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충격 그리고 인종차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열심히 일하고 있던 4월 20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매니저님이 “오늘 4월 20일 인거 알아?”라고 물으셨고 저는 달력을 확인한 후 “네! 오늘 20일이네요.”라고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습니다. 처음엔 왜 굳이 저에게 오늘 날짜를 한 번 더 물으셨는지 몰랐어요. 그리고 한 시간여 뒤, J가 또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 그래서 저는 그 날이 J의 마지막 근무 날이었기 때문에(그녀는 1년 6개월 정도 일한 자니로켓을 그만두고 우리나라의 배달 앱과 비슷한 Uber eats나 Skip the dishes의 드라이버가 되기 위한 준비 중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너의 마지막 근무 날이잖아!”라고 답했습니다. J는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린 뒤 “아 맞아, 근데 너 4월 20일이 무슨 날인지 모르는 것 같은데, 오늘은 마리화나 축제가 열리는 날이야. 공개적으로 마리화나를 즐길 수 있다고!”
‘마리화나 축제?’ 그 말을 들은 저는 고개를 갸우뚱했습니다. 제가 캐나다로 오기 직전 캐나다는 마리화나가 합법으로 바뀌었고, 길가에서 마리화나를 피우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긴 했지만 그걸 가지고 축제를 연다니.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궁금증은 묻어 둔 채 열심히 일했고 퇴근하자마자 주 의회 의사당 앞마당으로 갔습니다. J가 그곳으로 가면 신기한 걸 볼 수 있을 거라고 했거든요. 평소와 다름없이 파란 하늘에 초록 잔디. 어김없이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정말 많았습니다. 수 십 명으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수 백, 수 천의 사람들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저마다 돗자리를 깔고 잔디에 누워서 피크닉을 즐기고 있었고 어린아이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나이 대를 가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은 시계가 4시 20분을 향해 가면서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며 흥분하기 시작했고 노래를 틀고 춤을 추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그러길 십 여분. 메인 무대에서 진행하던 MC가 카운트다운을 시작했습니다.
“10, 9, 8... 3, 2, 1!”
그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카운트다운을 함께 외쳤고, 새해를 맞이하는 것 같은 흥분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4월 20일 오후 4시 20분. 사람들은 “FOUR TWENTY!”를 외치며 입에 마리화나를 물고 연신 연기를 내뿜었습니다. 그 순간 느꼈던 충격은 정말 잊을 수가 없습니다. 록 페스티벌에서나 들을 수 있는 큰 음악소리가 그곳을 가득 메웠고 사람들은 축제 분위기였습니다. 젊은 청년부터 노인에 이르기 까지. 나이를 가리지 않고 너나 할 것 없이 그 순간을 즐겼습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만 해도 지팡이를 짚고 있던 할머니였는데 음악소리에 맞춰 미친 듯이 춤을 추고 계셨고 사람들은 환호했습니다. 맑은 하늘은 마리화나 연기로 가득 찼고, 담배냄새와는 다른 매캐한 탄내의 마리화나 냄새가 코를 찔렀습니다. 저는 담배를 피우지 않기 때문에 평소에도 담배냄새를 매우 싫어합니다. 그런데 마리화나 냄새는 그 이상입니다. 어떻게 글로 표현해야 될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타는 듯 한 아주 매캐한 냄새인데 그 냄새가 구름같이 피어오르고 사방에서 모든 사람들이 그 냄새를 만들어 낸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충격’이었습니다. 한국에선 절대 금기 시 되는 마약을 이렇게 공개적인 장소에서 피우다니, 나아가 이걸 축제로 즐기다니 말입니다. 하지만 이내 그들의 다름을 받아들였고, 저는 무료로 나눠주는 나쵸를 맛있게 먹으며 그들을 구경했습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기에, 그들과 똑같이 함께 하지는 못하지만 그들을 존중해야겠다는 교과서적인 답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서로 다른 나라에, 다른 문화이기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것을 실제로 경험하고 받아들이는 데에는 개인마다 차이가 있고, 약간의 시간도 필요하다는 것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학교에서 글로만 하는 공부만이 공부가 아니라 실제로 몸으로 부딪히고 경험하는 공부가 얼마나 확실한 공부인지 경험한 시간이기도 했고요. 결과적으로 아주 신선한, 그리고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서로 간 문화의 '다름'은 분명 존중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속에서 ‘틀림’ 또한 존재합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인종차별입니다. 우선 캐나다는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이민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수많은 인종과 문화가 복합적으로 섞여서 만들어진 국가라는 점. 그래서 다른 영어권 국가들보다 인종차별이 덜하고 그중에서도 빅토리아는 더더욱 인종차별이 없는 곳으로 유명하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두 가지 에피소드가 있는데 먼저 제가 경험한 것부터 말씀드리려 해요.
즐거운 휴무에 빅토리아의 센트럴 파크라고 불리는 비콘힐 파크에 혼자 구경을 갔던 중 벌어진 일입니다. 비콘힐 파크는 공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큰 규모를 가지고 있는데요, 그 안에 어린이를 위한 작은 동물원도 있고 그 밖에도 수많은 야생동물이 살고 있는 아주 평화로운 공원입니다. 저도 여느 사람들과 다름없이 벤치에 앉아 여유를 즐기고 있었는데 갑자기 맥주 캔을 들고 이미 술에 취한 듯 한 백인 무리가 다가왔습니다. 참고로 캐나다는 공공장소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과 같은 음주행위는 명백한 불법입니다. 그들은 제 옆에 앉아 뭐라 말하며 같이 사진 찍자고 했습니다. 저는 분명히 “NO”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계속해서 카메라를 들이댔고 영상까지 찍어댔습니다. 저는 처음 겪는 일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채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해 서둘러 공원을 떠났습니다.
처음엔 그저 술에 취해 한 행동이라고 생각하고 넘기려 했지만, 이건 분명히 인종차별주의적인 생각에서 비롯된 행동이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과연 제가 백인 남자였다면 그들이 단체로 다가와 카메라를 들이대며 같이 사진 찍고 영상을 찍자고 했을까요? 정답은 NO입니다. 제가 아시아인이었기 때문에 그들 눈에는 신기하게 보였을 것이고 동물원에 있는 동물을 보는 듯한 시선으로 제게 다가왔었겠죠.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때 생각만 하면 심장이 벌렁거릴 정도로 화가 치밉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제가 목격한 경험입니다. 저는 휴무 때면 빅토리아 근방을 혼자 여행하거나 다운타운 내에 있는 카페에 앉아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하는데 이 날도 그런 날들 중 하나였습니다. 스타벅스에서 책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시안 여자분이 카페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음료는 주문하지 않은 채 자리에 앉아 쉬고 있었죠. 많은 분들이 알고 계시겠지만 하워드 슐츠 스타벅스 회장은 음료를 주문하지 않아도 화장실을 이용할 수 있고 앉아서 쉴 수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앞자리에 앉아있던 백인 남자가 갑자기 뭐라고 이야기하더니 서로 손가락 욕을(우리가 다 아는 그 욕) 해댔습니다. 아시안 여자분은 백인 남자가 계속 뭐라고 해도 무시한 채 자신의 볼 일을 보는 듯했습니다. 저는 그저 그렇게 언쟁으로만 끝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일은 그 이후에 발생합니다. 그 백인 남자가 카페를 나가는 길에 여자분이 의자에 걸어뒀던 재킷 모자에 자신의 물을 부어버린 것입니다. 그러곤 빠르게 카페를 나갔습니다. 재킷 모자 속에는 물이 가득했고 재킷을 집어 들자마자 그 물은 바닥으로 쏟아졌습니다. 카페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그쪽으로 쏠렸고 그 여자분은 연신 “I'm sorry”를 외치며 휴지로 그 물을 닦았습니다. 도대체 그분이 잘못한 게 무엇일까요? 그 시간 스타벅스 안에는 그분 말고도 음료를 주문하지 않은 채 앉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말이죠. 왜 하필 딱 그 여자 분만 골라서 욕을 하고 물을 부운 걸까요? 이건 명백한 인종차별입니다. 저는 이 광경을 목격한 후 영어권 국가에서 아시안으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다시 한번 느꼈고, 적극적으로 그 상황을 말리지 못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도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내가 만약 적극적으로 그 백인 남자를 말렸다면 물을 붓기까지는 안 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며칠간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인종이 다르기에, 서로가 살아온 국가 그리고 환경이 다르기에 그 속에서 존재하는 차이는 분명히 존재할 것입니다. 그걸 흔히 ‘문화’라고 하지요. 하지만 그 문화에 우등과 열등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저 ‘다름’만 존재할 뿐입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살아가는 지금도 몇몇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를 이용해 우월적인 지위를 지니려 하고, 그 과정 속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해서는 안 될 말과 행동을 하곤 합니다. 인종차별이 거의 없다는 캐나다에서 겪은 이 두 가지 일들이 제 머릿속에 남긴 기억은 참 강렬했습니다. 혹시 내가 한국에서 외국인들을 바라볼 때 지나친 관심을 보이진 않았는지, 그저 호기심이라고 하기엔 그 시선이 무례하지는 않았는지 생각하고, 또 반성하게 되었거든요. 동양인이라고 해서 무조건 피해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을 바라볼 때 잘못된 기준과 시선으로 바라봤을지 모릅니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보낸 우리의 시선이, 웃자고 던진 농담 한마디가 그들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악몽 같은 일이자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먼 타국에 와서 가슴 깊이 배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로 같은 의미로 많이 쓰는 '다르다'와 '틀리다'사이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큰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