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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토스트걸 Aug 29. 2020

누구나 호수 한 곳쯤 마음에 둔다

1만 개의 호수를 품은 미네소타의 여름

미네소타의 여름은 블루다. 1만 개의 호수를 품어 '호수의 땅 land of lakes'이라 불리는 이 주는 하늘부터 호수 수면까지 온통 새파랗다. 어느 곳에서 머물든, 호수의 크기와 상관없이 차로 20분 이내로 푸른 물결과 마주하는 이 도시에서 사람들은 자연이 허락하는 모든 스포츠를 즐긴다. 수상스키와 크루즈, 산책과 조깅은 기본. 보드에 앉아 따로 또 같이 노를 젓는 카누와 카약, 긴 낚싯대를 춤추듯 던지는 플라잉 낚시, 요트, 하이킹과 수영까지 가능하다. 수심이 낮은 호수에는 인공 모레 사장까지 마련되어 있어 이들 사이에서는 '호수 해변 lake beach'이라는 단어가 일상적이다.


 한낮의 호수는 마치 거대한 거울과 같아 우리가 미처 올려다보기 힘든 하늘 풍경을 눈 앞에 펼쳐 놓는다. @ Nokomis Lake


하루 수백 명의 확진자가 나오고 있는 미네소타에서(높은 수치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50개 주 가운데서는 코로나 심각도가 중간 정도) 호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는 유일한 대상이다. 게 중에는 그 크기가 바다처럼 광활하고 드넓어, 넋을 잃고 산책을 하고 있자면 그곳이 해변인지, 모래사장인지, 휴양지인지, 지금이 코로나 시대인지, 잠시 여행을 떠나온 것은 아닌지 자연스레 다양한 감정의 층위들을 경험하게 된다. 모두가 호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어떤 곳도 같은 풍경은 없다.


바다처럼 드넓은 호수 위에 정박한 개인 요트들 @ Lake Harriet


미네소타 사람들은 자동차에 카누와 카약, 때로는 자그마한 요트를 싣고 매일 같이 호수로 나온다. 수심이 얕은 모래 기슭에서는 아이들이 여름 볕에 시커멓게 온 몸을 태우고, '더 이상은 위험하니 이 이상 수영을 금한다'는 호수 위의 부표 뒤편으로는 요트와 제트스키, 카누가 유유자적 흐른다. 어디까지가 땅이고 호수인지 알 수 없는 그 광활한 호수는 하늘의 모든 풍경을 고스란히 자신의 몸 위로 투영시키는데, 흰 구름 무리가 수면에 고스란히 비칠 때면 마치 한 폭의 유화가 연상된다. 비현실적일 만큼 아름다운 풍경을 바라다보면, 이 시대의 코로나 19가 비현실적일 만큼 아득하게 느껴지곤 한다.



개체수가 많다는 것은 선택의 폭이 넓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만 개'의 호수가 '만개'한 미네소타에서 내게는 그때그때 감정과 기분에 따라 '그날'의 호수를 선택하는 습관이 생겼다. 수영하기 좋을 만큼 날씨가 화창한 날에는 아이와 함께 샌디 비치가 깔린 노코미스나 해리엇 호수를 들른다거나, 마음이 어지러울 때면 사각 거리는 마른 잎 소리가 사색을 돕는 미네통카의 룬 호수를 걷곤 한다. 마치 늪지처럼 호수 아래로 침잠한 나무 기둥과 수면 가득 일렁이는 물방개의 발자국, 고요한 호수를 가로질러가는 오리 떼 무리를 볼 때면 호수란 생태의 보고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언뜻 주변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듯한 고요 속에서, 그 가운데 묵묵히 존재하는 생명들을 느낄 때면 무한한 에너지와 위로를 받곤 한다. 코로나 피로감으로 지친 이번 여름은 그 존재감이 더욱 컸다. 


작은 웅덩이 같은 고요한 늪지가 인상적인 미네통카 룬 호수 Lune La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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