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에디터 SU입니다.
요즘 인기 드라마 <구미호뎐>, 다들 본방사수 중이신가요? 10월 초부터 TVN에서 방영하기 시작한 수목드라마 <구미호뎐>은 이동욱, 조보아가 주연을 맡은, 꽤나 익숙한 ‘구미호와의 러브스토리’입니다. 그 주인공 아홉 개의 꼬리가 달린 여우, ‘구미호’는 오래전 전통 신화 속 요괴이지만 우리에게 매우 친숙한 캐릭터입니다. 무엇보다 드라마에서 구미호라는 캐릭터는 호러와 로맨스, 사극과 현대극 극명하게 상반되는 장르들을 넘나들며 감동, 설렘, 무서움 다양한 감정을 전해주었는데요. 전통 신화 속에서 탄생한 구미호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도 어떻게 전 국민의 사랑을 받아왔는지, 대표적인 구미호 드라마를 통해 분석해보겠습니다.
1. 전통 신화 속의 구미호
구미호는 꼬리가 아홉 개 달린 여우로 신통한 능력을 지녔다고 여겨지는 상상의 동물입니다. 전통 신화에 따르면, 구미호는 매혹적인 미인으로 변신하여 인간을 홀리고 그를 쥐락펴락합니다. 그들의 궁극적 목적은 주로 ‘인간이 되는 것’으로, 인간 남성과 결혼해 정체를 들키지 않고 그의 간을 먹어 목표를 성취하려고 합니다.
2. <전설의 고향> 속의 구미호: 공포의 대명사 구미호
1996년부터 KBS에서 방영한 <전설의 고향>은 이러한 고전적 성격의 구미호를 잘 보여줍니다. <전설의 고향>은 한반도 지역에 걸쳐 전해지는 전설, 민간 설화 등을 모티프로 제작된 납량특집 드라마로 원귀, 혼령, 목각귀, 저승사자, 도깨비 등 다양한 전통 요괴와 귀신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회차별로 간단하게 담아내고 있습니다. 그중 단연 많은 시청자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캐릭터는 ‘구미호’였는데요. 1979년부터 2009년까지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구미호는 공통적으로 인간이 되기 위해 성인 남자를 홀려 혼인, 사랑의 관계를 맺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은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주변인들과 갈등하며 마음속 깊은 원한과 아픔을 가지게 됩니다.
이때 구미호는 인간사회 속에 살아가는 숨겨진 요괴라는 컨셉에 따라 미녀배우들이 주연을 맡아 아름다운 구미호의 모습과 동시에 무시무시한 변장을 통해 구미호를 보여주었습니다. 1997년 <구미호>에서 구미호 역을 맡은 송윤아 배우는 당시 촬영장 온양 민속마을 관광객이 실제로 보고 기절할 정도의 기괴한 분장을 선보였으며 1998년 구미호를 연기한 노현희 배우는 사실적인 공포연기를 위해 소품이 아닌 실제 동물의 간을 먹기까지 했다고 합니다. 1999년의 구미호를 맡은 김지영 배우는 분장을 넘어서 벽 타고 오르기, 할퀴기, 공중제비 등의 액션을 선보이며 구미호에 대한 공포를 가중시켰습니다. 이와 같이 <전설의 고향>은 분장, 액션, 연기 등 다양한 시각적 요소를 통해 공포의 대명사 구미호 캐릭터를 구현했습니다.
공포 장르에서 빠질 수 없는 부분이 바로 CG인데요. 1996년부터 <호녀>에서부터 모핑 기법과 데스마스크를 사용하여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에서 무시무시한 구미호의 모습으로 변하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처리했습니다. 이외에도 30년간의 다양한 에피소드 속 구미호 모습들은 분장, CG 기법의 발전과정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습니다.
3. 사람에게 갖은 피해와 공격을 받는, 모성애를 가진 구미호
<구미호 여우누이뎐>
그렇게 오랜 시간 공포의 클리셰로 자리 잡은 구미호에 대해 2010년 드라마 <구미호 여우누이뎐>은 참신한 변화를 시도합니다. 인간의 이기심과 욕심으로 딸을 잃은 어미 구미호의 슬픈 복수를 그린 드라마 <구미호-여우누이뎐> 은 우리가 알던 것과는 조금 다른 구미호를 그려냅니다.
<여우누이뎐>의 구미호는 여느 구미호처럼 인간이 되는 것을 기원했으나 하루를 남기고 남편이 비밀을 발설해 버리면서 그의 딸 연이와 함께 평생 구미호로 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의 목적은 사람을 죽이고, 간을 먹고, 그들을 조종하며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과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었습니다.
구미호의 상대 남자가 되는 윤두수는 낙향한 유복한 명문 사대부가의 가장으로 딸 초옥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하는 깊은 부성애의 소유자였습니다. 딸 초옥이 원인 모를 병에 시달려 생사를 넘나들자 온갖 방법을 쓰다가 마지막으로 무당을 찾아가게 됩니다. 무당은 초옥과 태어난 날과 시가 똑같은 아이의 간을 먹여야 살릴 수 있다고 해답을 제시하는데요. 그래서 윤두수는 자신의 딸을 살리기 위해 그 적임자, 구미호의 딸 연이를 무참하게 살해합니다. 구미호가 인간의 간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그 이기심에 의해 구미호의 간을 탐낸다는 스토리는 기존의 발상을 완전히 뒤엎는 전개입니다. 구미호는 순수하고 우호적인 존재로, 인간은 이기적이고 악한 존재로 그려내면서 구미호와 인간 둘 사이의 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정립합니다. 뒤집어진 클리셰는 이뿐이 아닙니다. 윤두수는 구미호와 그의 딸 연이를 끌어들이기 위해 구미호와 거짓된 사랑을 키워갑니다. 상대의 목숨, 간을 노리기 위해 사랑을 이용해 유혹하는 전개, 구미호와 인간의 구도만 바꿔본다면 꽤나 익숙한 전개입니다.
또한 <여우누이뎐>의 구미호는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전의 구미호는 원한, 이기적인 욕망만 가득한 캐릭터였다면 이번의 구미호는 사람과 같이 모성애를 느끼고 인정, 자비를 베푸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여우누이뎐>의 구미호는 사람보다 더 사람답게 감성적이고 이타적인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렇게 새로운 설정을 통해 구미호는 공포의 대상에서 점차 서정적인 스토리의 중심인물로 등극하게 됩니다.
4. 사람과 사랑을 나누는 매력적인 구미호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
그리고 바로 같은 해의 드라마 <내 여자 친구는 구미호>에서 구미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이제 구미호는 더 이상 공포나 원한의 존재가 아닙니다. 마치 일반 로맨스의 여주인공처럼 통통 튀고 발랄한 캐릭터로 많은 시청자들의 캐릭터를 독차지합니다.
철부지 대학생 주인공 대웅은 숲에서 길을 잃다가 그림 속에 갇혀있던 구미호, 미호를 세상밖에 불러내게 됩니다. 이때 미호는 자신을 불러낸 대웅이 다치자 그에게 소중한 여우구슬을 품게 하여 목숨을 살립니다. 이렇게 여우구슬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둘의 인연이 맺어지고 관계가 고조되어 갑니다. 대웅은 신비로운 여우구슬을 통해 영화배우라는 꿈을 이루고 미호는 대웅을 통해 인간이 되고 싶다는 욕망에서 시작하지만 점차 깊은 사랑을 느끼게 되는 스토리입니다.
이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구미호지만 남아있는 구미호만의 전통적 특성이 드라마를 더욱 재미있게 만듭니다. 먼저, 매력적이고 아름답다는 구미호의 특징을 그대로 살린 캐릭터 미호는 어떤 로맨틱 드라마보다 사랑스러운 여주인공으로 그려집니다. 또한 먼 과거 속의 그녀가 그 시절과 동떨어진 현대를 살아가면서 보이는 엉뚱한 모습들이 매력을 더욱 극대화시켰습니다.
이전의 구미호는 인간이 되고 싶다는 목적에서 비롯해서 이기적인 사랑을 했다면 이제는 진심으로 인간인 연인을 아끼고 사랑하게 됩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욕망을 버리고라도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는 면모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누군가는 피해를 입거나 목숨을 희생해야만 된다는, 인간과 구미호의 ‘전통적인 비극’이 로맨스라는 설정을 만나 더욱 애틋하고 아름답게 그려졌던 드라마였습니다.
5. <구미호뎐> 새로운 성별의 구미호
2020년 현재 방영 중인 <구미호뎐> 역시 이러한 ‘구미호 로맨스’의 연장선에 있는 작품입니다. 오랜 세월 한을 가지고 살아온 구미호는 냉소적이고 적대적인 입장을 취하다가 운명적인 계기로 인간 연인을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비극적인 운명 아래서, 둘의 사랑은 더욱 애틋하게 그려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뻔해 보이는 전개이지만 조금 색다른 점이 눈에 보입니다. 바로 구미호가 전형적인 여성이 아닌 남성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성에 의한 제약을 가능한 배제하려는 젠더 프리 개념이 보편화되면서 기존의 구미호 로맨스 클리셰에도 꽤나 흥미로운 변형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더불어 남자 구미호의 상대역이 되는 여주인공 역시 매우 색다른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풀어내려는 진취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과거의 원한에만 사무쳤던 구미호와는 상당히 다른 모습이죠? 게다가 남성 구미호와의 사랑에서도 적극적인 입장에서 리드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렇게 구미호는 또다시 이전과 전혀 다른 스토리와 캐릭터를 가지고 우리에게 찾아왔습니다.
뻔하지만 뻔하지 않은 캐릭터 구미호. 호러에서부터 로맨틱 코미디, 격정 멜로까지 다양한 장르에서 그만의 독특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구미호뎐>에 등장하는 2020년의 새로운 구미호는 또 어떻게 인간과의 스토리를 풀어갈지, 앞으로 새로운 구미호는 또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지 기대가 됩니다. 지금까지 에디터 SU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