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현동, 2024
S은행 365일 ATM점 한 곳이 폐쇄되어 있다. 곁에서 늘 주머니 사정을 챙기겠다는 동네 사도였는데 365일 약속은 무슨 약속이라고. 영원하리란 생각은 공원객이나 카드족만의 사정일 터이다. 인근 동인천 '잉글랜드' 돈가스 가게는 주말을 감안해도 긴 줄이 야속했다. 더구나 3층에서 2층 출입구 계단으로 흘러내리는 담배 연기에 대기 줄은 어떤 생명처럼 끊어지면 안 되는 가혹함이었다. 다행히 돈가스는 맛있고 분수대 물소리와 마마스 앤 파파스 노래가 가을이라는 보트 위에 던져진 도시락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참전 군인이었을 것도 같은 다리 절뚝이며 앉던 한 어르신은 옆 테이블에 혼자셨다. 어르신 입장에선 아마 셀프 시스템이 보다 불편했을 것이다. 케이블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소개된 이후로 방문이 늘어 주문에 응답하기도 바쁜 이곳은 카드 숫자 돌아가는 소리가 찰지다. 뮤직박스도 새롭게 탄생했다. 인생이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간다던데 맛있게 돈가스를 처넣으면서도 돈벌이에 급급해 살다가는 후회할 것 같단 생각을 한다. 하여튼 둘 다 걸신인지 빈 그릇만 남기고 나오는데 마치 잉글랜드 놀이동산에 다녀온 느낌이다. 한편,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조금씩 짓궂어 가는 아버지가 5G 최신 휴대전화로 기변을 했다. 어머니 말로는 너무 자주 바꾸신다고. 과연 아버지의 시도는 어디가 정점일까? 진득한 약속은 없다(나라도 저 모양이다). 모든 약속은 야속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 자리란 말이나 인생금고 사라진 은행 365점이나 조용히 지냈으면 하는 아들의 법도는 도랑치고 가재 잡는 격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