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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뮤약사 Jan 08. 2023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오줌싸개였어요





“내가 지나가다가 한 번 물어보려고요. 

쏘팔메토 먹으면 효과 있어요?”


“네. 전립선 건강에 좋은, 

소변보시기 불편하신 분들에게 

도움을 드릴 수 있는 약이에요.”


환갑을 넘긴 듯한 남성, 

예민해 보이는 작은 체격과 

감정이 많이 드러나는 억양, 

그리고 다소 괴팍스럽고 도전적인 어투. 


감성이 섬세하고 낭만적인 성향과 

남다름을 추구하는 관념적인 성향을 함께 가지고 있는 

WPI의 M자 유형일 가능성이 느껴진다.


“내가 사실은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오줌을 쌌어요.”


“초등학교 1학년이면 아직 애기였을텐데…”


“학교 다니면서도 계속 오줌 싸고. 

내가 고등학교도 오줌 싸는 것 때문에 안 간다고 그랬어요. 

결혼해서도 여자가 이것 때문에 나를 보고 욕을 했어요. 

병신새끼랑 결혼했다고. 

내가 그 소리 듣고 

그만 살자. 내가 너랑 안 산다, 꺼지라 그랬어요. 

취직했는데, 사장 사모가 옆에 와서 

내가 화장실을 몇 번을 가는지 세고 있어.

왜 당신은 화장실을 그렇게 자주 가냐. 

오늘만 9번 갔다고. 

내가 그 얘기 듣고 바로 거기 그만뒀어요.”




또박또박 덤덤하게 풀어내는 이야기 속에서 

삶 전체의 아픔이 통째로 전해진다. 

다짜고짜 과거를 줄줄 읊으실 만큼 

이 문제에 대해서 지긋지긋해하다 못해, 

조용히 분개함이 엿보인다.




“내가 얼마나 사는 게 고통스러웠는지 알겠어요? 

내가 낮에 하나씩 먹는 게 있어요. 

그걸 하나씩 먹는데, 

한 시간에 한 번씩 소변을 보러 가야 돼요. 

그러니까 남들이 봤을 때도, 

같이 일하다가도 어떨 때는 서른 번도 가야 돼요. 

그래서 조절이 안 된다고 얘기를 했더니 

그냥 먹으래요. 

그래서 내가 너 같은 의사하고 상담하기 싫다 그랬어요. 

그러고 나서 여기를 지나가다 보니까 

약국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약사님한테 한번 물어보려고. 

… 그럼 알겠어요.”


“네… 저… 그런데 부모님이 엄하셨어요?”


“아, 저희 집안이 대대로 엄격해요.”


“애기가 8살인데 계속 소변 때문에 힘들어했다는 건, 

그냥 애기가 힘들다는 건데, 도와달라는 건데. 

만약에 그거 가지고 더 혼내시거나 그러셨으면 

그 과정이 계속 이어졌을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지금 말씀 들으니까 

그거랑 관련해서 상처가 되게 많으시고…”


“네”


“일단 신체의 문제로 생각하지 마시고. 

자주 가시게 될 때랑, 

괜찮을 때랑 차이가 있을 거예요.”


“네, 차이가 있어요. 

어떨 때는 3시간 동안 안 갈 때도 있어요.”


“그게 차이가 어떨 때예요?”


“마음이 편안할 때”




강압적인 환경에서도 잘 적응하며 

힘 있고 단단하게 성장하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자유롭고 충동적이고 

또 너무나 여리고 감성적인 특성을 

함께 가진 아이의 경우,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예민하고 영리한 아이가 

긴장되는 분위기에서 엄격하게 자라며, 

몸으로 불편함을 호소했던 것이 

설명되지 못한 채 

50년을 넘게 이어져 왔다는 것에 

안타까웠다. 


주변에서 이해받지 못하며 

삶의 굴곡이 생기고, 

자처해서 장애인 딱지마저 붙이고 있는 경우도 

종종 본다. 


재능을 꽃피우지 못한 

그 개인에게도, 

우리 사회에도 안타까운 일이다.




“지금 우리 집 식구들이 다 컸지만, 

애기들 3살 되면 가정교육 들어가요. 

그런 집안에서 컸어요. 

어른한테 인사 안 하고 

밥 먹을 때 숟가락 먼저 들거나 하면 

아예 그릇을 빼놔요. 밥을 굶겨요, 아예. 

그래서 그게 좋은 게 아니었었는데, 

옛날 어르신들이 

노할머니 노할아버지까지 계셔가지고 

4대가 살다 보니까. 


제가 울고 살았어요. 

학교 다닐 때도 오줌싸개라고 소문나서 놀림받고. 

그래서 제가 중학교 다니다가 소변 때문에, 

고등학교 가려고 할 적에, 

내가 학교에 다니는 게 아니라 

이래 가지고 못 산다 그러면서 

공사하러 다녔어요. 

그랬더니 공사장에서 

담배 피우면서 일하니까 

소변 반응이 확 줄어들었어요.”




남들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 의식되고, 

실수하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는 마음이, 

안정적인 반복적이고 분명한 작업을 하시면서 

많이 편안해지셨던 모양이다. 


담배도 불안을 줄여주는 데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사실 나는 이야기를 나누다가 

담배와 음주를 권하기도 하는 약사다;)




“그때의 경험들이 있으시잖아요. 

내 마음이 편안한 상태면 효과가 있다는, 

내가 통제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길 때. 

그럴 때가 어떤 때인지 잘 살펴보시는 게, 

쏘팔메토 드시는 것보다 더 중요해 보여요.” 




고가 도로 근처의 외딴 약국, 

오가는 사람도 별로 없고, 

병원도 문을 닫아 처방전도 오지 않는다. 


퇴근 시간은 훌쩍 넘겼지만, 

지금 이 순간이 그 사람에게 

무척 중요하다는 것을 알기에, 

그리고 내가 이 자리에 있을 의미가 만들어 지기에, 

이야기를 이어간다.

 

시계가 한 바퀴를 돌고 두 바퀴를 향해간다.




“선생님 한 가지 더, 제가 애인이 생긴 것 같아요.”


대화가 길게 이어지다 보면, 

연령이나 성별과 관계없이 

이성에 대한 주제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주로 정력제에 대해 문의하거나 

해피드럭에 대한 궁금증들과 연결되는데, 

사람은 사람과 어울리고 

비비고 사랑하며 사는 존재이기에 그런가 보다. 


10여 년 전 미혼일 때는 

아무도 약국에서 

나에게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는데, 

어느덧 중년으로 진입한 나를 

어른 측에 끼워주나 보다. 


일을 다시 시작하고 나서, 

처음에는 이런 일들에 많이 놀랐었는데, 

그만큼 그게 한 사람의 삶에 

중요한 주제이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부모님 연배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엄마도 그랬을까? 

아빠도 그랬을까? 생각해 보면 

생경하긴 하다. 


그렇지만 내가 살아보지 않은 나이라고 해도 

마음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을 것 같다. 


청춘 시절 품었던 애틋한 감정이, 

상대에 대한 갈망이, 

욕망의 혈기가 

나이가 든다고 해서 사라진다는 것도 

따지고 보면 이상하지 않은가.


지금보다 더 어릴 때는, 

누군가 이런 얘기를 해온다면 

‘지금 내가 성희롱을 당하는 것일까?’, 

‘내가 만만해 보이고 

헤프게 보여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걸까?’, 

‘내가 매력적이고 어렵게 느껴진다면 

이러지 못하지 않을까’라며 

엉뚱한 자책을 하거나, 

어쩌면 불쾌해했을 것이다. 


그 사람의 마음이 어떤지,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것인지 

궁금해하기보다, 

내가 어떻게 평가되는가에 

집중하기에 그랬던 것 같다.




이제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아줌마가 되어 한결 여유로워진 나는, 

단순히 그 사람의 마음의 풍경을 

이야기하고 싶을 뿐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더 이상 특별한 주제가 되지 못한다는 

편안함이나 심드렁함이 생긴 것이다.




여자친구분과 관계를 맺으면서 

행복하셨던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자기에게 이런 기쁨을 알려줘서 고맙다며 

울음을 터뜨렸다는 

애인의 표현이 

감동스러우셨던 듯하다. 


이어서 다부진 팔뚝과 

야무져 보이는 손을 자랑하신다. 

맥가이버 급의 손재주를 발휘한 경험을 

한껏 전해주신다. 


칭찬을 들으며 으쓱하게 자라나고 싶어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들 같다.




“저 지금 이런 심정으로 안정되는 것은 

거의 몇 년 만에 처음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내가 병원이랑 약국을 평생 얼마나 많이 다녀봤겠어요. 

제가 정말 힘들었어요.”




어른들의 민감함을 포착하여 

자신만의 감성과 논리로 증폭시키며, 

극심한 불안 상태에 빠지고 

배뇨로 고통을 호소했던 

8살 아이가 살아온 세월. 


너무도 순수하고 솔직하게, 

스스로 뿌듯하게 느끼던 순간들을 

한껏 표현하실 수 있어서 다행스러웠다. 


익숙한 관계에서는 오히려 어려울 수 있다. 

또는 꾸준히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줄 

자신이 없기도 하다. 


그래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일을 하면서 

가끔 이렇게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덩달아 즐겁고 감사하다.




약국에는 밤잠을 못 이루는 분들이 

참 많이 오신다. 

농담 삼아서 

‘누군가 포근하게 안아주고 예뻐해 주면 

잠이 잘 올 텐데요.’라고 말을 던져보면, 

생각보다 다들 

진지하게 수긍하시곤 한다. 


그래서 한때는, 

밤새 울어대는 고양이나, 

산비둘기의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었다. 


함께 끌어안고 

온기를 나눌 이가 없어서 

밤새 깨어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 동안 감당해야 했던 

긴장감과 두려움을 진정시켜 주고, 

외로움을 위로해 줄 사람이 없어서, 

앞날의 불안을 다독여줄 사람이 그리워서 

다들 잠을 못 이루는 건 아닐까. 


다 괜찮다고, 

내일은 더 좋아질 거라고, 

충분히 잘하고 있는 거라고, 

격려해 주는 목소리가 없어서 

채워지지 못한 허전함이 

사람들을 깨어 있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런 엉뚱한 생각을 해본 적이 있다.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정말 사람은 제각각이다. 


이분처럼 이성 관계에 

자신감을 보이며 표현하시거나,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시는 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나이와도 외모와도 

전혀 연관성이 없다. 


일흔이 넘으셨어도, 

호기롭게 사랑을 찾아다니시는 분이 있고, 

쉰도 되지 않으셨는데 

‘이 나이에 누가… 너무 늦었지…’라고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그런 분들은 대개 

누군가 먼저 다가와 줬으면 좋겠다고 기다린다.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신다. 


새로운 활동을 시작하는 것에 대해서도 

태도가 갈린다. 


아는 사람이 데리고 챙겨주지 않으면, 

조심스러움 때문에, 

애초에 관계망이 확장되지 못하는 문제도 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어쩌다가 제각각 홀로 

도시에 남게 되었을까. 


자신의 얘기를 할 공간도 대상도 없이, 

각자의 껍질에 갇혀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되었을까. 


수줍음이 많고, 

친숙한 것을 소중히 하며, 

진득함을 보이는 감성적인 사람들. 

혼자 삶을 견디기에 쓸쓸한 사람들. 

그들이 서로 많이 많이 사랑했으면 좋겠다. 


마음의 열정을 키우고, 

자신을 상대에게 던져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수면제를 사 먹으며 잠이 드는 대신, 

보듬고 안아 

피곤함을 온기로 비벼 뭉개고, 

고독한 긴장을 풀며, 

그날의 성취를 나누는 것 말이다. 


애틋한 눈길과 

고소한 살 내음 속에서 

숨소리를 맞추는 시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중에 개국하게 되면 

‘마음글방’이라며 

심야 컬처 모임이라도 만들어볼까?


밤과 사람, 

책과 잠, 

너무 어울리는 조합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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