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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Sep 07. 2022

기후 재난 속에서 기후 위기 시대 극 감상

연극 《혼돈의 시대》

역대급 태풍이라던 힌남노가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 한정해서) 비교적 무사히 지나갔다.

불과 한 달 전에 폭우를 겪었기에 엄청 조마조마하고 신경 써서 대비를 하게 되었다.


당시 집중호우가 기후 변화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었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블로킹 고기압이 계속되어 많은 비를 뿌렸다는 것이다.

블로킹 고기압은 올해 이례적이었던 유럽의 폭염과 최근 파키스탄 홍수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이렇게 기후 재난의 한가운데서 기후 위기 시대를 다룬 극을 보게 되었다.


그에 앞서 지인이 운영하는 공간주의 도시간에서 전시가 있었다.

기부받은 헌 옷으로 전시를 한다기에 옷이 어떻게 해체되고 어떻게 재탄생되었을까 하는 궁금증으로 방문했다.

하지만 헌 옷들이 색깔별로 분류되어 차곡차곡 쌓여있을 뿐이었다.


조금 의아했는데 "전시만을 위해 잠시 만들어지고, 전시가 끝나면 어딘가에 박혀 있다, 결국 버려지게 되는 쓰레기를 만들고 싶진 않았"다는 현채아 작가님의 글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는 (패스트) 패션에 대한 문제의식으로 시작한 전시였다.

그러고 보니 전시의 제목도 《Re-collection》.

"각자의 삶의 방식과 취향이 반영된" 그러나 작금에는 빠르게 변하는 유행을 따라잡기 위해 쉽게 소비되고 버려지는 대상에 불과한 컬렉션을 새로운 시점으로 보고 가치와 철학을 더하는 작업인 것이다.

(작가노트는 현채아 작가의 블로그​ 기획의도는 도시간의 인스타그램 에서 볼 수 있다)

   

현채아 작가는 배우이기도 한데 기부받은 옷을 전시만을 위해 사용하다가 폐기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켜 자신이 쓴 희곡 《혼돈의 시대》 무대와 소품에 활용했다.

헌 옷을 쌓아 산과 나무를 만드는가 하면

붉고 노란 옷을 던져서 폭죽이 터지는 것을 표현하는 식이었다.


극은 계속되는 기후 변화로 지구가 결국 폭발을 하고 난 뒤 살아남은 남자와 돼지를 연기하는 배우들을 그리는 액자 형식이다.

비가 심하게 오는지 리허설을 하는 극장에 비가 새서 빗물을 받는 용기를 바꾸면서 연습을 한다.

위계질서가 확실해서 막내는 선배들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계속해서 더 큰 통을 찾아 교체하는 모습이다.

기후 위기의 시대를 넘어 혼돈의 시대를 연기하면서도 배우들은 음식과 커피를 배달시키고 테이크아웃하면서 쓰레기를 계속해서 만들어낸다.

유일하게 같이 살아남은 돼지와 우정을 쌓으면서도 비 오는 날에는 삼겹살이지, 라고 말하는 데 전혀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극 중 극에서와 같이 지구는 임계점에 다다른다.

빗물 용기를 바꾸는 간격이 점점 짧아지더니 극장이 순식간에 물로 가득 찬 것이다. 바깥도 마찬가지.

결국 물에 잠긴 배우들이 "더 큰 용기를 냈어야 하는데" 후회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 대사는 물을 받는 통을 입에다 대고 해서, 물에 잠긴 목소리가 효과적으로 표현되었다.

하나의 소품을 여러 방법으로 활용하는 게 재밌었고

극 중에서 배우들은 계속해서 더 큰 빗물 용기(容器)를 찾지만 더 중요한 건 변화를 위한 용기(勇氣)라는 걸 말하는 듯했다.


나도 선배들의 말에 무조건 복종하는 막내를 답답해하면서

지금까지의 생활방식에 젖어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는 건 아닌가 경각심이 들었다.


지난달 전시는 프리뷰였고

이번 가을에 현채아x도시간이 더 발전시킨 본격적인 전시와 행사를 개최한다고 한다.

동참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아야겠다.



노린 건 아니지만 전시장에 신고 간 나이키 크레이터 임팩트는 재활용 소재가 일부 들어간 친환경 제품
공연 관람 때 입은 옷은 가수 이랑님 벼룩시장 때 구입, 가방은 비건 가죽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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