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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화 Jun 28. 2019

세 번째 여행, 월평공원

자신을 찾는 것이 여행이라면, 모두의 여행지는 자신의 지척에 있다.

어느 날, 학보사 선배의 근황이 궁금해서 포털사이트에 선배 이름을 검색했다. ### 기자. 놀랍게도 선배의 얼굴로 추측되는 사람이 포털 상단에 바로 나왔다. 그 선배였다. 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바로 아는 모 언론사의 서브채널의 기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찾은 곳이 바로 서구 도마동의 월평 녹색 나눔의 숲이다.


월평 녹색 나눔숲에 들어서면 생태연못을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다. 곳곳에는 벤치가 설치되어 있다.


나 역시 기자를 꿈꾸던 학부생이었다. 일반적인 기자를 꿈꿔왔던 건 아니었고, 국내에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교육 전문기자였다. 당시의 나는 순수하게, 배우는 게 좋았다. 성적이 썩 좋지는 못했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알아가고 그에 대해 논하는 게 너무 좋았다. 더불어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수단인 글이 좋았고, 글로 무언가를 바꿀 수 있다는 것에 쾌감을 느꼈기에 오랜 시간 관심을 갖고 여러 활동들을 해오며 꿈에 한발 더 다가가려 노력했다.


그러나, 대학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할 수 있다는 믿음과 얼마나 재밌을까 하는 설렘에 한껏 부풀어올랐던 나의 기대감은 대학에 들어온 후 학보사에서 자리 잡으면서 짜게 식어갔다. 생각했던 것만큼 '기자'라는 직업이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에는,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것은 꽤 즐거웠던 것 같다. 일단 대학부에 들어가 고등교육에 대해서 심도 있게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취재를 하며 내가 배워가는 기분이었달까. 내가 써보고 싶었던 것들을 직접 만들어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기사를 쓰면 아주 미세하게 변화해가는 모습이 좋았고, 많진 않았지만 내 글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있어 좋았다. 이주 텀으로 치열하게 편집회의를 하는 것도, 헤드라인의 최종 결정권자였던 교수님을 설득하는 것도, 주말을 반납하고 밤잠을 반납해가며 마감을 치는 것도 행복했다.


정작 내가 힘들었던 건 사람이었다. 변명을 좀 하자면, 수습을 간신히 벗어난 때에 편집국장을 맡고 막 제대한 몇 기수 높은 선배와 막 들어온 수습기자를 수습하기엔 나는 너무 어정쩡했다. 물론 내가 잘 극복했다면 좋았겠지. 하지만 는 그러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고백하건대, 기수 높은 선배의 존재는 내가 편집국장인지 아닌지 헷갈리게 했다. 거기다가 인원이 없어 힘들다 보니 나와 명백히 반대 성향일 것이라고 추측되었던 수습기자를 쉽게 내칠 수 없었고, 그 선택은 1년을 꾸역꾸역 버티다 선배들이 모두 졸업을 하고 떠나는 시기에 폭탄이 되어 터져 나왔다. 그 후배는  앞에서 나에 대해 욕을 한 것도 아니고, 그만두겠다고 선언을 한 것도 아니었으며, 연인들 사이에서 최악의 이별으로 꼽히는 '잠수 이별'을 택했다. 이제는 연락이 되어야 할 텐데, 왜 연락이 안 되는지 어이가 없을 시점에 가까스로 연락이 닿아 물어보니, 적반하장으로 하는 말.


"그만둔 건데요?"


그때의 나를 되짚어보면 그렇게 상식 밖의 행동을 하는 후배보다, 그런 상황을 만들었던 선배들이 몹시 원망스러웠다. 나에게 큰 책임을 안기면서, 정작 내가 행동할 수 있는 범위는 이렇게 좁혀놓고는 내가 그 후배를 설득하기를 바라다니. 그날로 나는, 학보사를 떠났다.



월평 녹색 나눔 숲에서 도솔산으로 들어가는 등산로 입구


그 뒤로도 기자를 꿈꿔왔지만, 나는 결국 기자가 되는 길을 걷지 않았다. 내게 '기자'라는 직업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즐겁게 글을 쓰고 그것으로 만족감을 얻을 수 있는 수많은 길들 중 하나였을 뿐, 내가 이 길을 걷지 않는다고 나 자체가 무너지지는 않는다.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것은 글을 쓰는 것이고, 또 교육이라는 장에서 작게나마 변화시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여기에 남아있는 거다.


여행이란, 일상과 다른 낯선 곳에서 자신을 찾는 행위라고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월평공원이 내게 여행지인가는 조금 의문이 들 수도 있겠다. 사실 학보사를 다녔던 시기에도, 그 뒤에 묵묵히 학교를 다녔던 시기에도, 졸업 후 결국 이곳에서 머무르게 된 뒤에도 나는 이 공원을 찾지 않았다. 당시의 나는 자신을 찾는 행위조차 버거웠고, 그래서 내가 머무르는 행동반경에 벗어나지 않은 채로 웅크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나라는 사람을 마주할 용기가 생겼고, 나는 이곳에서 내가 왜 이곳에 머무르게 되었는지에 대한 결심을 얻어냈다. 솔직히 이곳에서 글을 쓰고 있지는 않지만, 적어도 내가 교육의 장에서 먼지만큼은 기여를 하고 있지 않을까. 스트레스를 받아, 번아웃 증후군으로 고생하는 와중에도 내가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은, 이곳이 목적이 아닌 수단이기 때문이리라.




월평 녹색 나눔 숲에 조성된 대나무 숲

몇 년 전 이곳의 기사를 쓴 적이 있었으나, 잘 들르지 않았던 이 곳은 서구청과 산림청 산하 녹색사업단이 8억 원을 들여 만든 곳이다. 실은 그래서 캠퍼스 내에 학생보다 주민들이나 여행객이 더 많다고 느낄 때도 있었다. 이 공원을 가로지르면 도솔산의 산책로 중 하나로 진입할 수 있어 산을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굉장히 좋아한다고. 멋진 메타세쿼이아 길을 다른 여행지에서 찾을 것 없이 이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가끔 근처 카페에서 눈동냥으로 훑어보기엔, 사계절이 모두 아름답지만 특히 가을이 가장 예뻤다.


예전부터 겉돌듯 훑어보긴 했지만 정작에 찬찬히 훑어보며 머물렀던 적은 없었기에, 오늘의 여행은 무척이나 특별했다. 뒤편에 도솔산이 바로 있어서일까. 편백나무에서 흘러나오는 피톤치드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불어오는 바람에 다각 다각 휘날리는 대나무 소리. 시원하게 뻗어있는 메타세쿼이아 길. 그 아름다운 관경을 찬양하듯 노래하는 작은 새들. 온갖 풍경들이 다 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니.


비록 가을보다는 덜 아름다운(?) 여름이기는 했지만, 선배의 소식으로 어지러웠던 나의 머릿속이 이곳처럼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그 선배는 그 선배대로, 나는 나대로, 꽤 괜찮은 길을 걷고 있는 거다. 진리는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듯, 이렇게나, 지척에 있다.


P. S. 혹시 선배가 이 글을 보고 있다면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배재대학교 안쪽으로 쭉 들어오면 기숙사 뒤편에 월평 녹색 나눔 숲이 조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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