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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Jun 09. 2020

한 달의 안식휴가를 받았다

뜨거운 안식월은 가고 남은 건 별 거 없어요


"회사 다닐 맛 나겠다."


한 달 간의 안식휴가 중 만나게 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었다. 3년마다 주어지는 한 달의 유급 안식휴가. 내가 다니는 회사의 많은 복지제도 중에서 가장 매력적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할, 그리고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제도다.


코로나19가 시작되기 전, 안식휴가가 발생하는 때를 기점으로 미리 계획을 짜두었다. 휴가 내내 발리에서 요가를 할 생각으로 어찌나 설레던지 일찌감치 숙소와 요가원, 비행기까지 모두 예약을 마쳤다. 팀에도 미리 일정을 공유하고 인수인계 계획도 차근차근 꾸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19가 시작됐고 예상과 다르게 장기화되면서, 인도네시아 입국 금지를 최후통첩으로 모든 계획이 와르르 무너졌다. 


그렇다고 미리 공유해 둔 일정을 취소하고 안식휴가를 미루는 것도 팀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닌 데다, 개인적으로 꼭 휴식이 필요했던 때라 같은 날짜에 명상과 요가를 매일 할 수 있는 제주의 한 리조트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 2020 NOODLE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시간은 금세 흘러 그렇게 기다렸던 안식휴가일이 찾아왔다. 회사 메일과 메신저 등 업무와 관련한 모든 알림을 끄고 동네방네 "나 일 안 해요!" 소문을 내고 제주행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일주일은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명절을 겸한 긴 연휴를 보내는 듯한 느낌과 비슷했을까. 하나 달랐던 점은 거짓말처럼 일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았다는 것. 예상과 달랐던 점은 늦잠을 전혀 자지 않았다는 것. 


나는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 사람인지 잘 아는 편이어서 이 기간 동안에는 나의 안정과 행복만 생각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필요도, 반드시 해야 하는 일도, 기를 쓰고 잘 해내야 하는 일도 없었다. 특별한 것을 하는 대신 요가와 명상같이 일상적으로 하던 일에 조금 더 집중하며 보냈다. 다시 일을 시작하는 시점이 되었을 때 나의 행복을 그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지금의 감각을 잃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하면서.


ⓒ 2020 NOODLE


안식휴가 기간 동안 사실 매일 늦잠을 잘 거라고 생각했다. 주말에는 대체로 그랬으니까. 누가 깨우지 않으면 정오를 넘겨서도 잘 수 있었다. 그런데 알람을 맞추지 않아도 일찍 눈이 떠졌고 전혀 피곤하지도 않았다. 보통의 하루는 상쾌한 기분으로 새소리를 듣고 차 한 잔을 우리면서 시작됐다. 아침 명상과 저녁 명상, 또는 아침 명상과 저녁 요가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보내고 중간에는 책을 읽고 혼자 수련을 했다.


리조트에서는 매일 아침 '동적명상' 프로그램이 열려있었다. 그동안 걷기명상, 차명상, 호흡명상처럼 주로 정적인 명상을 해와서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아침을 기다렸다. 초록이 넘실대는 통유리창을 두고 널찍한 공간에서 한 시간 내내 걷고 뛰고 춤추면서 몸 이곳저곳의 감각을 느끼고 내 몸과 마음이 가는 대로 자유롭게 움직인다. 밖에서 그냥 보기만 했다면 웬 무리가 쉴 새 없이 움직이면서 막춤을 춘다 생각하며 우습기도 했겠지만 막상 그 안에서는 정말 자유로웠다. 내가 자유롭다는 게 아니라, 내가 바로 자유 그 자체라는 느낌이었다. 명상이 끝날 때쯤엔 감정과 소리를 토해내고 심장에 손을 갖다 대고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낀다. 몸의 감각을 이렇게 생생하게 느껴본 적이 언제인지, 또 이렇게 건강하게 움직이는 내 몸이 얼마나 고마운지 왈칵 눈물이 나기도 했다.


ⓒ 2020 NOODLE


낮 시간에는 바다를 보며 멍하니 앉아 있거나 낮잠을 자고, 이어폰을 꽂고 숙소 근처를 산책하기도 했다. 날이 더운 날엔 아무도 없는 해변에서 수영을 했고, 일정 중간에는 좋은 친구가 방문해 준 덕에 함께 차를 타고 제주 이곳저곳을 돌아보며 숲길을 걷고 폭포도 보고 전시도 보고 산 깊은 곳으로 드라이브를 다녔다. 완전한 몰입의 경험은 비슷한 일상을 전혀 다른 차원으로 바꿔 놓았다. 매 순간 행복했고 곁에 있어준 사람은 더없이 소중했다.


ⓒ 2020 NOODLE


하루의 많은 시간을 일에 쏟다 보면 그게 나의 전부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아진다. 일의 실패는 곧 나의 실패가 되고,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회사에서의 감정이 많은 경우 하루를 지배한다. 잘 관리하며 지냈다고 생각했는데도 막상 한 달을 일과 완전히 떨어져 지내고 보니 나도 거기서 자유롭지 못했다. 친구들을 만나면서도 수시로 메일을 확인하고 업무가 끝나고 나서도 메신저를 보며 빨리 일을 처리하기에 급급했다. 그러는 사이 놓친 다시 돌아오지 않을 수많은 빛나는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 2020 NOODLE


누군가 안식휴가 어땠냐고 물어보면 당연히 '정말 좋았다'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데 꼭 안식휴가가 있어야만 이 모든 게 가능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돌이켜보니 왜 일상에서 자꾸 다른 일을 벌이고 시간을 쪼개서 써왔는지, 왜 남는 시간에 뭐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에 좀처럼 나 자신을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았는지 의아하기만 했다.


서울로 돌아오기 전 요가 수업을 두 번 남겨놓은 날, 끝나고 할 일이 있어 이후 차담을 못 나누고 공간을 나섰다. 마지막 수업이 남았으니 그때 꼭 마셔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수업이 있던 날 (어떤 사정으로) 차담은 열리지 않았다. 역시 미래는 장담할 수 없구나. '언젠가'는 없다. 함부로 다음을 기약하는 사람이 되지 말아야지, 그리고 오늘의 기쁨은 오늘의 것으로 남겨둬야지. 

 

ⓒ 2020 NOODLE


덧.

특별할 것 없이 특별했던 안식휴가를 보내며 산울림의 무지개를 수도 없이 들었다. 노랫말이 이렇게 예뻤던가, 하면서. 또 내 인생에 소중한 사람들을 곱씹어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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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울고 있니 너는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왜 웅크리고 있니 이 풍요로운 세상에서 
너를 위로하던 수많은 말들 모두 소용이 없었지 
어둠 속에서도 일어서야만 해 모두 요구만 했었지 


네가 기쁠 땐 날 잊어도 좋아 즐거운 땐 방해할 필요가 없지 

네가 슬플 땐 나를 찾아와 줘 너를 감싸 안고 같이 울어 줄게

네가 친구와 같이 있을 때면 구경꾼처럼 휘파람을 불게

모두 떠나고 외로워지면은 너의 길동무가 되어 걸어 줄게



ⓒ 2020 NOOD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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