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다는 것은 자기 합리화일 뿐.
(어쩔 수 없이 일부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봤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봤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제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긴 영화였습니다.
그것은 아마도 주인공 이병헌이 연기한 유만수의 상황이 언제라도 직장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곧 직장생활 20년 차를 향해 가는 제 상황도 유만수와 크게 다르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도 한 몫하는 것 같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가 강한 인상을 남겼던 이유를 적어봅니다.
1) 살인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야생의 동물들은 경쟁자를 사전에 제거합니다.
특히 육식 동물들은 경쟁종이 성체가 되기 전에 제거합니다.
그래야 본인과 본인이 속한 무리가 생존할 확률이 높아집니다.
인간사회는 어떤가요?
같은 논리로 경쟁자를 살해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유만수는 해고는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본인의 생존을 위해서 타인을 살해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본인의 생존을 위해 타인을 살해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을까요?
타인이 나라고 생각하면 답은 의외로 쉽게 도출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회사는 내 인생을 대변할 수 있을까요? 동료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주인공 유만수는 20년 이상 다녔던 직장에서 정리해고를 당합니다.
회사를 위해 젊은 시절을 바쳤지만, 회사는 회사일뿐입니다.
회사는 법인격이지 사람이 아닙니다.
회사는 직원들에게 회사를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회사가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한 것은 직장인 본인 자신일 뿐입니다.
회사는 사라지더라도 본인의 인생은 남습니다.
반대로 본인이 사라져도 회사는 남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움직이는 회사를 본인의 인생과 동일시할 이유는 더더욱 없습니다.
동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을 마치고 "위하여~!"라고 소주 한 잔 할 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동료들도,
승진과 보상을 놓고 경쟁해야 하는 순간에는 동료가 아닌 경쟁자일 뿐입니다.
사랑으로 연결되어 있는 가족과 경쟁으로 연결되는 동료가 다른 가장 큰 이유입니다.
3) 실업은 사회와 회사의 잘 못일까요?
주인공 유만수는 종이가 인생의 전부인 사람입니다.
물론 이 사회에 종이가 필요한 곳은 매우 많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계속해서 디지털 환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메모장이 태블릿으로 변경되는 사회입니다.
심지어 종이를 만드는 일도 사람의 노동력에서 자동화된 기계로 대체되는 사회입니다.
그런 환경에서 주인공 유만수. 그리고 또 다른 경쟁자 구범모, 고시조 들도 제지업을 떠나지 못합니다.
사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익숙했던 과거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한정된 자리를 두고 경쟁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해고는 살인이 아닙니다.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도태된 자신의 잘못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4) 심각한 와중에 웃긴 박찬욱 감독님의 블랙코미디
이 영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웃은 장면이 있습니다.
유만수(이병헌)가 구범모(이성민)를 살해하러 온 장면입니다.
유만수는 권총의 소음을 감추기 위해서 음악 볼륨을 높였지요.
하지만 그로 인해 유만수와 구범모는 서로 소리를 지르며 대화를 이어가지만, 제대로 된 대화가 이어질 리 없었습니다.
죽음의 문턱에서 소리를 지르며 대화하는 두 배우의 모습에 정말 너무 웃겨서 어쩔 줄 몰랐던 기억이 납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원작소설 'THE AX'를 바로 구입해서 하루 만에 읽었습니다.
THE AX도 좋았지만, 역시 박찬욱 감독님의 '어쩔수가없다'는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어쩔 수 없다'는 말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변명이자 핑계일 뿐입니다.
분명 방법은 많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른 길을 찾을 수 있는 안목이나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용기가 없다면,
'어쩔 수가 없다'는 자기 합리화만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새로운 일주일이 시작됩니다.
출근을 해야 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모두가 스스로 만들어 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을 능동적으로 미리 대비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무한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을 것이라 생각된,
영화 '어쩔수가없다' 감상평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