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서의 사춘기
대한민국에 살면서 ‘서른’이라는 나이가 주는 중압감은 실로 상당하다.
“서른 전에 하고 싶은 거 다 해봐!”, “아직 20대잖아, 맘껏 실패해도 괜찮은 나이야.”
사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도 누가, 어떤 이유로 ‘서른’을 실패해도 되는 나이와 실패하면 안 되는 나이로 구분 짓는 기준으로 삼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계란 한 판이 주는 부담을 이기지 못하고 주변의 많은 친구가 원하지 않던 직장에 들어가 원하지 않는 오늘을 ‘버티는’ 모습을 많이 보았다.
‘존버는 승리한다.’라는 말이 있다. 속된 말로 존X 버티면 승리한다는 뜻인데, 나는 그 말에 필요조건이 있다고 생각한다. 무언가를 위해 버티는 시간이 내가 궁극적으로 원하는 것을 성취하기 위한 시간이라면 사람들의 말처럼 언젠가는 승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무엇을 위해 ‘오늘’을 버려가며 버티는지 알 수 없을 때의 그 시간은 정말 ‘버티기만 하는 시간’이 될 것이다. (그 시간을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이 되었든 피가 되고 살이 될 것은 분명하기에)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힘들고 고된 길인 것은 분명하지만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확신을 갖고 그 길을 걷는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대한민국 남자로 태어나 군대에서 2년을 보내고 휴학을 2번이나 또 한다는 건 쉽지만은 않은 선택이었다. 학업을 중단한 4년이라는 시간 동안 동기들은 토익, 토플은 물론이고 해외 봉사에 인턴쉽까지 사회에서 인정받는 스펙을 쌓아갔다. 사람들의 기준과 눈높이에서 바라본 나는 뒤처진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전공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은 채 전역 후 바로 복학해서 남들 하듯 취업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은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이다. 비록 이력서에 한 줄 적을 스펙은 얻지 못하겠지만 그 시간 동안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분명하게 알고 싶었다. 그리고 그 기간의 끝을 바라보는 지금, 확실친 않지만, 어렴풋이 답이 보이는 듯하다.
그중 하나는, 나는 내가 발 디디고 있는 ‘공간(혹은 환경)’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작게는 집부터 크게는 사는 도시, 나라까지. 내가 어디에 살고 있고 어떤 환경에 처해있는지는 나에게 있어 정말 중요한 부분이다. ‘집’이라는 공간을 생각해보자. 나에게 있어 집은 집다워야 한다. 밖에서 힘들고 지친 몸을 이끌고 들어와 쉴 수 있는, 세상 어느 공간보다 개인적이고 포근한 곳이 집이어야 한다. 그렇기에 집은 따뜻해야 하고, 아늑해야 한다. 비록 월세를 내며 매달 내 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의 수명을 연장해가며 살고 있는 처지에 있다 하더라도 그 공간은 나에게 맞게 꾸며지길 원한다. 경제적 상황만 허락된다면 따뜻한 온기를 나눌 수 있는 반려동물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에서 류준열 배우가 “모든 온기가 있는 것들은 위안이 된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 하나 먹여 살리기도 바쁜 오늘이라 지금은 엄두도 못 내지만, 그때가 언제가 되었든 내가 다른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상황만 주어진다면 내 옆엔 함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생명이 있을 것이다.
조금 더 큰 공간, 도시를 한번 보자.
나는 바다가 있는 도시에 살고 싶다. 누가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라고 묻는다면 난 0.00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다”라고 답할 것이다. 바다가 왜 좋은지는 나도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지만, 바다에서 끊임없이 움직이는 파도의 모습, 살짝 비릿한 바다 내음, 백사장을 푹푹 밟으며 걸을 때 나는 소리, 모든 것이 내 감각을 자극한다. 감각은 예민해 지지만 마음은 편안해지는 바다라는 공간이 주는 힘과 위로는 말로 설명이 불가능하다.
그리고 너무 크고 바쁜 도시는 나에게 조금 벅차다. 고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무조건 서울로 올라가 뉴스 중간 갑자기 시그널 음악이 나오며 지방 소식을 전하는 지방 뉴스를 보는 게 아니라, 뉴스 끝까지 서울 뉴스를 보고 싶어했던 내가 시간이 지나니 바뀐 것이다. 지금 당장은 아닐지라도 나중엔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지내고 싶다.
그리고 내가 찾은 정답 중 다른 하나.
나는 큰 톱니바퀴 속 하나의 작은 톱니가 되어 날마다 똑같은 방향으로 돌아야 하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하겠냐만, 나는 그런 삶을 많이 지양한다. 큰 목표를 가지고 있는 공동체에 속해 공동의 목표 달성만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직장이라면 아무리 많은 보수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들어가고 싶지 않다. 비록 적은 보수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직접 나의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직장이길 바라고, 혹 그런 직장이 나를 원하지 않는다면 더 작고 미미할지라도 나만의 공간에서 내가 꿈꾸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드라마 <미생>을 1화부터 마지막 화까지 한 화도 빠뜨리지 않고 두 번을 봤다. 매회 볼 때마다 핸드폰 메모장에 배우들이 전하는 작가의 말을 적어가며 책을 읽듯 드라마를 봤다. <미생>을 볼 때면 나도 깔끔한 정장을 입고 남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다 같이 퇴근해서 동료들과 맥주 한잔하는 삶을 상상하곤 한다. 정말 짜릿하다. 아직 그 세계에 풍덩 빠지지 않은 ‘머리에 피도 마르지 않은’ 사회 초년생의 상상이지만, 한때는 그런 삶을 꿈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성격과는 맞지 않는다. 4년의 세월 동안 내가 지켜봐 온 나라는 존재는 평범하지만 독특하고, 무던한 듯하지만 예민하다. 때로는 작은 것 하나까지도 계획하고 미리 생각해 놔야 직성이 풀리지만, 또 때로는 일하다 말고 당장 다음 날 비행기 표를 끊고 제주도로 가버리기도 하는 즉흥적인 성격이기도 하다. 세계여행을 할 거라며 주변 모든 사람에게 호언하고 다니는 이상주의자처럼 살다가도, 오늘 얼마를 썼는지, 이달 나갈 돈은 얼마인지, 지금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체크리스트를 만들며 하나하나 체크해 가는 지독한 현실주의자 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뭐라 답 내리기에 너무나도 복잡한 존재가 나다.
‘나’라는 사람이 가진 성격을 정확히 설명할 수가 없다.
자기애도 강해서 남에게 숙이고 들어가는 일은 참 어렵다. (세상 모든 일은 이게 기본인데 말이다) 이런 내가 어떻게 보수적인 한국 사회에서 직장에 들어가 행복할 수 있을까.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 게 사람 인생이라지만, 아직 나의 내일엔 정장을 입고 출근하는 모습은 없다. 왁스로 정돈된 머리보다는 부스스한 파마머리를 하고 싶고, 다림질로 빤빤한 정장 바지 보다는 살짝 얼룩도 묻는 낡은 청바지를 입고 싶다.
이 모든 게 지난 4년간 공부한 ‘나의 존재’다.
다른 친구들이 열심히 취업 준비를 위해 노력하고 피땀을 흘렸을 때 나는 ‘나’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그 시간을 살았다. 참 한심하다 할 수 있겠지만, 이 시간이 없었다면 나는 당장 내일의 미래도 꿈꾸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 지금은 내일을 꿈꿀 수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고 무엇을 원하지 않는지 알기에 내 길을 내가 설계할 수 있다. 한국을 떠나 지구 반대편에서 지내며 봐왔던 캐나다 친구들의 모습들, 그들과 이야기하며 느낀 그들의 자유로운 가치관은 내 생각을 말랑말랑하게 만들었고, 꼭 반듯한 큰길로 가지 않아도 내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했다.
서른 즈음에, 한국이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난 지금의 나는 조금 서툴고, 남들에 비해 느리지만 그렇게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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