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대은 Jun 21. 2019

1만 시간의 법칙, 있다? 없다?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그 얘기로 넌 핑계를 대고 있어

사진 : 뉴질랜드 무리와이비치에서 (2006년)

호도애 : '길'을 의미하는 헬라어 hodos와 사랑愛의 합성어. '사랑의 길'이 되고픈 마음을 담은 장대은 작가의 꿈이름입니다.

1만 시간의 법칙, 있다? 없다?

워싱턴포스트 기자 출신 말컴 글래드웰은 자신의 책 『아웃라이어』에서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다. 특정 분야의 달인이 되는데 필요한 시간으로 1만 시간이 필요하다 말하며 여러 근거를 제시한다.


1만 시간은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 하루 3시간씩 1년 365일 꼬박 투자했을 경우 10년이 소요되는 시간이다.

이 법칙은 조성된 환경 속에서 시간을 투자하고 집중적이며 지속성 있는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 개념이다.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는 것은 천재성보다 환경과 노력에 있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은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 모차르트와 같은 이들을 이야기할 때 그들의 천재성을 주목한다. 그들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들의 업적이 평범한 사람으로 노력해 얻은 결과가 아닌 타고난 천재성 때문에 얻어진 결과라 생각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생각은 다르다. 천재성의 차원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고 보았다. 노력의 과정을 통해 이룬 성공으로 보았고 다른 이들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지는 기회임을 이야기한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반론자들은 1만 시간의 법칙이 시간의 노력만 강조하고 재능의 효과와 효율적 측면을 간과했다며 비판한다. 재능과 노력에 대한 논쟁이다.

말콤 글래드웰도 이들의 반론에 동의한다. 자신이 주장한 이론이 모든 분야에 통용되는 것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중에서도 스포츠나 음악과 같은 예술 분야가 대표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노력을 할지라도 타고난 재능에 의해 그 결과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는 영역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말컴 글래드웰의 1만 시간의 법칙은 안데르스 에릭슨 박사에 의해 먼저 강조되었다. 에릭슨 박사는 자신이 의도했던 것 이상으로 ‘1만’이라는 숫자에 과도하게 집착하는 현상에 우려를 표했다. 시간의 투자도 중요하지만 환경과 탁월한 방법과 기술에 따라 나타나는 결과의 질적 차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누차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같은 환경과 조건일지라도 시간의 양과 의식적 노력, 질을 높여가는 노력에 따라 결과는 달리 나올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1만 시간은 성공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지만 가장 중요한 요건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 시간을 채우는 방법과 기술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같은 기간 일지라도 주어지는 결과도 각양각색이다. 인적자원, 재정의 유기적인 영향 가운데 결과로써의 성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주어진다. 그렇다고 시간의 투자가 가져다주는 결과를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1만 시간의 법칙에 대해 갑론을박하는 대표적인 이유는 이것을 법칙이라 강조했기 때문이다. 법칙이 무엇인가? 사전에서는 ‘수많은 관찰과 분석의 과정을 거쳐 정리된 종합 원리.’라고 정의한다. 주관적인 사실이 아닌 객관적으로 증명된 사실을 법칙이라 부른다. 만유인력의 법칙, 관성의 법칙 등 자연과학의 영역에서 인정받은 자연법칙들이 여기에 속한다. 그런데 그러한 법칙들조차 상황과 절대 여건이 바뀌면 법칙으로서의 힘을 상실하게 된다. 자연과학의 영역에서도 그럴 진데 사회과학의 영역에서 절대 법칙을 논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다 보니 1만 시간의 법칙을 통해 강조하고자 했던 메시지보다는 명칭과 숫자가 주는 이미지에 제기되는 반론이 심했던 것도 사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1만 시간의 법칙에서 중요한 것은 1만 시간 그 자체가 아니다. 그 시간은 1만 시간일 수도, 2만 시간일 수도 있다. 분야에 따라서는 1천 시간일 수도 있다. 주변을 돌아보면 100시간 만에 이룰 수 있는 전문성의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기억해야 할 것은 좋은 환경이 전제되고 올바른 방법과 기술이 더해지는 상황이라고 했을 때 1만 시간의 노력이 가져다주는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는 사실이다. 서로 다른 환경, 서로 다른 초기값과 절댓값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1만 시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과정의 진보와 성취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한다.

우리 주변을 보면 상식을 뛰어넘는 천재성을 나타내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 앞에 1만 시간의 노력이 초라하게 보여지기도 한다. 그러나 기억하라. 99.9%의 사람들에게 있어 인생의 결정짓는 가장 큰 요인은 천재성보다는 노력의 유무라는 사실이다. 천재성의 질보다는 1만 시간의 양이 우리 삶에 큰 영향으로 다가온다. 투자한 시간과 그 시간을 채우는 열정과 의지는 결코 천재성보다 작은 것이 아니다.

천재성은 핑계할 수 있겠지만 노력의 양은 핑계할 수 없다. 1만 시간이라는 양적 노력이 선행된 이들에게 시간의 질, 배움의 질을 높여가는 노력이 주어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까? 그 과정의 진보를 보는 이들은 외칠 것이다.

‘저 사람은 역시 차원이 달라!’  

천재성을 가진, 설명 불가능 한 재능의 영역을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의 유무로 자신의 실패의 핑곗거리를 삼아서는 안 된다. 재능과 천재성의 부족을 시간의 노력을 통해 극복한 역사의 거인들의 발자취를 잊지 말자. 그 교훈을 당신의 성공의 밑거름으로 삼아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