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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이란 무엇일까? 참행복선언성당의 밤과 낮

이스라엘, 치유의 기억

윌 스미스가 아들과 함께 출연했던 영화 '행복을 찾아서'는 '행복추구권'에 대해 언급하며 시작된다. 주인공 크리스의 독백, "'행복 추구권'이라는 말 자체가 나에게 행복은 '추구'할 수 있을 뿐 '얻을 수는 없는 것'을 말하는 것 같았다."라는 대사와 함께 '나만 빼고 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과 삶에 찌들어 초췌한 주인공의 모습이 대비된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이 나지만 내 삶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건지 좀처럼 알 수 없을 때가 많다.


이스라엘 순례의 두 번째 숙소는 예수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외쳤던 산상수훈의 장소 '참행복선언성당'이었다. 성당 옆 순례자 숙소 입구에는 자연을 사랑했고 동물들에게까지 말씀을 전했다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그림이 평화로워 보였다. 짐을 풀고 저녁을 먹으러 건너편 식당 건물을 향해 나오니 건물 뒤편으로 달이 벌써 마중 나와 있었다. 높은 곳에 올라 까치발을 하면 멀리 갈릴레아 호수까지 내려다 보였다.     

참행복선언성당 옆 순례자 숙소 앞

저녁을 먹고 돌아 나오니 금세 어두워져 있었다. 이제 겨우 두 번째 밤. 너무 많은 일들과 너무 많은 장소들이 소화되지 않은 듯 더부룩하게 느껴졌다. 내 삶처럼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숙소로 그냥 들어갈 수 없어 두리번거리다 갑작스레 생긴 동행과 함께 용기를 내어 성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성당 문은 닫혀있었지만 오래된 청동 문과 돔 모양 지붕이 동그랗고 밝은 달빛과 제법 잘 어울려 예뻤다. 혹시나 열린 문이 있나 싶어 성당 건물을 따라 한 바퀴 쭉 돌았지만 달빛의 도움으로 내부가 어렴풋하게 비칠 뿐 들어가 볼 수는 없었다. 아쉬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성당 안을 향해 카메라 버튼을 몇 번 누르고 저 멀리 호수 건너편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 불빛들도 카메라에 담아보았다. 어둠 속에서 빛이 반짝반짝했다. 

참행복선언성당의 밤

숙소에 돌아오니 와인파티가 준비되고 있었다. 이스라엘에 도착해 처음으로 순례단과 함께하는 왁자지껄한 시간이었다. 피곤해서인지 여러 사람들 사이를 오가는 수많은 말들 속에 마음이 자꾸 건드려졌다. 자꾸 움추러들고 못생긴 생각들이 나를 어둠으로 초대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행복선언성당'에서 '행복하지만은 않은 밤'이 온듯했다. 내 마음은 이렇게도 쉽게 가난해지는데 '행복하라'니. 이건 또 무슨 잔인한 말인가.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3-4)"


끝날 것 같지 않던 밤을 지나 아침이 밝았다. 

참행복선언 성당의 낮

아침부터 성당으로 모여드는 순례자 행렬이 대단했다. 우리 일행도 줄을 서서 차례로 성당 안으로 입장했다. 원형 성전 한가운데 위치한 제대를 중심으로 돔 모양의 천장 창문에는 '참행복선언'의 말씀들이 붉은색으로 적혀있었다.  

참행복선언성당 내부

이곳에서는 미사 대신 시편 1장을 노랫말로 만든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찬양을 다 함께 불렀다. 기타 반주와 함께 우리들의 소리가 돔 천장에 닿았다가 성당 전체에 울려 퍼졌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며 살아가는 사람그는 시냇가에 심겨 제때에 풍성한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서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


성당에서 나와서는 갈릴레아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초록 언덕 위로 향했다. 이곳 푸른 풀밭 어디쯤에서 예수님이 사람들을 모아놓고 행복에 대해 이야기했을까. 내게는 여전히 어려운 이 말을 예수님 앞에 모여 앉은 갈릴레아 사람들은 잘 알아들었을까. 여전히 자주 마음이 가난해지는 내게도 행복이 허락된다는 걸까, 허락되고 있다는 걸까. 도대체 참행복은 뭘까. 여러 가지 질문들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참행복선언성당 옆 공원

[목마른 사람은 나에게 오라]

"축제의 가장 중요한 날인 마지막 날에 예수님께서는 일어서시어 큰 소리로 말씀하셨다. “목마른 사람은 다 나에게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사람은 성경 말씀대로 ‘그 속에서부터 생수의 강들이 흘러나올 것이다.’”(요한 7.37-38)"


언덕 위 비석에서 만난 요한복음의 말씀이 오히려 나를 더 목마르게 하는 것 같았다. 분명 '이상한 순례길' 후에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다시 제자리인 것만 같은 내 현실에 더 큰 목마름이 느껴지는 듯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 이 오래된 질문에 언제쯤이면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까. 학생 때는 시험을 잘 보면, 원하는 대학을 가면, 꿈을 이루면. 일을 시작하면서부턴 회사에서 성과를 많이 내서 인정을 받으면, 그에 대한 보답으로 연봉이 높아지면. 끊임없이 '행복해질 것 같은 시간'을 쫓아 몸을 움직였지만 그 끝에 도착해 보면 늘 걸신들린 사람처럼 금세 목이 말랐다. 얼마나 더 많이 가져야, 인정받아야, 충만한 행복을 오랫동안 누릴 수 있는 것인지. 행복해지고 싶은 마음이 커지면 커질수록 지치고 힘든 목마름만 커져갔다. 


문득 올라오는 작은 행복을 느낄 때가 있었지만 내 삶은 전반적으로 행복과는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는 것만 같았다. 아침에 잘 나간다 싶다가도 오후를 지나 잠자리에 들 때까지 꼭 한 번은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서운하거나 쪼잔해지거나. 여전히 내 마음은 하루에도 여러 번 가난해진다. 이렇다 고백하면 예수님은 나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보실까. 갈릴레아 호숫가 언덕 위에서 행복해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예수님은 어떤 표정이셨을까. 


안녕하세요, 이상한 순례길의 율리입니다. 다시 찾아오는데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죠. 중간에 다시 직장인의 삶을 시작하기도 했고 삶의 거처를 옮기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행복'이라는 주제가 고민을 많이 하게 만드는 것이었단 핑계를 대고 싶네요. 그렇다고 완전한 답을 찾은 것은 아닙니다. 그래도 우선 지금의 제가 느끼는 '행복'에 대해 정리해 보고 완벽하지 않다고 느껴지더라도 그 상태로 앞으로 나아가 보기로 했습니다. 삶의 여정을 멈춘 적은 없지만. 다시 걷기 시작한 이 여정도 끝까지 나눌 수 있길 많은 기도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늘 그렇듯 함께 걸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길 위에서 만난 모든 분들을 기억하며.(2020)


이 글은 참 오랫동안 서랍에 있었네요. 2019년 추석연휴에 다녀온 이스라엘 여행기를 2020년에 정리하다가 다듬어 2023년에 발행합니다. 그동안 행복했나. 생각해 보면 '그렇기도 하고 아닐 때도 있었다.'라는 답이 당연하겠죠?! 다만 그사이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행복은 가난한 마음 상태인 지금 내 안에도 이미 참 행복이, 당신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걸 마음으로 배우는 시간들이 있었음을 감히 고백합니다.


'나를 믿으면 행복을 줄게.' 하는 얄궂은 기브 앤 테이크의 거래가 아니라, 가난한 마음으로 낮은 곳에 쭈그리고 있는 내 곁에 당신 언제나 함께하고 계시니, '아무리 깊은 구렁 속이라도 너 이미 행복하다는 걸, 네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내 사랑을 좀 알아차려주겠니.' 하는 예수님의 사랑 고백을 마음으로 조금은 알아차려보는 짧은, 그렇지만 꽤 여러 번의 시간들이 있었음을 감히 고백해 봅니다. 이미 나와 함께하고 있는 '참 행복'을 많이, 더 자주 발견하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도 중에 기억할게요. 끝까지 함께 걸어봐요 우리=)


- 봄비가 내리는 2023년 식목일에. 참 행복을 만나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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