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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노들 Jul 13. 2021

나를 위한 밥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집밥 연대기의 시작

ⓒ 2021 성노들


결혼을 하면서 서울에서 화성으로 집을 옮기게 됐다. 일도 서울에서 하던 터라, 출퇴근길이 멀어지면서 거의 재택으로 일을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전면 재택근무를 하던 세월이 있기는 했지만, 그게 완전히 나의 새로운 생활방식이 되리라고 생각하진 않았었다. 여하간 새로운 환경에 접어들었으니 다음 할 일은 잘 적응하는 것.


재택근무를 할 때 가장 어려운 점 중 하나는 제대로 된 끼니를 챙기는 일이다. 사무실에서는 시간 맞춰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가고, 커피도 한 잔 마시는 여유도 종종 있지만 집에서는 꼼짝없이 내가 밥 먹는 시간과 메뉴를 정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일을 하다 보면 밥때를 넘기거나, 밥을 먹으며 일하거나, 대강 이것저것 간식을 주워 먹으며 배를 채우게 된다. 아니, 안 되지. 그렇게는 못 살지.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어릴 때부터 밑반찬을 종종 만들곤 했다. 엄마가 요리하는 것을 어깨너머 보고 따라 하기도 하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레시피를 찾아서 그대로 해보기도 하고. 그렇게 재미를 붙인 덕에 스트레스를 받으면 집에 돌아와 말없이 칼질을 하며 화를 풀고, 아빠가 ‘와 이거 예전에 할머니(아빠에겐 엄마)가 해주던 맛이다’ 하는 소리에 신이 나기도 하면서 나름의 집밥 레시피를 차곡차곡 손과 머리, 입과 위장에 쌓아갔다.


이젠 누군가를 위한 밥상이 아니라 나를 위한 밥상을 차려야 하는 날이 훨씬 많아졌으므로. 몇 가지 나만의 원칙을 가지고 식탁을 꾸린다.


1. 가급적 우리 땅에서 나는 좋은 식재료 쓰기

2. 제철 식재료를 최대한 활용하기

3. 가공식품은 최대한 덜 쓰기

4. 어렵지 않게, 간단한 방법으로 조리하기

5. 그리고 마지막, 뭐든 맛있게 먹기


내가 만든 나만의 원칙을 지키면서, 소박한 밥상을 차리며 전에 몰랐던 새로운 기쁨과 행복을 하나씩 마주한다. 식재료의 모양과 색깔이 보이고 하나하나 어떤 맛을 내는지 골똘히 생각하며 먹게 된다. 무엇보다 나를 잘 대접해주는 충만한 하루를 보낸다.


집밥 연대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 2021 성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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