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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없이 우리가 법을 말할 수 있을까(천수이 지음)

문제 해결은 판결이 아닌, 들어주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by 책인사

흔히 변호사라 하면 멋진 빌딩에서 햇볕이 잘 드는 창가 사무실 안에서 일하는 모습을 상상하게 됩니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변호사들은 수십억 대의 소송을 대리하기도 하고, 기업에 소속된 인하우스 변호사들은 사회적 지위도 안정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천수이 변호사의 모습은 다른 변호사들과는 다소 달랐습니다.

천수이 변호사는 구청 화장실 앞 칸막이에서 무료 법률 상담소로 변호사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사실 구청 무료 상담소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아주 전문적인 법률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이야기들이 아니었습니다. 그저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삶 속에서 법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벌어지는 일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에 조금만 귀 기울이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었습니다.


천수이 변호사가 전하는,

사랑이 전제되어야 하는 법 이야기를 적어봅니다.


[사랑 없이 우리가 만날 수 있을까 _ 천수이 지음 _ 부키 출판사]


프롤로그. 법의 빈틈을 채우는 사람의 온기

-. 어딘가에는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들어주는 변호사가 있다. 그들은 속 시원한 법적 해결을 원해서만 나를 찾는 것이 아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는 것만으로도 힘이 날 때가 있다. 법이 똑똑한 척 각을 잡고 딱딱하게 굴어도 세상만사를 해결해 줄 수는 없기에, 법 또한 완벽하지 않다. 법의 이성에 빈틈이 있다면, 그 틈을 메우는 것은 사람의 사랑이 아닐까. (P.16)


1장. 준비 _ 달동네 K-장녀, 로스쿨에 가다

-. 가난은 어떤 것에 욕심을 내면 낼수록 스스로 힘들어진다는 뜻이었다. (P.48)

-. 포기하는 순간, 결핍은 나를 내 삶의 주인공 자리에서 끌어내린다. 성장을 방해하고 망치는 중독으로 이끈다. 처음에는 짧은 영상 혹은 술과 담배만으로 즐거움을 얻을 수도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반복적으로 찾게 된다. 안타깝게도 결핍은 근본 원인을 채우지 못하면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P.52)


2장. 시작 _ 변호사인 듯, 변호사 아닌, 변호사 같은

-. 사실과 진실은 가끔 다를 수 있다. 아무리 진실이라도 재판에서 설득해 내지 못하면 그것은 사실이 될 수 없다. 진실이 윤리의 영역이라면, 사실은 논리의 영역이다. 진실은 사실보다 힘이 없다. 재판은 나만 떳떳하면 되는 일이 아니라는 걸, 많은 사람이 자신이 진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 진실이 밝혀지지 못할까 봐 재판을 두려워한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머리가 아닌 마음으로 이해했다. (P.77)


3장. 가족 _ 가장 가깝고도 먼 사이

-. 천민 계급은 애초에 성씨가 없다가 갑오개혁 이후에 신분제가 폐지되면서 그제야 성을 갖게 되었는데, 대체로 주인의 성을 따랐기에 오히려 흔한 성이 많았다고 한다. (P.123)


4장. 관계 _ 원치 않게 맺어지기도 끊어지기도 하는 사이

-. 동료의 '료()'는 '사람 인()'과 '횃불 료 ()'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글자로, 밝게 빛나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동료란 '함께 있을 때 밝게 빛나는 사람'이라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P.174)

-. 누군가를 인정(認定) 하기 어렵다면 인정(人情)으로 바라봐 주는 건 어떨까? '인정사정 볼 것 있다'는 생각으로 타인의 사정을 배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감싸준다면 나를 괴롭히는 사람도, 내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일도 적어지지 않을까. (P.213)


5장. 삶 _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되어야 하는 것들

-. 헛된 희망도 힘이 될 때가 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주인공에게 필요한 건 자유가 아니라 희망이었다. 희망이 가장 무의미하게 느껴지는 그곳에서, 주인공은 희망은 좋은 것이고 좋은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P.235)


6장. 끝 _ 처음과 같이 이제 와 항상 영원히

-. 삶을 한마디로 정의할 수 있는 사람도 없고, 무엇인지 알고 사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구도 자신 있게 알려주지 못한다. 다만 죽음의 순간에 이르러서야 그동안 우리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평가할 수 있을 뿐인데, 그 평가를 가장 가까운 가족으로부터 냉철하게 받게 될 수도 있다. 나의 마지막, 그리고 내가 떠난 이후에 남겨질 것들을 늘 생각하며 살아야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P.267)


에필로그. 잘 듣다 갑니다.

-. 사랑을 이해하지 않고는 누군가의 문제를 진정으로 해결해 줄 수 없다. 숱한 상담을 하면서, 엄격한 법적 논리보다 진심에서 우러난 이해와 사랑이 보다 나은 답이 되는 순간이 많았다. (P.291)


[책장을 덮으며]

회사에서 인사노무 담당자로 일하다 보면, 갈등의 골이 깊게 파여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 경우를 접하게 됩니다.

한쪽에서는 직장 내 괴롭힘으로 피해를 받고 있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괴롭힌 적이 없는데 도대체 무슨 이야기냐고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법과 규정만으로 사건을 바라보면 결국 결론을 도출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법과 규정만으로 재단한 결론은 양쪽 당사자 모두에게 수긍되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처분을 받은 쪽은 수긍하기 어렵고,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는 처분 수위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저는 시간이 많이 걸리더라도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그러면 표면에 드러난 이유 외에도 그 이면 속에 감춰진 문제의 본질을 파악할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이 살면서 벌어지는 일은 사람을 통해서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법이 판결을 내려줄 수는 있지만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천수이 작가님은 변호사이지만 법에 따라 차가운 판단을 내리는 것이 아닌, 가족과 같은 마음으로 따뜻하게 상대방을 대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습니다. 천수이 작가님처럼,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생각보다 많은 문제들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잘 천수이 작가님처럼 잘 듣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려운 상황들을 가슴 따뜻하게 풀어나가는 작가님의 모습에서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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