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니다. 편집위원 야자수, 조약돌
2024년 3월 20일과 21일. 이틀 동안 신촌캠퍼스 학생회관 앞 공터에서 낯선 축제가 열렸다. 백양로에는 보통 총학생회, 총동아리연합회 주관으로 축제가 열리고, 학생회관 앞은 주로 은행사나 FnB 부스가 열렸는데…
이것은 바로 제 4회 인권축제 <오늘부터 우리는>!
5 년만에 인권축제가 개최됐다. 코로나 시기 입학한 20학번 이후로는 처음 보는 형태의 축제일 거다. 제4 회라고 해서 역사가 짧은 것 같지만, 인권축제와 같은 ‘문화제’는 1997년부터 총여학생회(이하 총여) 주관으로 열려 ‘여성제’, ‘반성폭력 문화제’, ’섹슈얼리티 문화제’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려 왔다. 다만, 2017년부터 ‘인권축제’라는 이름으로 불렀던 것이다. 총여학생회가 주관한 여성제가 아니더라도, 과거 총학생회 주관의 등록금 촛불문화제, 상경 경영대 학생회 주관의 교육 문화제, 총학&총여&장애인권동아리 게르니카 연합 주관의 장애인권문화제, 노수석 열사 추모 문화제 등이 있었다. 이렇듯 대학 문화제란 학생들이 학생 사회에 전하고 싶은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고 학내 여론을 활성화하고자 기획/운영하는 행사다. 그런 의미에서 아카라카와 동아리 박람회와는 또 다른 성격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혹자는 문화제라는 학내 여론 형성 방식이 꽤 생경하고 고전적인 방식처럼 느껴질 거다. 2024년의 우리에게 학내 여론은 에브리타임이라는 온라인 공간이 전부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 시절은 온라인이 활성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선택한 방법이 ‘문화제’일 수 있다.
학교 안에서 대면으로 ‘논란거리’가 될 만한 이야기는 금기시되고 있다. 그럼에도 꾸준히 ‘백양로’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이를 이야기해야 하는 이유는 정상성으로만 둘러싸인 사회에서 거부당한 몸이 경험하는 모든 순간과 정동은 결국 일상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권위 있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혹은 강한 응징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대학에서 새로이 만나는 관계 맺음에서, 안전하고 평등한 공동체 문화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백양로 위로 다양한 모양을 하고 있는 삶들을 초대했다.
연세대학교 제 4회 인권축제 기획단은 학내 인권 관련 자치단체들이 모여 기획했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 연세대학교 중앙교지 연세편집위원회, 연세대학교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컴투게더, 통일연세 중앙농활추진위원회, 연세대학교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연세대학교 마이너리티 공동체 마실, 문과대학 자치언론 문우편집위원회, 문과대학 여성주의문학회 광대버섯스프클럽, 사회과학대학 교지 연희관 015B, 사회과학 자치도서관 운영위원회,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대학원, 국제 앰네스티 한국지부가 함께 했다.
이 글의 목적과 형태는 아카이빙에 가깝다. 백양로를 스쳐 지나갔을 수도 있는 수많은 학생을 위해. 우연히 이 책을 집어들 또 다른 독자들을 위해. 혹은 ‘연세대학교 OR 인권 OR 축제 OR 대학 문화제’를 검색할 이름 모르는 축제 기획자를 위해. 학교에 이런 일이 있었음을, 그리고 할 수 있음을 글자로 새기고자 한다.
이제 총여학생회가 존재하는 대학교는 없다. 2010년대부터 서울권 대학에서의 총여학생회는 꾸준히 폐지되다가, 2019년도까지 유일하게 남아 있던 연세대학교 총여학생회마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주도한 학생 총투표로 인하여 회칙상 삭제되었다. 대학이라는 공간은 역사를 강조하면서도, 막상 매년 입학하는 대학생은 그 대학의 구체적인 역사를 모른다. 총여학생회가 어떤 일을 했는지 직접 총여학생회에서 활동한 선배를 만나지 않는 이상 모른다. 그렇게 학교에서 마주하게 되는 무수한 공간, 규칙, 문화, 단체들이 왜 생겼는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지 않은 채로, 그저 ‘젠더갈등’의 논란거리로만 회자한다. 해서 기획한 것이 이 웹진 여론이다.
<웹진 여女론>은 과거부터 현재까지 학내 여성자치단체들의 생성과 소멸, 저항과 연대, 그 밖의 각종 작당모의의 역사를 소재별로 기록했다. 원래는 거대한 연표로 그 역사를 구성하려 했으나, 여성자치단체의 역사를 하나의 축으로만은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학교 내외적으로 많은 여성단체들과 여러 분야에서 함께 해왔기 때문에 소재별로 웹진을 구성했다. 모든 게시물은 서울시 양성평등 아카이브 여기모아의 자료와 연희관 자치도서관, 구 총여학생회실에 있는 1차 자료들과 당시 연세춘추를 비롯한 학내 언론사의 기록과 함께 살펴봤고,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냈다. 낙서 된 회의록, 제안서, 대자보, 자료집 등 다양한 사진 자료들을 볼 수 있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 구성 되어있다. 읽다가 탁 걸리는 부분이 생긴다면, 바로가기 타고 들어가서 일독·정독·필독·속독.
성평등한 문화를 위해 저항하는 여론: 새내기 오리엔테이션 때 엉덩이 아프게 들었던 반성폭력 자치 규약. 과거 어떤 역사적 맥락 위에서, 누가 만들었을까? 시간이 흘러 현재. 대학 내 권력형 성폭력에 학생들은 어떻게 대처했고 앞으로 학교는 어떤 형태의 공동체가 되어야 하는지 묻는다.
문화와 공간을 창조하는 여론: 총여학생회 주최의 문화제를 연표로 정리하고, 몇몇 문화제를 예시로 들어 그 당시 문화제에는 어떤 프로그램이 있었는지 소개한다. 또한 여학생 휴게실이 있는 논지당(1955年生)의 탄생 배경과 함께, 이후 2000년대 총여학생회에서 여학생 휴게실을 어떤 공간으로 꾸려나가고자 했는지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노동하는 여론: 총여학생회는 노동운동, 기지촌운동, 농촌연대활동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는데 왜 그 장소에 여성주의가 필요했는지 살펴본다.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왜 여성주의 언어가 노동운동/기지촌운동에 필요했고, 대학생들이 ‘즐겁자’고 떠나는 농촌연대활동에 함께 해야 했을지. 그 당시 학생들의 고민과 N박N일을 소개한다.
다른 이들과 함께하는 여론: 과거 학내 여성자치단체들은 총여학생회를 대의제가 아닌 자치연합질서로의 새로운 구조체로 상상하고 실현시키고자 했다. 또한 200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일어난 생활협동조합의 생태운동이 어떤 방식으로 나타났을까. 이들이 학교에서 어떤 작당 모의를 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사라지는 여론: 2019년대부터 ‘적극적으로 오염되어 부유하는’ 총여학생회의 역사를 여성주의적 관점으로 고정하고자 하는 또 다른 아카이빙들과 “가라앉는 배인 줄 알고 탄” 연세대학교 마지막 총여학생회 회장단의 말을 담았다.
부스는 총 11팀. 그중에서 성소수자부모모임과 여성환경연대는 신촌캠퍼스에서 축제가 진행됐던 20, 21일에 나누어 참여하기로 하여 하루에 10팀씩 부스가 열렸다. 학내에서만 부스 팀을 모집하지 않고, 다양하고 폭넓게 활동을 하는 인권 및 공익 단체와 연결하고자 학외 단체들과도 연결을 시도했다. 그렇게 학내에서는 사회과학대학 자치도서관, 연희관 015B(연세대 사회과학대학 자치 언론), 마실(연세대 마이너리티 공동체), 컴투게더(연세대 중앙 성소수자 동아리), 연세대 비정규 노동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까지 총 다섯 팀이 참여했고, 학외에서 한국여성의전화(여성 폭력, 성폭력),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국제비정부기구), 성소수자부모모임, 여성환경연대(여성 인권), 민달팽이유니온 (청년 세입자당사자연대), 청소년 인권운동연대 지음까지 총 여섯 팀이 참여했다.
1. 해파리파티: 해파리파티는 매주 목요일 저녁 시간에 만나 정형화되지 않은 춤을 추며 몸으로 대화를 나누고 공간에 이야기를 쓴다는 취지로 모인 단체이다. 이번 인권축제에서 함께 하게 된 해파리파티는 연세대학교 학생회관 410호 공간에서 이야기가 쓰였다. 휠체어 접근과 실시간 문자 통역이 이루어졌으며 배우 강다현 씨가 대화를 주도했다.
2. 다양한 몸과 관계 속에서 즐거움을 찾아가는 성교육 워크숍: 강의식으로 진행되는 성교육 프로그램과 다르게, 진행자와 참여자가 한 공간에 둘러앉아 성에 대한 자신의 경험과 고민을 나누며 함께 성적 건강과 권리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참여형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해당 워크숍은 성적권리와 재생산 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가 함께했으며 셰어는 찾아가는 성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해 오고 있는 단체이다.
3. 왁자지껄 잡담회 ‘난민들은 어디로 갔을까’: 2018년 예멘 난민, 그 이후: 김지림 변호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김현미 교수(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신지영 교수(연세대 비교문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여한 이번 잡담회는, 우리 주위에서 떠들썩하게 들리다 사라진 난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금 짚어보았다. 난민 수용 논쟁과 더불어 논쟁 이후 난민들의 삶을 조명하며, 난민화된 삶에 대해 참여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4. 우리의 온도, 고백의 글쓰기 : ‘우리의 온도, 고백의 글쓰기’에서는 기후 우울을 다뤘으며, 참여자들은 각자가 느낀 기후 우울과 경험을 글로 쓰고 나눈다. 이번 시간을 기획한 ‘기후 위기 앞에 선 창작자들’은 기후 위기를 지금 당장의 문제로 바라보고 사람들의 삶에 적극적으로 섞일 수 있는 창작을 수행해 온 학외 단체이다.
5. 내 손으로 풍물 만들기: 국제 캠퍼스 종합관 음악실에서 열린 내 손으로 풍물 만들기는 ‘퀴얼’의 주도로 진행된 워크숍이다. 참여자들과 함께 징, 꽹과리, 장구, 북, 소고를 나누어 연주하며, 음악을 통해 현재 사회의 문제와 자신의 권리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다. 퀴얼은 소수자를 뜻하는 ‘퀴어(queer)’와 정신의 줏대라는 뜻인 ‘얼’의 합성어로, 퀴어한 풍물을 하기 위해 모인 풍물패이다.
6. 왁자지껄 잡담회 ‘감염병에 휘말린 사람들’: 지금 여기, 돌봄과 상호의존의 공동체 짓기: 서보경 교수(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상훈 활동가(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 하지(연세대 마이너리티 공동체 마실)가 진행한 잡담회에서는 HIV/AIDS 감염인 권리 운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감염과 공동체 사이에서 차별과 억압의 문제를 건드리며, 대학 공동체를 다시금 질문하자는 취지로 마련된 잡담회는 진행자들의 이야기 뿐만 아니라 참여자들의 활발한 질의까지 더해지며 열을 올렸다.
7. 바느질 방 체험 + 탈탈 낭독회: 연세대학교 국제캠퍼스 자유관 A 319호에서 북토크와 바느질 체험이 열렸다. 어린이책시민연대가 함께하는 바느질 방 체험이 1부, <전기, 밀양-서울>의 저자이자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김영희 교수가 함께하는 탈탈 낭독회가 2부로 진행되었다.
3월 21일에는 공연 및 토크쇼가 열렸다. 연세대학교 장애인권위원회와 협력하여 장애 인권 의제를 중심으로 캠퍼스 위에 다양한 몸을 초대한 시간을 가졌다. 세상이 하나의 정상 세계로 이루어져 있다는 상상에서 벗어나 각기 다른 삶을 초대하고자 하는 축제 기조를 바탕으로, 접근성과 다양한 몸의 요구를 주제로 기획했고 학생회관 앞에 턱없는 무대바닥을 설치했다.
토크쇼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왔다. 『난치의 상상력』 저자 안희제는 재학시절 장애인권위원회에서 아카라카 장애 학생석 확보를 위해 활동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학생회 활동에서 접근성이 중요한 이유를 들려주었다. 디지털시각장애연대 대표 한혜경은 시각장애인이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와 같은 생활밀착형 이야기를 해주었다. 스탠드업 코미디언 신강수는 스스로를 ‘연기쟁이이자 글쟁이자 난 놈 중에 난 쟁이’라고 소개하며 그만의 코미디로 무대를 휘어잡았다.
공연에는 다음과 같은 사람들이 왔다. 브레이크 댄서 한발의 비보이 김완혁과 가디언즈 크루가 왔다. 싱어송라이터 신승은도 왔다. 노들 야학의 싱어송라이터 노들 노래공장 합창단은 노들 야학의 권리 중심공공일자리 노동자들이 모인 단체로, 매주 함께 노래를 만든다. 수업을 마치고 내려오던 학생들의 발길을 붙잡고, 힙합과 기타 소리와 한데 모인 목소리들이 백양로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학교가, 그리고 백양로가 학생들의 목소리로 더 시끌벅적해지길 바란다. 인권축제는 ‘인권’을 주제로 학내의 다양한 자치단체가 협업하여 만든 문화제다. 학교를 기업이 아닌 학생의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이자 자치의 공간으로 채우는 시도였다. ‘백양로’를 바삐 흘러가는 거리가 아니라, 잠시 멈추어 주변을 바라보고, 친구를 만들고, ‘사유와 사색’의 공간으로 만드는 시도였다. 기조문 중 일부 인용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
“한때 대안 담론이라 여겨졌던 대학에서조차, 이제 변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울리는 것은 상상하기 힘듭니다. 취업을 위한 관문이 되어버린 연세대학교에서 발화가 담론이, 담론이 움직임이 될 여지는 흩어집니다. 정치적 중립이라는 수사 아래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차별만이 온라인 공간을 떠돌 뿐입니다. 캠퍼스 위 하나의 길로 길게 뻗은 백양로는, 여기에는 ‘정상적’인 ‘성공한’ 삶만이 허락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나 ‘다른 삶’은 언제나 지금 그리고 여기 있습니다. 취약함을 혼자 감내하는 대신, 서로가 서로를 보살필 사회의 모양새를 제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제4회 연세대학교 인권축제는 시대와 불화하는 이들을 백양로 위로 초대합니다. 대체로 ‘비정상’이고, 어쩌면 더러우며, 때때로 지나치게 소란한 다양한 ‘오늘’들의 이야기를 쏟아내 대학에 대한 우리의 감각을 질문합니다. 그럼으로써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좋은 삶의 환상과 그로 인한 막연한 두려움을 해체하고자 합니다. 한 사람의 취약성이 모든 이가 함께하는 상호의존의 정치로 발돋움할 때, 삶이 어떻게 변화할 수 있는지 들여다보고자 합니다.”
*해당 글에서 제목과 인권축제를 소개하는 부분은, 인권축제 전시 <제4회 인권축제 아닙니다. 제 18회 인권축제입니다>를 일부분 변형하여 작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