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천지, 이태원 클럽, 광화문 집회, 사랑제일교회 등등 떠오르는 몇가지 상징적인 장소들이 있습니다. 데이터로 봐야 정확하겠죠? 지난해 1월부터 올 3월까지 수도권에서 발생한 확진자 통계를 원인별로 분류해둔 연구가 있습니다. 표를 하나 뽑아왔습니다.
시기별 수도권 집단감염 발생 통계. 자료: 이진숙 외(2021)
장소별로 보면 의외로 사업장이 4,009명, 전체의 6.1%로 가장 높습니다. 매일 오랜 시간 같은 공간에서 부딪히기 때문에 직장에서의 집단감염 발생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업장의 절대수 자체가 많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다음은 종교시설입니다. 3,910명으로 사업장만큼이나 많이 발생했습니다. 특히 2차 유행의 사랑제일교회 관련은 당시 확진자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많았습니다. 종교시설 역시 실내에서 밀접한 접촉이 일어나기 때문에 감염위험이 큽니다. 정기적으로 짧은 시간 모이고 마스크를 착용할 경우 위험이 낮아지지만, 방역 수칙을 소홀히 한 종교시설은 감염의 온상이 되기 십상입니다.
그 외에도 의료기관, 요양시설, 음식점/카페, 유흥시설 순입니다. 감염병 대응의 최전선이 의료기관에서 집단발생이 많이 일어나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고위험군이 모여있는 요양시설에서의 집단발생을 막지 못한 점은 뼈아픕니다. 음식점과 카페는 많아 보이지만 음식점/카페에서 수많은 사람이 마스크를 벗고 음식을 먹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유흥시설 발생은 생각보다 적은데, 이는 고위험시설로 지정되어 운영 자체를 안 한 기간이 길기 때문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선행 확진자 접촉이 전체의 40%로 압도적으로 많지만, 이는 집단감염이 아니라 개인 간 감염이므로 특정 장소의 위험성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쓴 이유는 '집회' 때문입니다. 현재 4단계가 적용 중인 수도권에선 집회가 전면 금지됩니다(아래 그림). 3단계에선 49인까지 허용되지만 지자체별로 특정 장소에서의 집회를 원천 금지하기도 합니다. 신고된 개별 집회에 금지를 통고한 경우도 많습니다.
https://news.seoul.go.kr/html/27/533954/
그런데 야외에서 열리는 집회가 집단감염으로 이어질 확률은 매우매우매우 낮습니다. 야외에서 마스크를 쓴 채로 거리를 두고 하는 집회를 통해 감염이 전파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실제로 위 연구에서 도심 집회로 인한 집단감염이 차지하는 비중은 0.4%인데, 그마저도 2차 때 광화문 집회에서 발생한 250여 건이 전부입니다. 광화문 집회는 집회 자체가 문제였다기 보다 집회에 참석한 인원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버스를 같이 타는 등 방역수칙을 안 지킨 것이 문제였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뤄진 의사파업이나 다른 집회에선 확진자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올해 위원장이 구속되기까지 한 민주노총 집회에선 약 5천여 참석자 중 확진자가 단 3명이 나왔는데, 이것도 집회 며칠 후 같이 식사를 하다가 감염된 것이지 야외 집회에서 전파된 경우가 아니었습니다.
집회의 위험은 이론적으로도, 실증적으로 낮다는 것이 자명합니다. 하지만 유독 집회에만 엄격한 기준이 적용됩니다. 작년 2차 유행 때의 경험이 너무나 강렬해서 일종의 경로 의존성이 생긴 것일 수도 있습니다. 제가 한 언론 인터뷰에서, 노영민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집회 주동자는 살인자들"이라고 외친 것을 팬데믹 최악의 장면으로 꼽기도 했었습니다(링크).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 후에도 집회를 쉽게 허용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또 다른 이유는 집회 자체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우리는 위험에도 감수하면서 밥도 먹고, 차도 마시고, 영화관도 가고, 교회도 가고, 출근도 하고, 회의도 굳이 대면으로 다 하고 있습니다. 그 행위의 가치가 감염 위험을 감수할 만큼 크다고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집회는 소수의 문제입니다. 광장에서 외치는 것 말고는 다른 선택지가 남지 않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무시해도 별 탈이 없는, 막아도 저항하기 어려운, 저항해도 다수의 공감을 얻기 어려운 행위입니다. 집회가 차라리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약자라고, 소수라고 권리를 제한하지 않는 게 성숙한 민주사회입니다. 누군가에겐 광장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감염의 위험이 크지 않은 행위를 다수의 편의에 따라 막을 수는 없습니다.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에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을 코로나19를 핑계로 막는 것은 더 이상 허용되지 말아야 합니다.
관련하여 경향신문이 <감염병의 시대, 집회의 미래>라는 훌륭한 기획을 준비해주어 소개합니다. 안전과 집회의 자유 사이 균형을 찾으려는 의미 있는 시도입니다. 특히나 집회(또는 집회의 자유)의 가치에 주목해준 점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경향신문이 만난 이들은 청와대 국민청원, 언론 제보, 교섭 시도, 민원, 소송, 진정 등 다른 수단을 통해 요구하는 바를 얻지 못해 거리로 나섰다. 남은 카드는 ‘모여서 외치는 것’뿐이었다. 인맥도 돈도 필요 없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 벽에 부딪힌 이들이 자신의 요구를 사회와 자신이 원하는 곳에 전달할 마지막 소통 창구가 바로 집회이다.
이 가치를 인정한다면 안전하게 집회를 허용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어쩌면 감염 전파를 막는 테크닉보다 우리에게 더 필요한 것은 목소리밖에 남지 않은 이들과 연대하는 마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그래서 아래 두 편의 기사와 앞으로 진행될 기획시리즈에 주목해보려 합니다. 많은 분들이 함께해주시기를 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