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용진 Jan 07. 2020

이게 향수병이라는 건가요?

뿌리지도 않는 향수에 걸리다니

반복되는 일상을 살다 보면 시간이 더 빨리 지나간다고 한다.

매일 같은 시간에 일어나 같은 길을 걷고, 같은 장소에서 같은 사람들과 일을 하면 어느덧 퇴근길에 오르고 집에 와 컴퓨터 잠깐, 핸드폰 잠깐 한 후 잠자리. 내일도, 그리고 그다음 날도 별반 다르지 않은 하루하루를 살았다. 어쩌면 큰 사건 사고들이 매일 같이 일어나 정신없이 사는 삶보다는 이런 삶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시간들은 나에게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향수’를 갖게 했다.



 집을 떠나 캐나다에 온 지 어느덧 300여 일. 그간 잘 적응해 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도 모르게 생겨난 그 깊은 그리움은 한 번 찾아온 후 좀처럼 나가질 않았다. 일은 어느 정도 적응해서 할 만했지만 가끔씩 찾아오는 약에 취하고 술에 취한 사람들 때문에 매일이 불안했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손님들에게 이것저것 추천하라는 매니저의 압박은 그렇지 않아도 벅찬 일을 더 벅차게 만들었다. 그렇게 매일 여덟 시간을 세상과 싸우고, 퇴근길 만원 버스에 올라 힘겹게 집에 오면 ‘이게 뭐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문득 찾아오며 미친 듯이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어 진다.



 한국 카페에도 진상 손님은 있다. 하지만 적어도 약에 취해 도로 공사장에서 쓰는 고깔을 들고 와 부부젤라처럼 주문하는 사람은 없다. 화장실은 또 어떤가. 한국도 모든 곳이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화장실 변기에 앉아 바늘로 팔뚝을 찌르는 사람들은 없지 않은가. 이렇게 하나, 둘 한국과 캐나다를 비교해 가며 내가 이곳에서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고 있나?라는 물음이 시작되면 그 끝은 결국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로 닿게 된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평소와는 다른 나의 모습을 바로 알아챘다.

항상 웃는 모습에 농담을 주고받던 나의 모습이 어느 순간 어두운 그림자에 가려 사라졌기 때문이다. 무슨 일 있냐며 조심스레 물어보는 동료들의 물음에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 않아 애써 웃어 보이지만, 그 웃음이 진짜 웃음이 아닌 것을 아는 동료 A는 손님이 없는 틈을 타 진지하게 나의 상태에 대해 물어봤다. 그리고 나는 답했다. “요즘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아. 하루에도 수십 번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가도, 막상 정말 돌아갈 생각을 하면 그곳에서의 생활이 걱정돼 가고 싶지 않기도 해. 매일같이 보던 가족, 친구들이 그립고 일주일에 적어도 한 번은 가던 돈가스 집도 너무 가고 싶어.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A는 “너 향수병인 거 같아.”라고 답했다.



‘향수병?’



생각지도 못한 답에 나는 적잖이 놀랐다. 그리고는 “아냐 그건 아닐 거야. 내가 예전에 영화 같은 데서 보던 향수병은 살도 많이 빠지고 눈도 퀭하고 막 그런 거였는데? 근데 난 그 정도는 아니잖아.”라고 답했다. 그렇다. 나는 향수병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영화나 책에서 보고 들었던 향수병은 치료법도 따로 없어 심하면 죽기도 하는 그런 무서운 마음의 병 아니던가. 하지만 A의 답은 달랐다. “모든 병에는 그 정도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너도 정도만 약할 뿐 향수병이 맞는 것 같아. 너 한국 떠나 온 지 1년 가까이 되어가는 거 아냐? 충분히 그럴 수 있을 때야. 일 끝마치고 외로울 때나,  휴무 때 언제든 연락해! 같이 놀러 다니고 맛있는 거 먹자.”



 울뻔했다. 

나보다 나이도 어린 프랑스 아이에게 듣는 그 위로가 차디찬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의사가 내린 진단도 아니지만 그녀의 진단은 정확했다. 설사 향수병이 아니더라도 그렇다고 생각하고 싶을 정도로 A는 진지하게 내 고민을 들어줬다. 그 후 A는 시간이 날 때마다 문자로 연락했고, 몇 번 같이 밥도 먹고 카페도 갔다. 나아가 A는 자신의 집으로 나와 함께 일하는 한국인 Y를 초대하기까지 했다. 모처럼 한국식당에서 다 같이 저녁을 먹던 중 그다음에 무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던 차에 A는 “이곳에서 우리 집이 멀지 않은데, 너희 우리 집 가지 않을래?”라고 했고 나와 Y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Yes!”를 외쳤다.



 빅토리아에서 외국인 친구의 집을 한번 가본 것 이후로 토론토에서는 처음이었다. 식당이나 카페가 아닌 친구의 집으로 직접 간다는 것 자체가 설레는 일이었기에 우리는 집 근처 LIQUOR STORE(캐나다에서는 일반 마트나 편의점에서 술을 판매하지 않고, 지정된 주류 전문 판매점에서만 술을 살 수 있다.)에서 저렴한 와인 한 병을 산 후 A의 집으로 향했다. 집은 근사했다. 다른 룸메이트 한 명과 같이 살긴 했지만 그 친구는 고향인 오타와로 잠시 돌아간 상태여서 그 넓은 집엔 우리 셋뿐이었다.



이런 집이라면 여기서 평생 살겠어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토론토에서 이 정도의 집에 살려면 얼마나 들까'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었는데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나는 A에게 월세로 얼마 내냐고 물었다. 답은 예상 그대로였다. 한화로 100만 원이 훌쩍 넘는 월세였다. 나도 적잖이 비싼 월세를 내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A의 집은 상상초월이었다. 하지만 그 가격에 맞게 집은 깔끔했고 벽난로까지 있어 차가운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기 부족함이 없었다. 우리들은 냉장고에 있던 갖가지 재료들을 꺼내 이름 모를 음식들을 만들었고 미리 사온 와인과 함께 분위기도 한껏 잡았다. 와인에 음악이 빠질 수 없기에 A와 함께 ‘오 샹젤리제’를 부르며 세상 그 누구 부러울 것 없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밤을 보냈다.



 그 날 이후 그렇지 않아도 친했던 우리들은 정말 동네 친구처럼 가까워졌고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서로의 외로움을 달랬다. 한국의 가족들을 만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가족들과 보내던 시간처럼 따뜻한 시간을 함께 보내고, 동네 친구들과 맥주 한잔 하는 게 꿈처럼 느껴지지만 이곳에서 새로운 동네 친구들을 사귀었다. 한때 우울의 낭떠러지 끝에 서있던 나의 얼굴은 언제 그랬냐는 듯 이전보다 더 밝아졌고 실없는 농담을 던지며 웃고 떠드는 나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생각해보면 빅토리아에서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힘들어하던 적이 있었다. 그때도 같이 일하던 동료들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고, 이곳에서도 동료들이 친구가 되어주었고 가족처럼 대해주었기에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세상에 내 편이 하나도 없고 나 혼자만 덩그러니 놓여있다고 생각할 때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나처럼 머나먼 외국에서 그런 감정을 느끼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익숙한 환경과 사람들 속에서 조차 그런 감정을 느낀다면, 그건 외국에서 느끼는 것보다 더 끔찍하고 무섭게 다가올 것이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행복해 보이는데 나는 그렇지 않고, 주변의 모든 것은 변함없이 그대로인데 나만 바뀐 것 같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감히 한마디 하자면, 그 순간을 혼자 이겨내겠다며 끙끙대지만은 않길 바란다. 물론 다른 사람들과 고민을 나누고 시간을 함께 보낸다고 해서 그 힘듦의 순간이 눈 녹듯이 사라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밝음에 내 어두움이 더 돋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사람과 함께 할 때 더 빛이 나기 마련이다. 나에게 마음을 터 놓을 존재가 있고 그 존재가 나에게 힘을 주고자 한다면 그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존재 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내 주변을 찬찬히 둘러봤으면 좋겠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 사람이 나에게 큰 힘이 되어 줄 수 있다. 생각보다 나에게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었을 수 있고, 도움을 주고자 할 수 있다. 그들에게도 나와 함께할 기회를 준다고 생각하고 마음의 문을 조금만 열어둔다면, 그 공간을 비집고 그들은 내 마음속에 성큼 들어와 어느덧 내가 믿고,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줄 것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아는 것 같지만 때로는 남이 보는 ‘나’의 모습이 더 정확할 때가 있다. 그리고 나를 잘 아는 그 타인이 나에게 손을 내민다면 게다가 그 손이 믿을 만하다면 가끔 묻고 따지지 말고 덥석 잡아보는 것도 좋다. 그러면 나도 몰랐던 나의 존재를 알게 될 것이다. 내가 생각하던 나는 흐물흐물 거려 젓가락으로 잡을라 치면 계속 부서지는 도토리묵일 수 있지만, 그들이 보는 나는 단단한 깍두기 같은 모습일 수도 있으니 말이다.



 나는 내가 아는 나보다 강하다.

    







@victor_yongjin

매거진의 이전글 아들이, 사랑하는 엄마에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