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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용진 Sep 26. 2019

인연일까 그저 인맥일까

어렵다 어려워 증말


 ‘인연’과 ‘인맥’


비슷하지만 하늘과 땅 차이인 단어.


 20살이 되던 해 서울에서 대학생활을 시작한 저는 자연히 몇 명의 고등학교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많은 친구들과 연락이 끊겼습니다. 끊긴 것인지 끊은 것인지는 명확히 알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지금은 서로의 연락처도 모르는 사이가 된 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어진 2년간의 군대 생활. 군생활을 하면서 선임, 후임, 그리고 동기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많이 사귀었지만 그와 동시에 대학에서 사귀었던 많은 친구, 선 후배들과 또 자연히 멀어지게 됩니다. 전역 후 학교로 바로 복학했다면 다시 이어졌을지 모를 대학에서의 인연은 2년의 휴학으로 점점 더 멀어져 이제는 SNS로 생사를 확인하는 사이가 되어버렸죠.


 군대에서의 인연은 어떨까요?

아이러니하게도 남자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 생활 중에 만나 ‘전우’라는 이름으로 평생을 함께 할 것 같았던 ‘사나이들(?)의 인연'도 전역 후엔 언제 그렇게 친했냐는 듯이 금세 사라지고 맙니다. 사는 지역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다르기에 ‘군대’라는 공감대가 사라지면 그 끈끈했던 전우애는 더 이상 끈끈하기 어려워지니까요.


 처음엔 정말 힘들었습니다.

모든 게 제 잘못인 것 같았거든요. 내 성격이 모나서, 너무 예민해서, 그들이 제 곁을 떠난 것만 같았습니다. 그렇게 인간관계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수십, 수 백 개의 전화번호를 지워가며


 ‘다 쓸데없어. 어차피 자기 이득만 취하면 연락도 안 할 사람들!’



이라는 말을 혼자 되뇌었죠. 자존감은 그 바닥이 어딘지도 모를 만큼 끝도 한도 없이 떨어져 갔습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게 두려웠고, 스스로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커다랗고 높은 벽을 세워 방어하기 시작했죠. 그렇게 벽이 하나 둘 주위를 둘러싸고 이제는 더 이상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굳건해졌을 때 생각했습니다.


“이게 정말 나만의 잘못인가?”


“아직 나와 맞는 인연을 만나지 못한 거일 수도 있잖아”


“내가 그들의 성격에 맞게 내 성격을 굳이 고쳐야 하는 거야?”


“나는 그저 나야!”


속이 후련했습니다.

그동안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던 모든 문제들이 ‘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니 바닥을 치다 못해 지하로 곤두박질치던 자존감은 오르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대하는 자세도 바뀌었습니다. ‘이 사람과의 관계에 최선을 다하되 무엇인가 대가를 바라지 말자.’라고 매 순간 생각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상대방에게 무엇인가를 주면 그와 상응하는 대가를 얻길 바랍니다. 그런데 그 대가가 성에 차지 않거나 심지어 대가 자체가 없다면 실망하게 되고 상처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상처가 깊어지면 더 이상 치료하기 힘들어지게 되고 마음의 병을 얻게 되죠.


 새로운 공동체에 들어가는 게 겁부터 납니다. 모든 사람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게 되고 ‘이 사람들도 지금은 잘해주지만 언젠가 나를 떠날 사람들이야.’라는 부정적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상대방의 조그만 말과 행동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되고, 결국엔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죠. ‘난 다른 사람 신경 안 써!’라고 말하지만 실제론 다른 사람을 신경 쓰다 나 자신을 돌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한국을 떠나 캐나다에서 생활하면서 한국에 있는 가족, 친구들과 10시간이 넘는 시차를 극복하고 연락을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자연히 연락을 주고받는 사람의 수는 줄어들었고 ‘인간관계의 늪’에 또 빠져 버리기도 했습니다. ‘왜 연락을 안 할까?’, ‘날 잊은 건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깨달았습니다. ‘그들과 내가 ‘인연’이라면 카톡 한 번 안 했다고, 전화 한 통 안 했다고 끊기지 않을 거야.’라는 것을요.


 물론 잘 지내냐고 먼저 연락을 주면 고맙습니다. 반갑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저를 진정한 인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 거라는 굳건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제가 그렇게 그들을 잊지 않고 있으니까요.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에 ‘좋아요’만 누르며 관계를 유지하려고 하는 사람들보단 오히려 연락 한 번 없지만 묵묵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 진정한 ‘인연’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전혀 연락 안 할 것 같은 사람과 연락하게 되기도, 그와 반대로 평생을 연락할 것 같은 사이가 데면데면하다 못해 원수 지간이 되기도 하는 게 인간관계라고들 합니다. 한국을 떠나 보니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아직도 인간관계는 어렵지만 말이죠.


‘인연인지 그저 인맥인지는 아무도 모르는 거니까!’






@victor_yongj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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