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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사 Sep 18. 2019

잃었던 식탐을 찾아준 방콕 시장

식탐 많은 소식가의 태국 주전부리들

나는 소식가(小食家)다.


본래 그렇게 태어난 것 같다. 그런데 작고 힘없는 위장과 달리 마음속 식탐(食貪)은 근육질이었던 모양이다. 어렸을 때 음식에 대한 과도한 욕심에 왕왕 배탈이 나 오히려 며칠 굶었던 기억이 많다. 그중 여전히 언급되는 오래된 일화가 있다.


내가 4살 때였나. 엄마는 애가 먹기엔 밥이 좀 많아 보여 덜어 먹으려고 했는데 밥그릇에 숟가락을 넣자 말자 내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째려봤다고 했다. 평소 순둥순둥 하던 모습과 달리 유달리 밥에 집착하는 모습에  "얘가 참 식탐이 많네"라고 뜨악했다고. 뿐만 아니라 짜장면 한 그릇을 다 먹지도 못하면서 덜어주겠다고 하면 싫다고 고집부리며 꼭 한 그릇을 온전히 차지했다. 그렇게 먹다가, 먹다가, 도저히 숨이 차서 먹지 못할 때가 돼서야 "이제 아빠 먹어"라며 슬쩍 그릇을 밀었다.



그래서 자주 위와 장이 아프다고 시위했다. 단골 한의원 선생님은 "넌 적게 먹어야 오래 살 수 있어"라고 했을 정도로 소심한 위장인 것이다. 머리가 조금 커서는 살찌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몸이 무거워진 것 같으면 한 두 끼 정도는 거르곤 해서인지 평생 아주 많이 살쪄 본 적이 없다. 그렇게 소식하는 게 인이 박히다시피 하니 20살 이후로는 "왜 이렇게 적게 먹어?"라는 소리가 식사 주요 메뉴다.

 

작고 연약한 장덕에 먹는 것을 그다지 중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는데 남편을 만난 후 점차 '맛있는 한 끼'에 대한 큰 만족과 행복을 깨닫게 됐다. 재미있는 건 남편은 식탐이 적은 대식가(大食家)라는 사실. 나처럼 항상 먹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은 아닌데 먹기 시작하면 바닥이 보일 때까지 먹는다. 난 아무리 맛있어도 위장이 찼다 하면 숟가락을 내려놓는데 남편은 끝까지 복스럽게 먹는다. 탈도 안 난다. 이런 걸 보면  먹고 싶은 게 많은 거랑 많이 먹는 거랑은 다른 이야기 인가 싶다.


무튼 적게 다양한 음식을 먹는 것을 선호하는 나에게 태국은 안성맞춤이었다. 태국 사람들은 대체로 적게, 자주 먹는 식습관을 가졌기 때문. 이는 기후 탓이라고 한다. 아무래도 더운 날씨가 일 년 내내 지속되는 이 나라 사람들은 배불리 먹고 난 뒤 지나친 포만감이나 졸음을 싫어한다고. 그래서 음식점을 가도 양이 무지막지하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다양한 음식을 조금씩 자주, 끊임없이 먹게 됐다. 특히 시장에서 말이다.  


1인분이 양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 이에 하루 10끼 이상은 음식을 섭취했다.


담넌사두억 - 수상시장


방콕 시내에서 40분쯤 차로 달려가면 있는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은 내가 태국에서 가장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다. ‘스트리트푸드 파이터’ 방콕 편 첫 장면에서 백종원은 배를 타고 물 위를 노니며 쌀국수 등 음식을 음미했던 것.



이 얼마나 신비로운가. 배를 타고 물건을 사고파는 동시에 배 안에서 국수 등 간단한 요기도 할 수 있다는 게. 그런데 안타깝게도 수상시장은 새벽에 가장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관광객에게는 낮 12시쯤부터 개방된다. 출국 전 인터넷 사이트에서 본 다양한 여행사들이 제시한 코스는 다른 코스와 뒤섞여서 인지 한층 비싸진 가격 때문에 썩 내키지 않았다. 대신 방콕 첫날 호텔 근처 현지 여행사에서 담넌사두억만 관람하는 코스가 있어 예약했고 다음날 오전 8시 반에 우리를 픽업하러 온 봉고차는 다른 사람들까지 야무지게 태워 도로를 내달렸다. 도착한 곳은 그냥 벌판인가 싶었는데 조금 들어가니 수상시장이 자리하고 있었다.


담난사두억 수상시장 풍경


기대한 것과는 조금 달랐다. 조금 더 이국적이면서도 아직 때 묻지 않은 날것을 상상했다면 실제로 본 담넌사두억은 아주 잘 다듬어진 관광지 그 자체였던 것. 우리 말고도 수십 팀은 더 있을 것 같은 그곳에서 외국인 가이드가 능숙하게 배를 잡아 줬고 삼삼 오오 짝을 지어 배를 탔다. 사공의 솜씨에 따라 다르겠지만 천천히 수상시장을 한 바퀴 도는 건데 그 안에서 무엇을 먹을 수 있는 분위기는 분명 아니었다. 오히려 사공은 자기랑 친한 상인 가게 앞에서는 떠나지 않아 짜증이 날 정도였다. 물건 값 역시 비싼 편.


관광객과 상인이 뒤섞여 있는 모습


그래도 담넌사두억을 꼭 가라고 추천하고 싶은 이유는 그럼에도 꽤나 이국적이라는 점. 특히 백종원도 먹었던 쌀국수가 참 맛있었다. 선착장에서 2천 원쯤 했던 쌀국수 한 그릇에 망고스틴을 잔뜩 까먹으며 육지에 잘 꾸려진 시장을 보는 것도 소소하지만 큰 재미다.  


수상시장 외에 선착장에도 시장이 형성되어 있다



딸랏롯파이 2 - 야시장


방콕은 밤문화가 아주 잘 발달된 도시로 야시장 역시 매우 활성화되어 있다. 딸랏롯파이2는 젊은 이들이 많이 찾는 신식 야시장. 그래서인지 물품도 하나같이 세련된 느낌이며 식당 역시 홍대 밤거리에서 볼법한 힙한 곳들이 많다.


활기가 넘치는 딸랏롯파이2


우리가 딸랏롯파이2를 갔을 때 안타깝게도 소나기가 한참 내렸다. 근처 마트에 가서 피신한 후 조그마한 우산을 사서 시장에 갔더니 조명이 완전히 나간 상태. 다행히도 발전기가 다시 작동했는지 전구가 하나 둘 켜졌다. 작은 가게들이 바둑판처럼 죽 늘어서 있는데 각자 전구들로 불을 환하게 밝혀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고 있다.


물건은 저렴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비싼 것도 아니다. 작은 가게들이 무수히 들어서 있었는데 하나하나 구경하는 재미가 크다. 음식 역시 아주 오래된 느낌이라기보다는 젊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자극적인 맛.  


로띠(왼)와 태국식 쌀국수



짜뚜짝 시장 - 주말시장


주말에만 열리는 짜뚜짝 시장. 없는 게 없다는 명성답게 한두 시간으로는 모두 둘러볼 수 없다.  만약 방콕에 주말에 방문하게 된다면 한 번쯤 방문하는 것을 추천한다.


오후 6시면 마감되는 짜뚜짝 시장. 우리는 5시에 도착해 거의 마무리되는 분위기였는데도 엄청난 양의 물건들이 즐비해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싸고, 또 싸며 엄청나게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 기념품은 이곳에서 구매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간식 역시 너무도 많다. 우리는 코코넛 아이스크림, 꼬치, 두리안, 망고 등을 간식으로 사 먹었는데 이외에도 포장마차가 굉장히 발달되어 있어서 현지 느낌으로 한 끼 먹고 싶다면 추천한다.


짜뚜짝 시장에서 맛본 옥수수, 밥 등 토핑을 추가해서 먹을 수 있는 코코넛아이스크림, 밀크티, 꼬치, 망고, 두리안(왼쪽부터 시계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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