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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사 Jun 20. 2019

잘난 기자를 때려치운 이유

결정타는 라오스 여행이었다.

나는 결정장애다.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기 위해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분석한다. 머리통에서 열이 난다. 그럴 땐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묻곤 하는데, 결국 내 뜻대로 한다. 그리곤 웬만해서는 결정을 바꾸지 않는다.


웃기지만 여행만 가면 결정을 참 잘한다. 새로운 환경, 낯선 문화와 신비로운 사람들 속에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가 또렷하게 보이나 보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구애받지 않고, 오롯이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게 된다고나 할까. 어쩌면 내가 결정 장애인 이유는 '이걸 이렇게 결정하면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볼까?'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굴러 다녀서 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시선에 민감하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옷 고르는 게 제일 어렵다.


본론으로 들어가자.

나는 펜 기자였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연예부 기자. 국내에서 꽤나 큰 신문사의 취재기자였다. 5년 전, 가방 끈이 화려한 것도 아니고 신문 방송학과를 졸업한 것도 아닌 내가 덜컥 기자가 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큰 행운이었다. 기자였던 26살의 나는 또래가 쉽게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며 상당한 지위를 누릴 수 있었다. 고통도 진했지만 인생을 통틀어 가장 많이 배운 시기였다.


그때 크게 깨달은 건, 나는 지극히 평범한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는 것.

기자를 하면서 가장 짜릿하면서도 힘들었던 순간은 내 글 하나로 세상이 술렁거릴 때. 나는 수습기자 꼬리표를 떼기도 전에 '단독'기사를 물어 온 신통방통한 아이였다. 야망이 커서? 아니다. 그냥 선배가 무서웠다. 더 솔직히 이야기하면 부장이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끊임없이 취재했고 단독은 마법처럼 굴러왔다. 독하게 단독을 찾아서 인지 기자 생활한 지 1년도 안돼서 한 방송국 PD들 사이에서 'XXX기자 누구냐'며 경계대상이 되었다는 소문이 흘렀다. 프로그램 정보를 자꾸 '단독'을 달고 내보내는 게 미움의 원인이었던 것.  


물론 대단한 '단독'은 아니었다. 그래도 내 글 하나에 누군가는 직장을 잃을 수도 있고 보이지 않는 수만 명의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을 수 있다는 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고통스러웠다. 생각해보면 나는 태생이 갑이지 못하는 모양이다. 기자는 갑질 하는 위치인데 나는 그게 꽤나 불편했던 것이다.  


한편 나를 속으로 미워한 것 같은 그 선배는 나만 한 달에 7번이나 당직을 세워뒀다(보통은 한 달에 한두 번 당직을 선다). 당직 때면 새벽 6시부터 그다음 날 새벽 3시까지, 무려 21시간 동안 긴장 속에서 글을 국수처럼 뽑아내야 했다.


얼굴엔 여드름이 솟아 올라 못 볼 꼴이 됐고 몸은 망가져 아침에 일어나면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흐르는 통증으로 고통받았다. 반복되는 이런 하루들에 마음은 굳어져만 갔다. 웃음을 잃은 내 삶은 방금 전쟁에서 패해 풀 한 포기 조차 나지 않는 들판처럼 피폐했다. 그러던 중 떠난 것이 바로, 라오스 여름휴가였다.


셋째 날이었을까. 라오스의 한 호텔 발코니에서 강 너머로 해가 뜨는 것을 보았다. 따뜻한 차, 좋아하는 음악, 그리고 너무도 평화롭도 그 광경은 '계속 이렇게 살고 싶냐'는 물음에 답을 던져줬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다고.


당시 라오스 한 호텔 발코니에서 본 전망. 날씨는 흐리지만 해가 뜨고 있는 모습이다. 평화롭고 고요하다.


소용돌이치는 그 세상에서 바쁘고 독기 어린 눈으로 바라볼 때는 모두가 나를 미워하는 것 같았는데 그곳은 내게 눈을 돌리라고 했다. 나는 쉬고 싶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고 온몸은 말했다.  


내가 기자를 갈망했던 이유는 내 글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력을 주고 싶다는 순수한 마음에서였다. 그 깨끗했던 마음은 이상하게도 꿈을 이룬 후 가족에게도, 알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에게도, 심지어 자신에게도 상처만 주고 있었다. 그리고 귀국 후 한 달 만에 기자를 그만뒀다. 나는 소소하게 사랑받고 사랑하며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아직도 부장과의 마지막 대화가 떠오른다.


부장은 여느 날과 같이 담배 연기를 뿜은 후 "넌 나처럼 되고 싶지 않냐'라고 톡 쏘아붙였다. 그리곤 그 흔한 스펙도 보지 않고 '열심히 하겠다'는 네 말을 믿고 기자로 끌어 준 본인에 대한 감사함이 없냐며 지금이라도 잘못했다고 하면 받아주겠다고 했다.


나는 진지하게 답했다.


기자도 너무 멋지지만, 나는 평범하게 살고 싶다고. 평범하게 출근해 정시에 퇴근하는 그런 삶을 원한다고. 기자가 된 후 단 한순간도 내 시간을 가질 수 없었는데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과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그렇게 살고 싶다고. 쏟아내듯 말한 내 말을 들은 부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곤, 담뱃불을 끄며


"그것도 참, 멋지다"


아직도 잊히지 않는 말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지금 지극히도 평범하고 소박한, 허나 해사한 행복에 젖어 오늘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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