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 리뷰_<문득 말하고 싶어졌다>
코로나 시대에 감기 바이러스를 사고파는 것부터 공황장애에 걸린 사람의 심리까지 낱낱이 전하다
요즘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것도 쉽지 않지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털어놓기 쉽지가 않아졌다. 사랑하기에 말하고 싶었지만 시간 많지 않은 누군가를 붙잡고 털어놓기에는 망설였던 말들. 이 책에는 그런 말들이 담겨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은 로맨스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연애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이 책의 머리말에서는 ‘어떤 대상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그 대상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다. 아홉 명의 저자들은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이기에 사랑을 담고 글을 써 내려갔을지 간략하게 리뷰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386903
① 안녕_백준범
책을 펴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소설에 어울리게 제목도 ‘안녕’이다. 그런데 이 소설의 제목인 ‘안녕’이 의미하는 바는 Hi일까, Bye일까?
소설 초반쯤 읽었을 때는 잔잔한 분위기에 첫사랑 이야기를 쓴 캠퍼스물인가 생각했다. 주인공이 서준과 재경 사이에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고 삼각관계물인가 싶었다. 그런데 읽을수록 예상이 빗나갔다는 걸 깨달았다. 산 사람과 죽은 사람의 만남과 어우러짐, 그 경계. 끝까지 읽어봐야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영화 <싱글라이더>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② 감기를 주세요_강정미
코로나 시대에 어울리는 판타지 소설이다. 이 소설은 감기 바이러스를 거래하는 직업(감기꾼)이 존재한다는 세계관 하에 진행되는 소설이다(36쪽). 누군가(고객)는 자기가 걸린 감기 바이러스를 다른 사람을 향해 뱉어내고, 그 누군가(감기꾼)는 돈을 받고 감기 바이러스를 가져가서 대신 감기를 앓아준다.
‘감기꾼’이라는 단어에서 떠오른 단어가 두 개 있다. 첫 번째는 ‘사기꾼’이다. 돈을 위해 무엇이든지 하는 사람. 감기꾼인 주인공도 돈을 위해서는 다른 사람의 감기 바이러스를 가져가 앓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두 번째는 ‘허삼관 매혈기’이다. 중국 소설 <허삼관 매혈기>에서 허삼관은 생계를 위해 자신의 피를 판다. 소설 <감기를 주세요>에서 감기꾼인 주인공의 이름도 공교롭게 허삼관이다.
③ 자연선택설_박주영
사랑(?)을 찾아 떠난, 시간대별로 서술된 주인공 구호의 이야기. 뭐랄까, 서술 흐름?이 독립영화를 보는 느낌을 받았다(구호의 심리 묘사마저 너무 현실적이라 그만큼 생생하게 몰입되었다는 뜻이다).
제목만큼 내용에서도 재미난 비유들이 돋보이는 소설이다. 그가 SNS에서 봤던, 꿈꾸었던 이성을 만나러 가면서도 자신을 ‘암컷의 선택을 받은 우월한 수컷’이라 비유한 걸 보고 픽 웃었다(57쪽). 겉모습이나 속마음 모두 어리숙한 구호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이성에게 선택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고 이를 자연선택이라 할 수 있을까? 그가 이성을 만나러 가는 길에서 만난 강아지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다. 그 강아지의 이름 또한 ‘로또’에서 ‘대박이’가 되어가는 과정 역시 재미나다.
④ 너무 후회스럽지만 잊어서는 안 돼_권민찬
대학 편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공황장애가 와서 일어났던 일을 회상하며 공황장애가 왔을 당시의 상황, 공황장애에 걸린 원인 등을 담백하게 서술한 글이다. 최근 적지 않은 현대인들이 우울증, 공황장애에 걸리고 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우울증, 공황장애를 겪는 사람이 어떤 심리를 지니는지 알 수 없어 어떻게 도움이 되거나 선뜻 위로하기가 힘들었다. 이 글을 통해 감히 조금이나마 이해되었다. 결코 쉽게 드러내 쓸 수 있는 소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쓰기까지 주인공의 어려움과 용기가 느껴져 코끝이 찡했다.
주인공은 자신의 마음을 댐, 스트레스나 불안을 댐의 물에 비유했다(84쪽). 그리고 어느 순간 댐에 미사일이 떨어져 댐이 산산조각 났고 댐의 물이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글 마지막에 결국 주인공은 대학교 편입에 성공하지만 공황장애가 다 나은 건 아니다. 그렇지만 과거처럼 자신을 과하게 몰아세우지 않을 것을 다짐한다. 주인공을 응원한다.
⑤ 물고기 속 어항_손여정
주인공 소정이 우울증을 앓고 있어 우울증에 걸렸을 때의 심리를 서술한 4번째 글과도 연결되는 소설이다. 제목의 비유 또한 놀랍다.
연극배우인 어머니와 의사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주인공은 어머니의 출신과 아버지만큼 따라오지 못하는 성적 탓에 친할머니를 비롯한 친척들에게 구박을 받는다. 또 숫기 없는 성격으로 친구들로부터 따돌림당한다. 결국 소정은 우울증에 걸리는데, 소정이의 마음은 소설에서 어항으로 비유되었다. 어항은 소정이의 밖에 있는 것이 소정이 안에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어항을 스스로 잘 돌봐야 한다는 말이 인상 깊었다.
⑥ 가면무도회(Masquerade)의 결말_이한비
총 11편의 시가 독립적이면서도 내용적으로 이어져 있다. 이 시의 제재인 ‘가면’은 사회생활을 하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비유이다. 자신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기보다는 자신을 감추고 살아가야 하는 모습, 그것을 저자는 가면극(가면무도회)으로 보았다.
이방인인 화자는 사회에서 가면 그리고 액세서리를 하고 가면극을 한다. 그러나 화자는 전혀 기쁘지 않다. 오히려 자신이 저주 걸린 가면을 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우울해하다가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별을 보게 된다. 별을 본 화자는 자신도 어둠 속에 가면에 의존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빛을 내겠다고 다짐하며 끝이 난다.
⑦ 고집이었을까 집착이었을까._박상돈
주인공의 첫사랑(연상의 미대녀), 그리고 두 번째로 만난 사랑에 관한 에피소드를 담은 글이다. 글 후반부 주인공의 할머니가 화단 속 꽃을 가꿀 때처럼 교제하는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너그럽게 양보하고 이해해 주어야 한다는 교훈까지. 제목부터 감성이 듬뿍 들어간 이 글은 잔잔한 일기처럼 후반부까지 새벽 감성이 이어진다.
⑧ 벤치_박미소
어떤 물건만 보면 누군가를 떠올린 적이 있는가? 그리움이 사무치면 일상적으로 만나는 물건에도 그리운 사람을 투영시킬 수 있다. 길가에 있는 벤치는 아무나 앉을 수 있고 누군가는 눈길조차도 주지 않고 지나칠 수도 있지만 주인공은 바로 이 벤치에 자신이 그리워하는 어머니를 투영시켰다.
오랜만에 돌아온, 익숙하면서도 낯선 동네에서 주인공은 벤치에서 한 여인을 만나 위로받는다. 그리고 그 여인과 어머니와의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 여인을 통해 사별한 어머니를 떠올린다. 정신 차려보니 꿈이었고, 드라마 <호텔 델루나>가 생각나는 소설이다.
⑨ 옥로역정_박성훈
소설 제목부터 범상치가 않다. 주인공 유준의 죽음 이후 천국과 지옥을 가기 전 노인(아마도 저승사자?)과 이야기를 나누며 주인공의 과거 행적을 돌아본다는 점에서 영화 <신과 함께>가 떠올랐지만 <신과 함께>에서 나온 선한 주인공과는 정반대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은 선하기는커녕 너무 잔인하고 악하다. 주인공은 죽음은 자신의 영역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며, 자신의 살인에는 결국 신의 의도가 있을 것임을 말한다. 즉 자신의 살인은 자기 잘못이 아니라 신의 탓이라며 무책임하고 잔인하게 살인을 저지른다. 게다가 살인 후에는 참회조차 하지 않고 살인에 대한 변명을 늘어놓기만 한다. 마지막에 주인공은 운명을 신에게 떠넘기지 않고 처음으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데, 비명 소리로 끝이 나는 걸 보아하니 지옥으로 떨어진 것 같다(그래야 마땅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