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아빠가 한국으로 떠나고 하룻밤을 보냈다. 걱정했던 것보다 별생각 없이 금방 잠들었다. 꿀잠을 잤다. 워낙 생각이 많은 터라 혼자 감성 폭발해서 울지는 않을까, 남몰래 걱정했었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갔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일어나서 씻고 자리에 앉아 성경을 읽었다. 한국에서 5개월 동안 디자인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며 8시에 집을 나서야 했기에 한동안 잘 읽지 못했다. 폴란드에서 새롭게, 꾸준히 읽어보자 결심해 본다. 내일부터는 언니도 함께 성경을 읽기로 했다. 아무래도 현희 언니가 있으니까 의지가 되는 것 같다. 신앙적인 면이나, 커리어에 있어서도 너무 멋진 언니!(엄지 척!!)
성경을 읽고 언니랑 헬스장으로 향했다. 엄마 아빠 없이 처음으로 폴란드 거리를 돌아다녔고 사람들과도 마주 대했다. 물론 언니가 다 통역을 해줬지만, 영어로 말하는 건 얼추 알아들을 수 있었다(말이 안 나올 뿐!!). 주짓수 체육관이 생각보다 멀어서, 일단 언니가 다니는 집 앞 헬스장에 등록하려 했다. 그런데.... 맙소사!! 만 18세가 되지 않아 단기간 등록은 안된단다. 1개월 권부터 끊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다. 오늘은 1일 체험으로 운동하고 나오긴 했지만, 3개월 등록이 안 된다니 너무 아쉬웠다. 매일 아침 헬스로 시작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는데..
그래도 오늘은 2시간 정도 운동할 수 있었다. 동유럽 여행 다니느라 3주간 운동을 못해 몸이 무거웠는데 오랜만에 운동을 하니 몸이 날아갈 듯 가벼워진 느낌이다. 직원도 나름 친절했다. 기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헤매고 있으니까 친절히 다가와 알려주었다. 언니가 이야기해줬던 폴란드 사람들의 친절함과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한 두 사람을 경험하고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세상은 넓고 대부분의 상식적인 사람은 친절하지만, 그중 몇 명은 꼭 이상한 사람이 있다. 만약 폴란드에서 이상한 사람을 만난다고 해서 그들로 인해 폴란드를 불친절한 나라로 만들어서도 안 되는 것처럼 말이다.
헬스를 끝내고 바로 앞에 장을 보러 갔다. 엄마가 폴란드 시골을 여행할 때 동양인이 흔치 않아서인지 돌아다니면 시선이 집중되어 부담스럽다고 여러 번 말한 적이 있었다. 사실 나는 별 상관을 안 했고 시선이 느껴져도 오히려 즐겼던 것 같다. 시선이 느껴질수록 ‘괜한 자존심’이 생겨 더 당당하게 행동하자! 기죽지 말자 되뇌었다. 그럼에도 확실히 가족과 떨어진 17살 여학생 장호아, 짧게나마 마트와 길거리를 돌아다녔을 때 느껴지는 사람들의 시선이 조금은 신경 쓰였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한 사실은 폴란드 사람들에게 내가 외국인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을 자신의 눈으로 바라보고 자신의 시점으로 바라본다. 한국인이 나에게는 한국 사람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외국인이었다. 실제로 그렇다. 한국 사람들이 보기에 한국 사람을 제외한 다른 나라 사람, 특히 외모와 체형의 차이가 명확한 서양 사람들은 더더욱 거리감 느껴지는 외국인이다. 그런데 지금 내가 있는 나라는 폴란드고 폴란드 사람들에게 나는 거리감이 느껴질 수 있는 외국인이라는 당연한 생각을 오늘 처음 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한국에서 외국인들이 지나가면 우리와 다른 외모를 가진 사람이 신기하고 생소해서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듯이, 폴란드 사람들 또한 우리가 신기하고 생소해서 쳐다보는 것이지, 이상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머지않아 그 시선을 너무 부정적이거나,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내가 먼저 다가가 많은 사람들과 소통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그런 날이 왔으면 좋겠다.
마트에 빵을 사러 갔을 때, 빵을 잘라주던 직원이 나한테 빵을 주면서 폴란드어로 뭐라 뭐라 이야기했다. 사실 나는 나한테 이야기하는 것도 몰랐는데 옆에 있던 현희 언니가 “방금 저 언니가 네가 너무 예쁘다고 이야기했어”라고 말해줬다. 헬스를 마치고 땀범벅이 된 상태에서 간 거라 정말 말도 안 되는 몰골이었는데, 진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외국인에게 예쁘다는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신기하기도 했고 좋기도 했다. 폴란드인들에게 동양인인 내가 신기하고 그들 각자의 시점으로 세상과 사람들을 바라보는구나 등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름 많은 생각이 들었던 오전 일정을 마치고 들어와 언니와 라면을 끓여 먹었다. 헬스로 젖은 몸을 씻고 책상이 아닌 따듯한 침대에 앉아 글을 쓰는 시간을 가졌다. 어제 못했던 아빠의 영상편지 타이핑과 그에 대한 에세이 작업을 진행했다.
한국에서는 아무 생각 없이 내가 나를 책임지지 못하는 행동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폴란드에 며칠 혼자 있었다고 벌써 달라졌겠냐마는, 확실히 나는 혼자 외국에 나와 있고 이제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 마음가짐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 듯 평소처럼 핸드폰을 만지기도 했지만 한국에서 했던 시간의 반의 반도 만지지 않았다. 노력한 것이 아니다. 마음가짐이 달라지니 그냥 핸드폰에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내가 하려고 했던 일들에 집중이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오늘 영어 공부를 생각보다 많이 하지 못했다는 것!!
지금은 현희 언니가 레슨 수업 차 나갔기에 집에 혼자 남아 글을 쓰고 있다. 혼자 집에 남아 덜컹덜컹 창 밖의 소리를 들으니 무섭기도 하고 폴란드 독립 여행이 시작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이곳에서 해야 할 나만의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아빠의 영상편지도 보고 열심히 글을 쓰며 나만의 영어 공부를 시작한다.
아빠는 오늘의 영상편지에서 돈의 가치관에 대해 이야기해주셨다. 나에게 지금까지 돈을 벌 수 있는 능력 세 가지를 준비해 오셨다는 것인데 머리로, 몸으로, 감성과 예술적 분야에서 한 가지 씩이라는 것이다. 글쓰기와, 주짓수, 도자기 그리고 디자인이 바로 그것들이다. 한국에서도 가끔 언급하신 부분이지만 막상 내가 지금까지 준비해온 것들을 영상을 통해 다시 들으니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하고, 동시에 조금 더 열심히 할걸 하는 후회가 되기도 한다. 지금까지 아빠한테 많이 들어왔던 이야기지만, 막상 타지에서 혼자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괜히 하는 말이 절대 아니다. 정말로, 타지에 나와서 한국에서 하던 일을 똑같이 해도 그 느낌과 결과는 확실히 차이가 나는 것 같다. 폴란드에 나와서 정말 오랜만에 글쓰기가 재미있고 기도와 예배가 재미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된 것처럼, 나에게 지금이 얼마나 중요한 상황이고 엄청난 기회로 주어진 시간이라는 것 또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아침 헬스 이외에 나갈 일이 없어 집에서 글을 쓰고 영어 공부하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밖을 나가보려 한다. 집안에서 혼자 있으면서 느낄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밖으로 나가 폴란드라는 나라를 직접 느껴보는 것을 통해 몇십 배 느낄 수 있는 게 많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스스로에게는 나름 만족스러웠던, 동시에 어느 정도의 발전과 성장, 과정의 진보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하루였다.
오늘을 행복하게 보낼 수 있도록 인도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내일 하루는 오늘보다 더 성실하게, 그리고 의미 있는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