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호> 편집위원 야자수, 우산, 선우, 신입편집위원 연
안녕, 날도 추운데 목도리는 잘 두르고 다녀? 반가워.
우린 노학연대 팀이야. 잊을 만하면 당신에게 찾아오는, 기억 저편 어딘가에 잠시 내려놓으려 하면 다시 눈앞에 튀어나오는 청소 노동자와의 연대. 익숙한 듯 아닌 듯, 아리송하지.
우리 딴에는 누군가 말해야만 하는 것들을 찾고, 수면 위로 올려야 하는 것들을 엄선한다고는 하지만, 읽는 입장에서 아예 새로운 이야기들을 구해오긴 쉽지 않아. 결국 대학은 한정된 공간임과 동시에 다른 공동체에 비해 안정적인 편이니까. 오늘의 주제인 청소 노동자들을 예시로 들어보자. 식대와 임금 인상, 용역업체와 학교 본부의 행보, 익숙한 키워드들이 떠오를 거야. 디테일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이야기는 결국 이미 던져진 키워드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한적한 백양로에서 무언가 드라마틱한 일을 기대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잖아, 그치?
이 글에서 청소 노동자들의 노동 환경의 실태가 어떤지, 매년 어떤 부분을 개선하고자 어떤 투쟁을 해왔는지, 이에 대해 본교와 용역 업체들이 얼마나 악질적으로 대응하는지, 이런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크게 다루지 않으려고 해. 올해 연세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조명한 기사는 한겨레나 중앙일보와 같은 메이저 언론사에도 있고, 이미 학내 언론인 연세춘추와 문우가 자세하게 정리한 글을 냈어. 과거로 조금만 돌아가면, 2020년에는 여러 학내 자치단체가 힘을 모아 [아코디언]의 이름을 걸고 릴레이 기사를 작성한 적도 있지. 오른쪽 아래에 보이는 QR코드를 찍으면 방금 소개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링크로 이어질 거야.
(혹시나 노학연대,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는 친구들이라면 링크 접속했을 때 보이는 맨 위의 기사 3개는 꼭 읽고 돌아와 줘!)
그러니까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자세히 담은 글들은 이미 충분히 많아. 사실 지금도 학내 언론들은 매년 반복되는 투쟁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고, 불과 두 달 전만 해도 연세대학교 언론 출판협의체에서 학생회관과 중앙도서관에 청소 노동자 처우 개선을 위한 대자보를 게시하기도 했어. 하지만 학내 단체들의 노력이 지속됨에도 불구하고 연대의 불꽃은 점점 꺼져가. 학내 노동자들을 둘러싼 여러 이슈에 대해 학생들의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올해 투쟁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학우들도 많은 게 현실이야.
눈을 감고 두 단어를 연상해 봐, 청소 노동자와 노학연대. 어떤 장면들이 떠올라? 아마 빨간 조끼를 입고 학생회관 앞에서 큰 소리로 구호를 외치는 청소 노동자들, 시위가 학습권을 침해한다며 이들을 고소했던 공대 학생과 그를 지지하던 에브리타임의 많은 게시물들, 용역 업체 퇴출 서명을 받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니던 학생들, 올해 여름에 언더우드 관 앞에 설치됐던 천막 정도가 있을 거 같아. 낯설고 무거운 순간들이지. 이런 장면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는 이유를 하나만 꼽자면, 현재 연세대학교는 청소 노동자들이 타자화되기 아주 좋은 환경이야.
타자화라는 단어는 해석의 스펙트럼이 아주 넓은 단어이기에, 이 글에서는 다음과 같은 의미로 쓰려고 해. ‘나와 연세대학교라는 시공간을 공유하고 함께 생활하지만, 대상을 나의 일상에서 마주할 수 없는 무언가로 재인식함으로써 삶의 테두리 밖으로 밀어내는 것'.
지금의 학교는 학생들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청소 노동자들을 타자화하기 쉬운 환경이야. 근무 환경에 대해 우선 말해볼까? 청소 노동자들은 대부분 오전 5시에 출근해 오후 4시에 퇴근해. 휴게실과 전용 공간은 모두 찾아가지 않곤 접근하기조차 어려운 곳에 배치되어 있어. 학생들이 인식하지 못하도록 시공간적으로 격리된 상황이지. 수업을 듣고 시간을 보내는 평범한 일상을 보낸다면 하루에 한 번조차 마주치기 어려워. 눈으로 보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멀어지는 게 사람 마음인데, 원래도 교류하지 않는 상대라면 더욱 멀어지는 건 당연해.
사실 종종 본다고 해서 타자화하지 않는 것은 아니야. 우리는 타인을 바라볼 때, 나와 심리적 거리가 멀지 않거나 같은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인식한 이후 비로소 관심을 두고 그의 삶을 바라보게 돼. 근데 우리가 일상에서 청소 노동자들을 마주하는 경우는 굉장히 한정되어 있어. 화장실을 치울 때, 쓰레기통을 비울 때, 걸레질을 할 때… 그렇게 청소 노동자로서의 개인만 바라보게 되고, 그를 이루는 다른 정체성과 관계에 대해서는 알지 못해. 타자화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이뤄져.
청소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녹록 않아. 학생들이 그들의 투쟁을 ‘자세히 정리하고 분석하는 글’을 써 관심을 끌어내는 방법은 접근성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학내 언론이 써낸 책들을 어디서 볼 수 있는지도 알기 어렵고. 직접 노동자들의 얘기를 들을 기회는 더욱 없다시피 하지. 지나가면서 분회를 짧게 바라보는 정도가 한계일 거야. 나서서 많은 관심을 고 찾아보지 않는다면 그들을 보지도, 그들의 목소리를 듣지도 못하는 게 지금의 대학이야. 그들에 대한 이미지는 몇몇 무거운 장면들과 편견을 중심으로 재구성돼. 결국 청소 노동자들이 우리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대학 구성원으로서 함께 생활한다는 인식 자체가 어려워지고 악순환의 고리에 빠지는 거지.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은 우리와 무관하지 않아. 직관적으로, 용역 업체가 건물당 청소 담당자를 줄이는 등 청소 노동자들의 업무 강도를 높일 경우 건물의 위생 상태가 악화하고 그 피해는 학생이 고스란히 입게 돼. 학교 측이 외주화할 수 있는 업무에 대해 비용 절감의 개념으로만 접근한다면 청소 노동자 이외에도 시간강사, 조경사, 등 학교를 구성하는 다양한 노동자들의 처우가 악화할 수 있어. 이는 질 낮은 교육으로 이어지지.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면, 그건 체화의 영역이야. 누군가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그것이 효능감으로 돌아올 때, 그 순간들이 쌓여 발을 내딛는 힘이 돼. 노학연대에 참여하는 것은 내가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청소 노동자분들을 인터뷰하면 공통으로 하시는 말씀이 있어. 바로 학생들의 관심과 참여가 가장 큰 힘이 된다는 말이야. 결국 대학의 주인은 학생이고, 우리가 관심을 가질 때 비로소 변화가 시작돼. 사실 청소 노동자와 연대는 상상하는 것처럼 그렇게 막연하거나 어렵지 않아. 관련 뉴스나 기사를 보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 우리처럼 글을 쓰는 것, 공대위 사람들처럼 노동자와 직접 교류하고 함께 거리에 나가는 것, 그 모든 것이 연대야.
타자화를 잠시 내려놓는 것,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에 귀를 기울이는 것, 연대에 조금씩 몸을 맡기는 것, 그 모든 것은 자주 바라봄에서 시작해. 일상에서 지나치지 않고, 청소 노동자들 자주 인지하는 것. 기존의 방식인 줄글은 이를 달성하기에 어려움이 있었어. 학생들이 청소 노동자들을 지나치지 않고 그들과 관련된 메지들을 접할 수 있도록 지면 밖으로 나가 여러 행사들을 진행했어.
노학연대 팀은 이번 호에서 총 3가지의 활동을 했어.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을 이미지화한 초콜릿 간식 나눔 행사, 투쟁의 역사성을 담은 현수막 게시, 여러 층위의 연대를 경험하고 나누는 집담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청소 노동자들의 투쟁과 우리의 활동을 줄글로 풀어내지는 않을 거야. 행사 사진과 기획안, 인용문 등으로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고 해. 학내 언론, 또는 글을 쓰는 이들이 줄글이 아닌 형식도 충분히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노학연대에 막막함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우리의 기록으로 용기를 주고 싶어. 함께 연대하자. 노학연대 화이팅!
노학연대 팀의 첫 시작은 간식 행사였다. 평소 청소 노동자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정확히는 같은 공간에 존재하지만 크게 인식하지 못하는 학우분들께 먼저 이들을 인식시키고 싶었다. 그래서 후에 나올 행사들 전에 다수의 보편적인 사람들을 직접 대면할 수 있는 간식 행사로 노학연대 행사의 포문을 열었다. 간식 종류를 정하는 과정에서 팀원 4명 각자의 취향이 담긴 예를 들어 떡과 같은…후보들이 있었지만, 보존성이 높으며 가장 취향을 안 탈 것 같은 초콜릿을 최종 선택하게 되었다.
또한, 우리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스티커를 제작하여 초콜릿에 붙였다. 스티커 디자인은 총 3가지 안이 나왔었는데, 먼저 최종 선정이 안 된 2, 3안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덧붙이고 싶다. 2안은 이 간식을 받을 사람들이 대학생들이라는 점을 고려하여 '밈'을 활용한 디자인이며, 3안은 ‘에어드롭’을 활용하여 우리가 간식을 받을 사람들에게 어떠한 메시지를 보낸다는 의미의 시각화를 의도하였다. 최종 선정된 1안은 당시 청소 노동자분들의 현황에 대해 잘 알려줄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한창 스티커 디자인을 기획하던 즈음 청소 노동자분들의 식대 인상 투쟁이 300일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계속되어왔고 이런 투쟁의 상황을 담고자 했다. 사실 처음에는 개당 1,360원가량의 노브랜드 다크 초콜릿을 나눠주려고 하였기에 '식대 2,700원의 절반 값'이라는 문구를 넣었지만, 노브랜드 다크 초콜릿의 품절 사태로 인해 가나 마일드 초콜릿으로 바꾸게 되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사람 중 간식 행사를 예정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빨리 주문하길 바란다…. 이처럼 여러 변수가 있었지만 어쨌든 제시간 안에 초콜릿과 스티커를 받게 되어 중간고사 기간에 맞춰 간식 행사를 할 수 있었다. 행사는 10월 22일과 10월 23일 양일 유동 인구가 많은 점심시간에 맞춰 맛나샘 앞, 학생회관 앞의 백양로 등에서 진행되었다. 양일 동안 300명의 학우 마주하였다. 재학생 수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숫자지만 그 작은 숫자가 가진 힘을 믿는다. 초콜릿을 받은 300명이 또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전함으로써 더 많은 학우가 청소 노동자분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연대의 물결이 확산하길 기대한다.
우산 : 1안. 밥 한 끼의 절반 값이라는 게 직관적으로 보였으면 좋겠음. 1안이 좀 더 깔끔. 디자인적으로는 2안도 좋은데 광고 재질이라 색이랑 글씨체 생각 더 해봐야 할 듯
야자수 : 322일 확정(10월 16일 기준), 2안은 2,700원으로 고쳐야
선우 : 초콜릿이 500원이라는 건지 천 원이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태현 : 2안이 눈에 잘 들어옴. 디자인적으로만 봤을 때는 2안.
야자수 : 1,000원의 절반 값 말고 밥 한 끼의 절반 값. 해당 텍스트 색상을 윗줄의 ‘청소 노동자들’ 색상이랑 맞추기. 2,700원의 절반 값
연 : 구글 미팅으로 회의 가능하신지요들
나는 메시지 전달력과 가독성이 높은 디자인이 좋은 디자인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주고 싶은 메시지가 표면에 잘 드러나도록 그리고 독자가 그것을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설계했다. 비록 프로의 그것을 따라가진 못하지만…어쨌든 1안은 밋밋하지만만 공익적인 분위기를, 2안은 텍스트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원활한 피드백을 위해 온라인 회의를 진행했고, 메시지가 눈에 확 들어오는 2안이 최종 선택되었다. 이후엔 2안을 기반으로 텍스트와 디자인을 수정하고 300개의 스티커를 발주했다.
현수막은 학교 내 노동자의 투쟁이 지나온 굴곡과 그 지속의 양상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시각 자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안고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캠퍼스 내에서 시위 현장을 지나치기만 하지, 매년 이뤄지는 투쟁과 교섭이 어떻게 변화하고 (동시에 어떻게 변화하지 못하는지) 이해할 기회를 얻지 못한다. ‘또 시위하는구나’라는 인상 정도로 피로와 증을 느끼는 이들에게 투쟁의 역사와 그 결실을 전달하고 싶었다. 학내 노동자들이 몸담아온, 소수의 학생을 제외하면 누구도 들어보지 못한 용역업체의 이름과 투쟁 내용들을 담았다. 모든 사건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공간과 이를 들을 용의가 있는 청중들이 함께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백양로를 걷는 몇 초 동안 스쳐 지나가며 흘긋 시선을 던졌을 때 눈에 담기는 것들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 역사성을 가장 명료한 연표 형식으로 드러내기로 했다.
굵직한 몇 개의 투쟁이 동시에 진행되었던 시기도 존재한다. 글자들을 눌러 담고,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오는 투쟁의 목소리를 강조했다. 팀원들은 보통의 현수막에서 사용되는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보다 덜 단조롭고 더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 디자인이 나을 것 같다고 피드백했다.
당시 회의를 회상해 보자면,
야자수 : 아직 많이 거친 초안이라 글꼴이나 색이 다듬어지지 않은 거죠?ㅎㅎ
선우 : (매우 당황한 후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네, 그렇습니다 …
나는 되도록 강렬하고 불친절하고 무심한 방식을 선호한다. 평소 눈에 들어오던 것은 그 자리에서 그려 만든 것 같은 흰 바탕과 검은 글씨의, 다소 공격적인 현수막이었다. 팀원들이 요구하는 것은 내가 홀로 그리던 것과 조금 다른 듯했다.
초안을 만들던 나는 평소 학내 노동자들의 투쟁에 쓰이는 선전물을 모방하고자 했다. 팀원들도 내 의도와 공명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아니었다. 현수막 기획 회의를 떠올려보면, 우리는 평소에 학생들이 인식하는 투쟁을 조금 더 친절하고 다른 방식으로 선보이는 것을 목표로 삼기로 했다. 우리가 나눴던 이야기를 복기한 나는 기존 당사자들의 문법을 모방하는 것을 포기하기로 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당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최종 시안의 우측 하단에서 볼 수 있듯이, 현수막을 제작한 주체는 연세편집위원회와 비공대위다. 우리는 학내노동자의 투쟁에 관심을 두고 ‘연대’ -그게 무엇이든 간에- 하고자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현수막을 보는 이들과 똑같은 학생의 위치에 서 있다. 다른 학생들에게 동료가 되어달라고, 함께 투쟁 현장을 조금 더 가까이서 입체적으로 살피자고 요청하려면, 내가 은연중에 ‘비굴하다’고 무시했던 방식을 택해 더 공을 들이고 읽기 수월하게 만드는 것이 적합했다.
점으로 이어진 선의 끝에는 ‘다음은?’이라는 문구가 보인다. 모두에게, 결국 우리 자신에게도 투쟁과 교섭의 후속보도를 끊임없이 궁금해하자는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공식적으로 학생복지처에서 승인을 받아 백양관 앞 보행로에 보라색 현수막을 설치했다. 동일한 내용의 현수막은 두 개 이상 게시할 수 없다는 안내가 있었지만, 보다 더 많은 학생이 넓은 캠퍼스에서 현수막과 마주쳤으면 하는 바람에 몰래 백주년 기념관 근처 보행로에 주황색 현수막을 설치했다. (“도둑고양이”처럼!) 하지만 며칠 가지 않아 학생복지처의 연락을 받아 철거했다.
그런데 실제로 승인을 받아 게시했던 보라색 현수막의 행방이 묘연해졌다.
현수막은 10월 16일부터 29일까지 그 자리에 게시되어 있어야 하는데, 25일 동료 편집위원이 현수막이 사라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보통 게시 기간은 2주로, 게시자의 자진 철거가 원칙이다. 오로지 “게시 허가 기간이 지났지만 자진 철거하지 않은 현수막”만이 “총무팀과 경비원들에 의해 철거된다.” (연세춘추 인터뷰 출처) 학생들의 발길이 잦아드는 주말 직후였던 터라 사라진 시간을 특정할 수 없어 KT 텔레캅 에 CCTV 확인을 요청하지도 못했다.
현수막의 이른 철거에 기시감이 느껴지는 것은 당연했다. 지난 8월 19일 언론 출판 협의위원회 소속 일부 단체들은 학교에 노동자와의 교섭에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관련 사안에 대한 학내 언론의 취재에 성실히 응하라고 요구하는 합동 대자보를 학생회관 1층과 중앙도서관에 게시했다. 연세편집위원회도 응당 함께했다.
그런데 중앙도서관 입구에 부착한 대자보는 하루도 가지 않아 사라졌다. 없어진 것을 확인한 당일 경고문구와 함께 다시 부착한 대자보도 마찬가지였다. “대자보 작성 및 부착은 학내 구성원,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정당한 권리입니다. 대자보 훼손 및 무단 철거 시 재물 손괴로 사건 접수하겠습니다. 9월 이후 혹은 교섭 타결 시 직접 수거하겠습니다.” 언협 측에서 경고 문구도 함께 설치했지만, 다음 날 또다시 보이지 않았다. 사각지대에 위치한 터라 CCTV를 확인해 보아도 누가 철거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대자보와 현수막은 어디로 갔고 누가 철거한 것일까. 학생들이 학내 노동자의 투쟁을 지지하며 학교의 미온한, 방관하는, 게으른, 청소 노동자를 철저히 무시하는 이기적인 태도를 비판할 때, 누가 가장 불편하고 심기가 거슬릴까. 공동체 내에서 이 사안에 대한 공론장이 더 활성화되고 관심이 커지는 것을 누가 가장 두려워할까.
속이 상했지만 동시에 예상이 충분히 가능한 흔한 사건이었다. 권력은 누구에게는 관용을 베풀고, 누구에게는 엄격한 원칙의 잣대를 들이밀고, 그리고 누구에게는 원칙조차 준수하지 않으며 억압과 폭력을 휘두를 수 있다. 분노하되 절망하지는 않고 우리는 계속 무언가를 했다 …
각자의 자리에서 노학연대를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을 한군데로 초대했다. 이 행사는 서로가 어떤 식으로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노학연대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한 사람에게 기 활동자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리로 만들고자 했다.
아코디언은 2019년도에 활동했던 선배들이다. 당시, 코비가 퇴출하지 않자 이에 대응하는 기획 기사를 작성하기 위해 학내 언론단체들이 모였다. 기획 기사뿐만 아니라 학생-노동자가 모이는 간담회를 열었고, 이 기사를 본 우리도 가벼운 마음으로 집담회를 기획했다. 서강대 인권 실천 소모임 노고지리는 코로나 직후에 새로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호호 체육관/모두의 운동회 등 노학연대 활동이 활발히 운영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집담회 기획팀은 노고지리의 재치 있는 홍보 포스터에 눈여겨 보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쓰레기탐험대는 학내 음식물 및 쓰레기 배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세대 비정규직 공대위, 문과대 문우편집위원회, 사과대 연희관 015B, 연세편집위원회가 모인 단체다. 건물별 청소 노동자 휴게실을 찾아가 쓰레기통 현황과 문제점을 조사하고, 국제 캠퍼스에서 RC 교육원과의 연계를 통해 1학년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배출 수업과 청활을 진행하고 있다.
그럼, 이제 현장으로 들어가 보자.
노고지리:
많은 사람들이 말하는 거지만, 전 재밌어서 해요. 이 공간에 있을 때 제일 재밌고 존중받는다는 느낌? 2주 전이 시험 기간이었는데, 지난주 금요일에 저희 2층 건물 여사님들이 제가 시험을 보는 줄 알고 점심 사주셨어요. 그렇게 고깃집에 데려가셔서 고기를 30분 동안 먹고 왔어요.
내가 원하는 어떠한 삶의 방식, 생각과 즐거움을 나누고 깊은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이기에, 여사님들과도 무해하고 따뜻한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에 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쓰레기 탐험대:
교과관의 경우, 휴게실이 건물 내에 위치한 게 아니라 아예 나무 벽으로 가려져 있는 공간에서 문을 열고 또 한 번 문을 열고 들어가야 나와요. 나는 인지조차 못 하고 있었지만, 기저에는 애초에 노동자들이 나와 공간을 공유할 수 없게끔 하는 배치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씁쓸하게 느껴졌어요.
공대위 태현:
확실히 나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다른 시간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인지할 때 감각이 넓어지는 것 같아요. 저도 연희관을 올라올 때 바로 앞쪽에서 복천 트럭 6대가 슝슝슝슝슝 지나갈 때마다 지나가는구나 또 시작됐구나 생각하거든요.
아코디언:
사회는 학교처럼 친구나 동지나 동료를 만나기가 좀 어려운 경우가 많아요. 그럴 때 이전에 투쟁해 본 경험이 있고, 문제를 제기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나의 권리를 지키거나 힘들어하는 동료가 있을 때 같이 싸우고 목소리를 내기가 좀 더 쉬워요. 이게 저에게는 든든한 무기가 됐던 것 같아요.
공대위 태현:
과연 연대를 조직하는 사람들이 모두 노동자와 친구가 될 수 있을까요? 그거는 아니죠. 왜냐하면 나는 서명 운동을 한 3천 명 받고 싶거든요. 그 사람들 다 같이 불러서 노동자랑 다 놀게 하는 건 그냥 물리적으로 불가능해요. 노동자와 친구가 아닌 사람들이 연대를 할 수 있도록 단어와 공간을 만드는 것, 그것도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일 것 같아요.
익명의 A: 사정상 일정 마지막인 3부부터 참여했다. 각자의 의견을 나누는 시간이었는데, '타자화'와 '연대'라는 말이 수도 없이 나왔다. 누군가 말씀하셨었는데, 타자화와 연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는데, 그게 나였다(ㅠㅠ). 노동자분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었던 대부분의 집담회에 왔던 사람들과 달리, 나는 당연한 단어조차 모를 정도로 무지한 상태였기에 집담회에서 나눴던 논의들이 너무 앞서나간다고 생각됐다. 그러나 이번 집담회를 통해 무의식적으로 꺼져있던 노동자 전구(?)가 켜지게 되어 평소에 (특히 학교 건물에서) 보이지 않던 분들이 보이게 됐다.
공대위 윤채영: 노학연대란 말은 어떨 땐 너무 가볍고, 또 어떨 땐 너무 무겁게 느껴지곤 하는데 이번 간담회는 각자가 느끼는 노학연대의 무게를 솔직하게 공유할 수 있어서 참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패널분들과 일반 참가자분들의 말들 모두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아요. 우리가 어떠한 형태로든 지치지 않고 오래 연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공대위 이기헌: 집담회를 통해서 대학생들이 노학연대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졌는지 알 수 있었다. 또 나보다 많은 열정들을 가진 사람들로부터 자극을 받았다.
우산:
스스로를 들여다볼 때 새어 나오는 마음들을 적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았지만, 실천하지 않는 글과 삶은 의미를 얻지 못함을 절실히 느꼈다. 어떤 삶을 살아내고 싶은가, 타협할 수 있는 많은 기준을 제하니 두 문장이 남았다. 개인을 존중하는 삶, 개인이 누릴 수 있는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받는 삶. 나의 삶에서 이를 가능케 하려면, 마땅히 다른 이의 삶도 그래야만 했다. 나와 함께 살아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은 것에 해 서술하기로 했다.
청소 노동자를 주제로 잡은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였다. 아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학병원은 아직도 그곳에서 일하는 모든 이에게 참 가혹한 환경이다. 인턴 레지던트는 툭하면 36시간 연속 근무에 주 80시간 상한 근로 시간조차 지켜지지 않고, 간호사는 교대 근무와 태움으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에 고통받는다. 교수들 또한 진료, 연구, 강의, 학회 등 지나친 업무량으로 인해 번아웃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고, 청소 노동자는 세브란스 병원의 경우 노조파괴를 위한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 정도로 집요한 괴롭힘을 받는다.
미래에 인턴, 레지던트가 될 사람으로서 충분히 존중받는 삶을 살고 싶었다. 단순히 돈 몇십만 원을 더 받는 개념이 아니라, 단순히 병원의 부속품이 아닌 사람으로 존중받는 삶. 이는 의사들(인턴, 레지던트, 펠로우, 교수)의 처우를 개선하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했다. 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지위적으로 먼 사람들을 부속품으로 본다면, 가까운 의사들 또한 정도의 차이일 뿐 부속품으로 볼 것이 뻔했다. 병원에 속한 모든 이들이 더 나은 처우를 위해 함께 마음을 모을 때 비로소 변화는 가능했다.
나는 의사를 제외한 다른 이들의 삶은 거의 알지 못했다.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을 이해하고 연대하는 방법 또한 몰랐다. 여러 생각이 엉켜 청소 노동자를 글에 담게 되었다.
나는 우리의 시도가 청소 노동자들에 대해 무관심한 학생들에게 최대한 많이 닿는 것이 핵심이라 믿었다. 물론 최전선에서 부르짖는 이들이 연대의 불씨를 지피고 지키는 것은 맞지만, 변화는 대중에서 유의미한 비율의 사람들이 동조할 때 일어났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들의 일상에 툭 튀어나올 방법에 대해 고민했고, 그 답으로 간식 행사와 현수막, 집담회를 내놨다. 당사자들을 인터뷰하고 사건을 자세히 파고드는 방법도 좋았지만, 연세지 사람끼리 작당모의해서 학생들에게 새롭게 다가가는 과정은 참 즐거웠다.
세 가지 행사는 목표가 달랐다. 간식 행사와 현수막은 일반적인 학생이 대상이었고, 집담회는 이미 연대에 함께하는 이들이 대상이었다. 행사들이 모두 끝난 지금, 무관심한 이들에게 닿아야 한다는 내 생각은 더욱 강해졌다. 초콜릿을 받아 간 300명 중 200명만 스티커를 읽고, 건물들을 오가며 현수막을 지나친 몇천 명의 학생 중 10%만 글귀를 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들은 청소 노동자에 대해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나 ‘아이템’들을 접하면 한층 더 깊이 연대할 수 있는 사람이 됐고, 이런 순간이 쌓이면 변화로 이어질 터였다.
집담회는 달랐다. 나는 오랜 시간 고민하고 행동했던 선배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연대의 과정에서 괴리를 느낄 때 이를 어떻게 해소했는지, 나와 같은 고민을 마주할 때 어떤 방안을 생각했는지 배우고 싶었다. 하지만 집담회는 나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었다. 참여한 사람들은 이미 일반적인 학생들은 알지 못하는 단어와 생각으로 소통했다. 그들은 더 이상 무관심한 사람들의 관점을 이해하기는커녕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았다. 관조하지 않으면 매몰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혼란스러웠다. 태현이 털어놓은 고민만이 나에게 닿았다.
나는 어떻게 타인과 연대해야 할지, 다른 이들이 연대에 참여하려면 어떤 방법을 시도해야 할지 아직도 많이 혼란스럽다. 연대에 앞장서는 이들이 지키는 가치를 대중의 언어로 담아내는 과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연:
노학연대. 처음에 무슨 단어인지도 몰랐다. 그냥 마음 깊은 곳에서 혼자 갖고 있던 생각이 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도와줘야 한다는 것.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오롯이 나의 노력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종교적인 개념을 벗어나 운이나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일들의 영향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는 불평등을 겪고 있거나 구조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과 소통하고 세상에 알리고 돕는 게 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나의 이런 가치관은 존 롤스가 정의의 원칙을 주장할 때 내세운 무지의 베일을 바탕으로 한다. 결국 내가 현재 타인을 돕는 건 미래의 나를 돕는 거라 할 수 있다. 도움을 받은 사람이 도움을 줄 수 있기에. 이상적으로 순환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싶은 한 시민의 마인드랄까...
청소 노동자 팀에 들어오게 된 것도 이런 이유였다. 우리 팀은 청소 노동자분들의 일을 많은 학우분들에게 알리고자 한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뭉쳤지만, 계기와 배경은 다 달랐다. 연세편집위원회 4명과 공대위 1명 각자의 이익(비단 금전적인 이익을 벗어나)을 위해 똘똘 뭉쳤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글이라는 형식을 잠시 내려놓고 여러 행사들을 진행하기로 했다. 초콜릿을 나눠주고 현수막을 걸어 여러 학우분께 청소 노동자에 대한 상황을 알리기도 하고 집담회를 열어 이 주제에 관심 있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기도 했다. 팀의 목적성 달성 측면에서 나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이제까지 연세지의 글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글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청소 노동자뿐만 아니라 나를 제외한 타인과 연대 방법은 아직도 아리송하다. 다른 이들과 달리 신입 편집위원으로 지금까지 만나보지 못한 성격의 공동체에 적응하기 위해 내적으로 소용돌이치던 시기였어서 처음에는 팀원들과의 의견 나눔도 조심스러웠다. 나도 이들을 모르고 이들도 나를 모른다고 느꼈기에.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는 몇 겹의 벽을 쌓고 사람들을 대하며 그들이 듣기 좋은 말만 해왔다. 하지만 결국 나는 솔직함을 덮어둘 수 없는 성정인지라, 또, 이들을 신뢰하게 되었기에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내뱉고 토론하고 듣기를 반복했다. 반복되는 과정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이들의 생각을 대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나는 우리가 처음보다 더 친밀해졌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다름을 인정하고 솔직하게 자신을 내보이고 교류하는 것, 이것이 지금의 내가 어렴풋이 느끼는 타인과의 연대 방법이다.
선우:
나는 남들이 ‘과하다’고 평가할 정도로 고통의 전이를 잘 경험하는 사람이다. 타인이 실제로 느끼는 고통의 실체가 얼마나 강하고 복잡한 지와는 상관없이, 내 몸을 구겨 넣을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그들의 위치에 무작정 고개를 들이밀고 (역설적이게도) 독단적인 공감을 실행해 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공감한다고 말할 때, 그것이 얼마나 폭력적이고 무용할 수 있는지 안다. 공감의 차원에서만 그치는 수많은 고통이 얼마나 개인을 무기력하고 슬프게 만드는지도 안다.
재작년 재학생 하나가 도서관 앞에서의 소음을 이유로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서울 지역 공공서비스지부를 고소한 사건이 발생했을 때, 나는 정말 슬프고 화가 났다. 그 학생이 연세대 분회에 보낸 이메일에는 민중가요라는 수단이 시끄러워 적절하지 않으니 “학생들의 공감을 얻기 힘들고, 노학연대도 성사되기 어렵”다는 문장이 존재했다. 나는 그때 처음 노학연대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그에게 노학연대란 무엇일까? 우아하고 조용하고 조심스러운 방식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얻어내는 것? 타인의 고통과 일상을 위한 투쟁을 단순한 소음으로 여기는 이에게 ‘연대’가 도대체 어떤 무게를 가진 단어일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 백양로를 걷곤 했다. 감히 알아볼 의지나 행동할 용기가 없어서, 타인에 대한 몰이해와 무지에서 비롯된 자그마한 발언 하나하나에 절망을 느껴서, 내가 ‘연대’할 에너지란 고갈되어 간다고 느꼈다. 비공대위에서 주최한 포스트잇 편지 이벤트에 참여해 익명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남긴 것이 전부였다.
이런 나에게 ‘노학연대’에 관해 고민하고 실행하며 이를 기록하는 팀에서 활동하게 된 건 큰 행운이다. 우리는 모두 정말 다르다. 출신 학과도, 필수노동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하는 바도, 함께 어울리는 사람들도, 평소 캠퍼스의 청소 노동자를 인식하는 방식도 모두 판이하다. 어느 날은 함께 재잘대다가 문득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팀을 꾸려 즐겁게 활동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답은 잘 모르겠다. 우리가 기획하고 진행했던 간식 행사와 집담회, 함께 백양로에 걸었던 현수막이 얼마나 큰 파급력이 있었는지 평가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다만 우리가 이것들을 ‘작당모의’ (팀원 야자수가 가장 좋아하는 표현이고, 그녀를 좋아하는 나도 덩달아 즐겨 쓰게 되었다) 한 기록이 누군가에게 의지를 불어넣는 고무적인 자료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여긴다. 왜냐하면 여기서 우리는 서로를 믿고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기 때문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 같아도 일단은 그 맥락을 살피고자 가만히 들어보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이유로 활동에 뛰어든 사람들이지만 최선을 다해 합의점을 찾고 ‘어떻게 연대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이 논의했기 때문이다. 2년 전에 나는 연대할 용기가 없는 나 자신을 미워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백양로를 걷곤 했다. 이제 노학연대는 나에게 비로소 가능한 것으로 자리하게 되었다. 동료들 덕분이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르지만, 온몸을 바쳐 고민하는 동료들!!!!!
야자수:
더 이상 ‘글’은 공론장을 만드는 데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조용한 학교에서는 학내 교지 단체가 실험적 자치 언론으로서 ‘공론장’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런 고민에서 흔쾌히 작당모의를 시작했다. 우리는 지면을 뚫고, 어디서 어떻게 만나, 어떤 대화를 나눌 수 있을까. 이번 연세편집위원회는 ‘노학연대’라는 대화거리를 던졌다.
사실 이런 자리는 되게 중산층의 비즈니스맨들이 할 법한 고민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상품’이 누구의 노동에 어떻게 기대어 있는지를 머리 빠지게 고민하는 거 말이다. 잘 생각해 보면, 중 고등학교 때는 교실도, 복도도, 교무실도 다 학생들이 청소했다 (화장실 제외). 그래서 청소 노동자에 대해 고민해 볼 겨를이 없었다. 그렇담 대학교에서 벌어지는 이 모습은 당연한 건가? 언제부터 남들이 청소하는 게 당연해진 거지? 이런 임금노동 언제부터 생긴 거지? 하는 고민이 ‘노학연대’에 필수적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답은 나도 잘 모른다. 그런 학문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냥 ‘우리는 서로의 노동에 기대어 산다’는 것만 알고- 이야기하기도 바빴다. 간담회는 정말 ‘직접적인’ 연대만 이야기해서 그런지, 노학연대를 잘 모르는 사람에게는 가닿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실 간담회 이후에, 우리가 인트로를 쓰는 과정에서 각자 ‘노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하는 토론이 더 재미있었다. 나는 청소/돌봄 노동이 필수노동이며, 누구나 할 수 있고- 누구든지 해야 하는 노동이라고 말했다. 이 세상에 꽤 많은 노동이 거품이 껴있다고 생각했다. 예컨대 드라마<이어즈앤이어즈>에서 한 화이트칼라 직종의 주인공이 은행 파산 사태 이후에 자전거로 배달 노동을 하게 된다. 또한 유퀴즈에서 여의도 펀드 회사 사장님이 점심시간에 두 시간 반을 쉰다며 “일한다고 오르는 게 아니거든요”라고 말한다. 금융 자본주의에 기대어 만들어진 노동은 실제로 어떤 실효성을 가져오는지, 그게 없다고 크게 망하는지 의문을 표했다. 반면, 한 편집위원은 여러 사례를 들며 (미안 기억 안 난다!) 그런 노동으로 하여금 우리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우리 생각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 걸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 회의가 끝났다..
공론장을 만들어보고자 시작했으나, 그 모양새가 어떤지는 항상 잘 모르겠다. 간담회 후 나눈 우리들의 토론까지 여실히 담고자 했다. ‘노동’에 대한 의견이 다 다 달랐지만, 굳이 봉합하지 않았다. 이 지면을 마주하는 이들은 “고작 ‘또 그들만의 목소리’가 담긴 것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보다 우리가 꾸린 마당극과 그 ‘뒷담화’, 각자의 의견에서 차이는 어떻게 생겼는지, 입체적으로 잘 따라와 주었으면 한다.
태현:
대학에 입학했다. 학교 꼬라지가 마음에 안 들었다. 어쩌다 보니 비정규 공대위에 가입했다. 노동자들을 만났고, 집회에 나갔다. 조금 열심히 나갔다. 3학년이 되었다. 여전히 공대위에 있다. 3년간 학교 꼬라지가 마음에 든 적이 없었다.
왜 노동자들과 연대해야 할까요? 이 묵을 대로 묵은 질문에 나는 서로 다른 두 답을 예비해 두었다. 첫째는 별로 안 친한 사람들을 위한 답변이다. 비정규직 여성 고령 청소 노동자의 노동 현실에 열변을 토한다. 학교의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학생 사회의 탈정치화와 복지사업뿐이 하지 못하는 학생회를 비판한다. 필수노동을 존중하지 않는 사회를 성토하며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전한다. 머리 쓰기가 영 귀찮거나 기분이 꿀꿀하면 왜 너도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집회 소리 시끄러우면 고소할 요량이신지 여쭙는다. 두 번째 답변은 다음과 같다 : 그러게요? 그러게요, 우린 왜 연대해야 할까요. 딱히 첫째가 거짓이란 말은 아니다. 그러나 진실과 진심은 다르지 않은가. 정말 그렇다고 하며 당당하게 말할 만큼 진심은 또 아니란 말이다.
이 질문을 두고 설득하거나 싸우고 화내지 않은 지도 조금 되었다. 파업 가지고 룸메와 싸우던 송도의 신입생은 어디 갔는지 생각한다. 처음에는 확신이 있었는데 학년이 오르며 자기 의심만 늘었다. 물론 정말 자기 의심만 것은 아니다. 요즈음은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 땅에 대해 생각한다. 처음 대자보 쓸 적엔 노동자들이 학생을 왜 좋아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고소 사건을 겪고서야 생각한다.
청소 노동자는 화장실이나 쓰레기통 앞, 노동자 휴게실에만 존재한다. 그러니까 그곳에만 존재해야 한다. 그 외엔 안된다. 백양로 한복판, 학생회관 앞, 본관 입구, 백양관의 총무처 사무실의 청소 노동자를 학교는 - 그리고 일부 학생은 허가하지 않는다. 고소 사건 이후 작아진 집회 소리가, 그들의 위축됨이 슬펐다. 그럴수록 존재를 허하거나 금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 땅은 너의 땅이라 이야기해 주진 못해도 그저 함께 있어 줄 수 있는 이들에 대해 생각한다. 그렇다면 그 자리에 함께 있던 나는 무엇이었을까.
인간은 어렵고 나는 심리에 약하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생각했을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내 이야기를 해본다. 나와 함께해주는 이들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는가는 몰라도 그들 덕에 안심한 순간이 많다. 내가 누군가에게 안심이 될 수 있다면, 그러고 싶다. 고작 3년 있었다. 아직 배울 게 많고, 더 많은 사람을 볼 것이며, 그때가 되면 더 많은 이유가 생기리라.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걸로 족하다. 그러니, 지금은 이 정도가 나의 노학연대다.
자, 이제 마무리야. 내용도 많고 형식도 다양하고, 생각보다 읽기 어려웠지? 그래도 끝까지 집중해 줘서 고마워. 행사를 보며 영감을 얻었을지, 우리의 흔적을 보며 흥미롭게 느꼈을지,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을지, 네가 어떤 생각들을 떠올렸을지 궁금하네.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연대는 가볍게 뱉을 수 없는 단어임을 느껴. 다른 이들과 진정으로 연대하는 게 과연 가능할지, 어쩌면 도덕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우리의 욕심이 만들어낸 환상이 아닐지. 글을 쓰다가도, 현수막을 걸다가도, 고민은 갑작스레 찾아와 마음을 흔들어. 하지만 같은 고민을 혼자가 아닌 둘이, 넷이, 몇십 명이 하면 달라져. 흔들림에 멈춰 서지 않고 나아갈 수 있어.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가를 함께 찾고 해내는 순간을 쌓아 올려 한 발짝 발을 내딛는 거지.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연대를 실현하기 위한 과정을 함께 찾아나가는 거야.
오늘 우리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었던 것처럼, 앞으로도 노학연대에 관심 가져줘. 건물에서 노동자를 만났을 때 인사하는 것도 좋고, 기사를 찾아보는 것도 좋아. 행사를 기획하는 건 완전 대박이고!!! 그 모든 순간에 우린 항상 너와 함께한다는 거 잊지 마! 좋은 하루 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