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일에서 분노를 느꼈을 때
전철에서 내릴 때 뒷사람이 신발 뒤꿈치를 밟았다. 느슨하게 묶인 신발이 반쯤 벗겨지고 말았다. 돌아보니 젊은 남성이 있었다. 그도 나를 힐끔 보았다. 그러나 핸드폰에 시선을 그대로 둔 채 지나쳐갔다. 아무 생각이 없던 내면에 감정이 피어올랐다. 그 감정은 분노였다.
“사과도 안 하고 그냥 가나요?”
내가 소리 내서 말을 해보았지만 남자의 귀에는 에어팟으로 막혀 있었다. 눈은 여전히 핸드폰만 주시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예 의식이 없지는 않았나 보다. 나와 거리가 어느 정도 멀어지자 총총 뛰어서 빠르게 사라졌다. 그 모습에 더 뿔이 났다.
기본적인 사과도 하지 않다니!!!
남자에 태도에 나는 마음속으로 온갖 비난을 퍼부었다. 심지어는 뒤따라가서 똑같이 뒤꿈치를 밟아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냐 아냐 지금 화가 나서 감정이 격해진 거야.’ 어디선가 제3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목소리는 상황을 먼 곳에서 관망하며 객관적인 의견을 전달하는 나의 내면의 목소리다.
안다. 나는 지금 ‘화’라고 하는 감정에 사로잡혀 있다. 아주 자극적이어서 싫다고 느껴도 자꾸 쳐다보게 되는 중독적인 감정이다. 한편 30초만 참으면 지나가는 감정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 30초를 참을 수 없어서 산사태가 나듯 분노가 쏟아지지만 말이다.
어딘가 정신을 돌릴 만한 곳이 필요했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철에서 신발을 밟혔고, 상대는 사과도 안 하고 사라졌다고 성토했다.
“사과할 타이밍을 놓쳤나 보네.”
낄낄 거리며 남편은 말했다. 역시 공감 안 해줄 줄 알았어……
우리는 점심 메뉴 따위의 잡담을 더 나누다가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출근을 해서 동료들과 인사를 하고 일을 하고 밥을 먹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 사람 정말 사과할 타이밍을 놓친 걸지도 몰라.’
종종거리며 도망치듯 멀어지는 모습이 떠올랐다. 그냥 사과도 못하고 시치미를 택한 미숙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도 해야 할 때를 놓치고 바보처럼 군 적이 많다. 더 이상 그 일이 불쾌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깔끔하게 사과를 했다면 내가 괜히 화내고 그 화를 다스리려고 노력도 안 했겠지만 뭐 어쩌겠는가. 살다 보면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