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티샵, 골든 라이언과 커피 하우스
얼마 전 볼일이 있어 오랜만에 건대입구 쪽에 갔다. 언제 가도 복잡하기 그지없는 먹자골목을 걷다가 문득 눈에 들어온 디저트 가게 이름이 '골든 라이언' - 분명 홍차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차린 곳일 거라는 확신이 들자 괜스레 반가웠다. 시간이 없어서 들어가 보지는 못했지만, 찾아보니 유럽풍 디저트를 중점으로 파는 곳인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골든 라이언 The Golden Lyon'은 트와이닝스가 1700년대 초반에 런던에 차린 최초의 잎차 전문점이다.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답게 아직도 그 자리에 숍이 남아 있다. 런던의 중심가인 스트랜드 가에 있고, 입구는 그리 크지 않아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매장이 길고 좁은 편이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이 숍은 18세기 초에 있었던 역사상 최대 규모의 남녀 간 분쟁(!)과 연관된 곳이기도 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상류층 부부간의 논쟁이었지만.
1700년대 런던에서는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신문물, 커피와 차가 동시에 사람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음료를 마시는 것과 수다는 떼놓을 수가 없기 때문에, 당시 가장 인기 있었던 톰스 커피하우스는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알코올이 없는 음료를 마시면서 이야기하는 곳이었기에 좀 더 건설적이고 이성적인 논의들이 오갈 수 있어서 커피하우스의 인기는 점점 높아져 갔다.
그러나 '젠틀맨스 클럽'과 마찬가지로 커피하우스에는 남성들만 들어갈 수 있었고, 여성들의 입장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다. '여성에게서 벗어나 자유롭게 쉬는 공간'으로서 커피하우스는 그 역할이 공고해져 갔다. (남성 전용 게임방 같은 느낌인가?)
여성들은 그에 대해 '커피하우스는 남자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서 가정에 소홀해지게 한다', 그리고 '커피가 남자들의 성기능을 떨어뜨린다(!)'고 주장하면서 커피하우스를 반대하는 청원을 하기도 했다. 당시 이 문제는 상당히 큰 사회적 이슈가 되었고, 가정에서는 이로 인한 부부간의 다툼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남자들은 여자들의 논리에 대해서 당당하게 "커피하우스는 시민의 대학이다"를 한 번 더 강조하고, 명백한 협박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앞으로 이에 반대하고 아니꼬운 청원을 내려는 여자들은 혼자서 자게 만들고, 낮에는 시큼한 버터밀크만 마시게 해야 한다" - 차의 세계사 中
그렇게 1차적으로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부부 싸움은 막을 내리지만, 조금 지난 후 상황은 뒤집힌다.
1717년 토마스 트와이닝스는 여성들도 차를 사러 올 수 있는 '골든 라이언' 티 전문숍을 열게 되었고, 여성들은 점차 그곳에 모여 차를 사면서 사교를 할 수 있게 된 것. 주변 상점도 사들여 확장하게 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몇 주년 기념행사를 하는 듯)
그전까지는 차를 사려면 커피하우스에 남편이나 남자 하인 등을 심부름 보내야 했고, 입장이 금지된 곳이라 직접 여성이 갈 수는 없었다. 하지만 티숍은 달랐고, 이 운영 정책이 엄청난 대박을 친다. 물론 차에 관심이 많았던 트와이닝스가 들여온 고품질의 차, 그리고 도자기를 함께 팔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홍차' 그리고 그에 맞는 다구까지 갖출 수 있게 되면서 여성들은 '거실에서의 티타임'이라는 새로운 여흥을 갖게 된다. 그리고 그 여흥이 소위 '핫&트렌디'해지면서, 커피하우스는 점차 그 인기를 잃고 사교의 중심은 여성들이 초대권을 가진 티타임, 티 가든으로 옮겨져 간다.
요즘은 많이 달라지고 있지만, 15~6년 전 정도만 해도 남성들끼리 카페에 가는 것은 조금 꺼려지는 분위기였다. 예쁘게 꾸며진 카페는 여성들이 가는 곳, 투박한 술집이나 바는 남성들이 모이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17~18세기에는 남성들만 카페에 입장할 수 있었던 셈.
이 논쟁의 역사적 결과가 누구에게 향하건 - 사실 가장 큰 수혜자는 그냥 트와이닝스인 것 - 결국 변하지 않는 것은 누군가와 함께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맛있는 음료를 마시는 즐거움을 사람들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