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하는 일의 의미를 잊어버릴 땐, 한 번씩 옛날 기억을 꺼내어본다.
얼마 전 전공의 때 쓰던 다이어리 속에서 포스트잇 한 장을 발견했다.
'난 내과 의사가 되길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적힌 종이 한 장. 나는 지금 그때의 나와 그 마음을 떠올려야 한다.
2019년 새해를 시작하며 뜻밖에 깊은 우울이 시작되었다. 일상에서 우울할 때와 유쾌할 때가 반복되는 편이라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지만, 이번에는 그냥 넘기기에는 깊고 오래가는 우울이었다.
2018년 한 해만큼 의사로서 자괴감이 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의사들은 늘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어왔다. 의사들이 나오는 드라마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시대를 거듭하면서 새로운 버전으로 등장해왔고, 언론에서는 잊을 새도 없이 의사들에 대한 다양한 뉴스거리가 쏟아졌다. 아마 내가 기억하기 이전에도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도 늘 그래 왔을 것이다. 그러나 2018년의 의사들에 대한 뉴스는 그동안의 그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드라마의 의사들은 어차피 지어낸 이야기이므로 과장될 수 있고, 뉴스에 나오는 나쁜 의사는 나와는 상관도 없는 이야기였다. 나는 그저 지금까지와 같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하면 뉴스에 나오는 이야기 따위는 내 현실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그런데 2018년 상반기 신생아들이 집단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환자를 돌보던 의사들이 구속됐다는 소식은 참을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2018년 후반기에 소아의 횡격막 탈장을 진단하지 못해 환아가 사망한 사견으로 또 한 번 관련 의사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리고 2018년의 마지막 날 고 임세원 교수님의 비보를 접하게 됐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나의 여러 가지 상황과 맞물려 깊은 우울이 시작됐다. 2018년 마지막 날, 나의 하루도 그분과 다르지 않았다. 나 역시 늦게 찾아온 마지막 환자를 진료하고 그 시간쯤 외래를 마쳤다. 신생아실의 의사들의 하루도, 응급실의 의사들의 하루도 내가 지나왔거나 지금도 나에게 종종 찾아오는 일상이다.
아마 다른 의사 선생님들의 마음도 나와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 마음이 이렇게 무거운데 그분들과 같은 과 선생님들이거나 그분들을 가까이서 알고 지내시는 선생님들의 마음을 어떻게 말로 설명할까. 내가 아무리 우울해도 환자들은 꾸역꾸역 찾아오고 중환자실에 환자는 누워있고, 아무리 힘들어도 책임져야 할 일상은 반복된다. 나는 먼저 나 자신을 위해 포스트잇에 생각을 끄적이던 그 전공의 시절을 떠올려야 했다.
당직실과 다른 건물에서 '코드 블루'가 발생했을 때 새벽 찬 바람을 맞으며 뛰어가던 그 순간 나는 설레었다. CPR을 하다가 내 손에서 환자의 심장이 다시 뛸 때 내 심장도 뛰었다. Klatskin tumor 환자의 보호자였던 할머니가 흙 때 낀 마디 굵은 손으로 허리춤에서 꺼낸 꼬깃꼬깃한 만 원짜리 몇 장을 쥐어줄 때 나는 뭉클했다. 죽을 줄 알았던 환자가 눈을 뜨고 말을 하고 걸어서 퇴원할 때 나는 감사했다.
나는 많은 환자들의 죽음을 보았고, 많은 보호자들의 손을 잡았고 슬프기도 했다. 아마도 내과의사가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한 그 순간은 그런 날들 중 하루였겠지.
지금의 내 일상은 그때보다 훨씬 복잡해졌지만, 내 가슴이 뛰는 순간은 그때와 같다. 중환자실에서 퇴원한 환자가 외래로 방문했을 때 나는 감사하다. 무채색으로 방문하던 환자가 예쁘게 화장을 하고 올 때 나는 기쁘다. 내 작은 진료실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쌓여간다.
남편의 죽음, 아내의 우울증, 아들의 죽음, 딸의 아픔, 시어머니의 괴롭힘, 시누이의 얄미움, 직장생활의 고단함. 그 짧은 3분에도 환자들은 이야기를 풀어놓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나는 환자의 혈당이나 혈압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그 환자, 그 사람을 만나는 것이다. 내가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저 도울뿐인데, 환자의 생명력이 다시 살아나고 회복될 때 내가 하는 일이 참 감사하다.
아무것도 아닌 말,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이 말이 의사라는 일을 하고 있는 나의 생명에 물줄기가 되고, 나의 내면에 햇살이 되어 나를 다시 살게 한다.
내가 의사로서 건강하게 되살아나면, 우리 안에 건강한 생명력이 생기고 우리를 둘러싼 많은 문제들을 하나하나 해결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환자들을 만난다.
그중에서는 분명히 선생님들의 마음에 물을 대고 햇살을 비추는 환자들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를 돈 때문에 일하는 존재들로 오해할지 모르지만 무슨 상관이랴. 나는 환자들 때문에 오늘도 흰 가운을 입는다.
이 글은 2019년 1월에 의협신문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2020년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에게 격동의 해였지요.
세상은 환자들과 우리들의 사이를 자꾸만 이간질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생각하지요.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던 환자가 걸어서 퇴원을 하고, 걸어서 외래로 들어올 때, 휠체어를 타고 오던 환자가 지팡이를 짚고 그 다음에는 그냥 걸어서 들어올 때....
가족들 다음으로 기뻐하는 사람은 바로 담당 의사라고요.
내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그 보람과 기쁨 때문이지요.
세상에 많은 기쁨이 있겠지만, 아프던 사람이 건강을 되찾는 모습을 보는 것만큼 기쁜 일이 또 있을까요.
게다가 그 기적 같은 일에 내 작은 수고가 조금이 보탬이 되었다면...
의사와 환자 사이의 신뢰가 회복되는 사회가 오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