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스스로를 옭아맸다.


엄마가 된 후 9년 정도의 시간을 보내며 결혼 생활에 대한 엄청난 시행착오 경험했다. 한없이 깊었던 우울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결혼 10차가 되어갈 즈음 자기 계발을 시작했다. 시간이 흘러 작년부터 여성들과 독립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4년 전부터 하나하나씩 프로젝트를 내 힘으로 일궈왔다. 하지만 진짜 세상에 나 혼자 해내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여전히 부모님과 남편에게 의지하고 있다. 어찌 되었건 출산 후, 내 능력을 활용해 돈을 벌기 시작했다. 태어나 네 번째 창업 시도 중이다. 나는 여성학자도 아니고 페미니스트도 아니다. 다만 오빠와 남동생 사이에 둘째 여자 아이로 태어나 피해의식을 가지고 성장했다. 아주 오랫동안 품고 있는 부정적 정서이다. 게다가 애교가 있고 섬세함의 여성성보다는 대담하고 용기 있는 남성성을 내 안에서 더 자주 발견하기도 한다. 교육과 사회적 시선 그리고 부모님의 무의식 안에서 내가 가진 기질은 항상 거부당했기에 나는 꽤나 고집스러웠다. 유교적 시선은 자꾸만 나를 패배자로 몰아갔고 공허감만 선사했다.


최근 3~4차례 정도의 독립출판 제작 경험으로 1년 만에 나의 주제를 가지고 강연도 하게 되었다. 결혼 후, 경력단절로 인해 얼마나 간절히 나만의 주제를 다시 찾고 싶었던가... 그 고민의 시간은 참으로 길었다. 그 강연의 타이들은 '독립출판으로 독립하기'였다. 내가 결혼 후 상실했던 것은 주체성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알고 있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무의식 중에 결혼과 함께 자신을 잃어버리는 상황은 오래된 사회적 인식과 그동안의 공교육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유교 문화권인 우리나라에서 어쩔 수 없이 흐르는 심상이다. 강연을 준비하며 나만의 인생 곡선을 그려본다. 탄생의 순간을 기준으로 0점으로 시작한다. 묘하게 저점에 머물렀던 유아기 시절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과 중1 때까지 높은 지점을 머물며 완만하게 상승 곡선을 그리다가 사춘기 때는 하락한다. 그 후, 사이클은 다시 올라오며 20대 중 후반, 결혼 전까지 최고점을 찍고 밑도 끝도 없이 하강했다. 준비 없이 한 결혼 직후 임신, 그리고 출산으로 연결되는 시점 무의식적으로 3년간은 일을 당연히 쉬어야 했다. 그것은 기준점 0점에 있는 땅을 파고 늪에 빠지는 계기가 되었다.


운 좋게도 21세기가 시작되던 시점 나는 찬란한 20대를 경험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대학시절부터 다양한 외국인들과 교류를 했던 경험은 습관적인 시각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로부터 20년 정도가 흐른 현재, 젊은이들의 사고에 많은 변화가 찾아왔다. 온라인 세상과 핸드폰 사용은 개개인의 국제 교류를 단 몇초만에 가능하게 했다. 이러한 세상은 우리 모두에게 관점의 전환으로 작용됨이 분명하다.

1999년 1년간 파리에 거주할 때, 서울에서부터 친분이 있었던 프랑스인 친구 한 명이 내게 말했다.

"한국의 가장 좋은 것은 '여자'야!"

남자가 말하니 당연히 이성적으로 여성을 칭찬한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때부터 오랫동안 생각해 왔고, 개인적으로 한국 여성들의 열정과 에너지가 특별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많은 여성들의 독립이 필요한 시점이 어쩌면 바로 지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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