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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숲 Aug 04. 2021

올림픽을 보면서 느낀 찝찝함

진짜 응원일까, 가짜 응원일까


        


최근 내 글쓰기를 괴롭히는 강적이 나타났다. 바로 올림픽이다. 내 방엔 에어컨이 없기 때문에, 아니 내 방에만 에어컨이 없어서 낮에는 엄마 방에서 글을 쓴다. 오후엔 가족들이 다 나가고 나 밖에 없다. 그래서 가장 글이 잘 써지는 시간대이기도 하다. 프리랜서라 일정이 뒤죽박죽이라 쓸 수 있을 때 써놓지 않으면 창고에 쟁여둔 글들을 하나씩 꺼내게 된다. 그럴 때면 압박감이란 녀석이 내 뒤에 바짝 붙어서 뒤통수를 기분 나쁘게 툭툭 쳐댄다.      



노트북과 키보드를 테이블에 놓고 글을 쓰다 보면 금세 배가 고파진다. 그 순간만을 노리던 핑계가 ‘일단 밥은 먹고 써야지. 배가 고픈데 집중이 되겠어?’라고 말한다. 금세 마음이 약해진 나는 얼른 거실에 가서 밥을 대충 먹는다. 땀을 뻘뻘 흘린 뒤 시원한 방으로 들어온다. 



대폰을 보며 한참을 꾸물거리다가 '이제 제대로 써볼까?’라고 생각하는 순간 왼쪽 눈이 살짝 감긴다. 시계를 보니 정확히 30분이 지났다. 아까 만두와 함께 먹었던 밥과 오렌지주스에 함유된 탄수화물이 체내에 흡수되는 과정에서 혈당치높아졌나 보다. 수치를 다시 원상태로 낮추기 위해 인체의 소방관인 췌장님께서 인슐린이라는 물대포를 쏘아대는 바람에 그 부작용으로 식곤증이 찾아온 것이다. 졸음은 글쓰기의 의욕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예전이었으면 이런 상황에 낮잠을 자거나 잠깐 책을 읽으며 머리를 식혔겠지만 요즘에는 올림픽이라는 아주 흥미로운 녀석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내 앞에 리모컨이 있다. ‘잠을 깰 때까지만 잠시 봐야지.’하고 TV를 튼다. 여자 탁구가 한창이다. 나는 몇 분도 안 돼서 그 경기에 몰입을 한다. 역시 실험기간과 글을 쓸 때 보는 TV가 세상에서 제일 재밌는 것 같다. 우리 선수들이 점수를 얻을 때마다 마치 내가 이긴 것처럼 기뻐한다.      



‘신유빈 너무 잘하는데? 내가 17살 때는...’ 라떼는!이라고 혼자 구시렁거리면서 경기를 열심히 본다. 아쉽게 진다. ‘아, 진짜 아깝다. 조금만 더 잘했으면 이길 수 있었을 텐데.’ 슬픈 표정을 애써 감추며 리모컨을 든다. SBS-KBS2-KBS1-MBC순으로 채널을 돌리며 다른 종목을 찾는다. 탁구 경기가 진행되고 있다. 나는 또다시 선수들과 하나가 되어 그 경기를 열렬히 응원한다. 가볍게 이긴다.



기분이 너무 좋다. 들뜨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채널을 돌린다. 여자 배구다. 배구 룰도 모르는 주제에 ‘역시 김연경은 국보야!’라고 으쓱대면서 한국을 응원한다. 간발의 차로 이긴다. “가즈아!!”를 외치면서 누구보다 기뻐한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중독증 환자처럼 다른 경기를 찾는다. 체조 경기다. 해설위원이 하는 얘기를 들어가면서 그 종목이 어떤 건지 배워간다. 화면 왼쪽 위에 떠 있는 한국 선수의 이름을 기억한 후 소리 내어 응원한다.     



사실 위의 상황은 최근에 일어났던 약 2주간의 내 모습을 압축해놓은 것이다. 올림픽을 보는 내내, 가스레인지에 불을 켜놓고 외출것처럼 뭔가 찝찝한 기분이 계속 들었다.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왜 그런 기분이 느껴진 건지.      



몇 분 동안의 고민 끝에 그 원인을 발견했다. 올림픽을 보는 내  때문이었다. 치가 한창일 때는 정말 진심으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한다. 하지만 이기든 지든 게임이 끝나면 바로 채널을 돌려서 다른 경기를 찾는다. 현재 라이브로 하고 있는 그 종목에 온 신경을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방금 봤던 경기는 머릿속 안중에도 없다.      



그런 식으로 이 경기는 저 경기로, 저 경기는 그 경기로 대체된다. 여기서 양심의 소리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내가 진심으로 선수들 한 명 한 명을 응원한 것일까? 아니면 그냥 경기를 통해 태극기에 나를 대입하고. 선수에 나를 이입한 게 아닐까? 선수들의 피땀으로 만들어진 진정성에는 관심도 없고 그냥 경기하는 순간에만 몰입해서 자극을 추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그들을 깊이 공감하는 진짜 응원이 아닌 내 기분만 생각하는 이기적인 응원이 아닐까?’     



혼란스러워졌다. 의식적으로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걸 인정하기 싫지만, 실제로 그럴 수도 있겠다는 가능성이 있는 것 같아 기분이 더 찝찝해졌다. 참 재수 없는 의심이다. 이런 생각이 이미 들어서 어쩔 수는 없겠지만 나는 여전히 다음 경기를 보면서 우리 선수들을 응원할 것이다. 애매한 기분을 유지한 채로.






[입구 사진 출처] : 뉴시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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