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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Sep 04. 2019

그들과 우리가 된다는 것

어디 출신이라고?

 햄버거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외국인 친구들을 많이 사귈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한인 레스토랑이나 일식당, 중식당에서 일했다면 동양인 친구들 위주로만 사귈 수 있었을 텐데 저는 유럽, 남미, 동남아, 캐나다 등 다양한 지역 출신의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중 저의 첫 ‘친구’가 되어준 B.


 그는 제가 취직하고 난 후 2주 정도 뒤에 일을 시작한 남자였습니다. 매장에서 일할 땐 거의 말을 하지 않아서 매니저님은 ‘Shy boy’라고 부르기도 할 정도로 조용한 친구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왠지 모르게 그 친구에게 관심이 갔어요. 누가 봐도 선한 얼굴에 항상 웃는 모습이었거든요. 그래서 용기를 갖고 먼저 말을 걸었습니다. 다인종, 다문화 국가인 캐나다에선 나와 다르게 생긴 사람들과 처음 이야기를 할 때 “너 어디 출신이니?”라고 묻는 게 일반적이에요. 그래서 저도 물었죠. “너 어디 출신이야?” 


 B는 평소와 다름없이 웃으며 뭐라고 말했어요. 하지만 저는 알아듣지 못했죠. ‘알’로 시작하는 나라인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을 해도 제 머릿속에 ‘알’로 시작하는 나라는 당최 생각이 나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다시 한번 물은 끝에야 알아들었습니다. B는 ‘알바니아’ 출신이었어요.


 분명 들어 본 적은 있지만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정확히는 모르는 나라 알바니아. 제가 너무 미안한 표정으로 알바니아에 대해서 조금만 얘기해 줄 수 있냐고 묻자 B는 웃으며 “괜찮아, 우리나라가 많이 유명하진 않아. 너 그리스 알지? 지중해 쪽. 그쪽에 있는 나라야”라고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줬고. 저는 쉬는 시간에 바로 알바니아라는 나라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B말대로 알바니아는 그리스와 이탈리아 근처에 있었고 유럽에 있지만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보다 이슬람교도가 많은 국가였습니다. B는 지도를 보며 자세히 설명해 줬는데 자신은 알바니아인이지만 정확히는 코소보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코소보? 예전에 사회 교과서에서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 찾아보니 그 코소보가 맞았습니다. 내전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이 있었고 현재는 독립을 선언했지만 일부 국가로부터는 독립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곳. B에게 알바니아, 코소보에 대해서 더 자세히 묻고 싶었지만 혹시 실례가 될까 싶어 묻지 않았습니다. 어느 나라 출신, 국적이 뭐가 중요한가요? 우리는 지금 캐나다에 있고 같은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하죠.


 이 짧은 대화가 서로를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저와 B는 다른 누구보다도 가깝게 지냈고 같이 일하는 시간이 겹칠 때마다 사소한 장난을 치며 즐겁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저의 첫 외국인 친구가 되어주었죠.


 서로를 알게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B와 저는 서로의 휴무에 하루 종일 빅토리아 이곳저곳을 누볐습니다. 빅토리아의 랜드마크인 주 의회 의사당을 비롯해서 캐나다 최초로 만들어졌다는 차이나타운, 노을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댈러스 로드까지. 아름다운 곳을 둘러보는 것도 물론 재밌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한국 식당에서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다운타운에 위치한 한국 식당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는데 젓가락을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B는 저의 시범을 본 후 몇 번을 시도했지만 결국은 포기했어요. “너희는 어떻게 젓가락으로 쌀알도 집어 먹어?”라는 말과 함께 밥을 젓가락으로 먹는 저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보던 B는 결국 점원에게 포크를 달라고 요청한 후에야 제대로 밥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 종교적인 이유로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 B는 간장으로 양념한 닭고기 볶음을 시켰는데 연신 맛있다고 말하며 한 그릇을 싹 비웠습니다. 내심 저는 뿌듯했어요. 내가 만든 음식은 아니지만 외국 친구가 한국 음식을 맛있게 먹으니 무슨 이유에서 인지 기분이 좋더라고요. 다음엔 한국 치킨을 먹으러 가자고 약속한 후 B와의 첫 번째 나들이는 끝이 났습니다.


 이 곳에 오기 전 외국인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개방적이라고 하니 친구는 금방 사귀겠다고 생각했었어요. 하지만 그 생각은 일을 시작하자마자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일반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개방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는 건 맞습니다. 단일민족국가인 우리나라 사람들과 비교하면(물론 지금은 수많은 외국인과 다문화 가정이 있지만) 다양한 인종이 섞여 만들어진 국가에서 사는 친구들이니 상대적으로 개방적일 수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 먼저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들은 개방적이지만 개인주의적이기도 하거든요. 남에게 피해 주는걸 극도로 피하고, 반대로 타인이 나에게 지나친 관심을 보이거나 피해를 주는 것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런 환경 때문에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을 거라고 여겼던 저의 생각은 보란 듯이 틀렸습니다. 그래서 먼저 다가갔어요. 출근길에 누구보다 환하게 인사했고, 저에게 부탁하는 일이 있다면 제가 할 수 있는 한 거절하지 않고 다 들어줬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을 연 가장 중요한 팁! 바로 그들 출신 국가에 관심을 갖는 거예요. 가식이 아닌 진심으로 말이죠. “너희 나라 말로 Thank you는 어떻게 말해?”, “브라질은 포르투갈어를 쓴다고? 한번 해줄 수 있어? 나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서 궁금해!”와 같이 아주 간단한 질문들을 던지는 거예요.  타지에서 함께 고생하는 그들에게 자신의 나라에 진심으로 관심을 갖는 사람을 향한 마음의 문은 자연스레 열리기 마련입니다. 그와 더불어 저는 항상 먼저 연락했어요. “너 오늘 휴무라며? 다른 일정 없으면 나랑 같이 놀자!” 라구요. 상대방이 저보다 나이가 어리거나 많은 건 문제가 되지 않았어요. 이곳은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곳이니까요.


느꼈습니다.  

내가 한걸음 다가가면 그들은 두 걸음, 세 걸음 다가와 준다는 걸.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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