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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주연 Aug 01. 2023

가슴 안 물고기

리스펙토르처럼 글쓰기

낚시바늘이 가슴을 찔렀다. 물고기가 된 느낌이었다. 물고기라는 단어는 얼마나 섬뜩한가. 존재 자체가 생명이 아니라 먹이로 여겨지고 붙여진 이름. 그래도 물살이라는 말은 입에 붙지 않는다. 뻐끔뻐끔. "소리가 큽니다." 이어 탕 소리가 났다. 굽은 바늘 끝이 나의 조직을 뜯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총소리가 난다고 총 조직 검사라고 불리기도 한다더니 정말 그만큼의 긴장이 동반된다. 마취를 할 때마다 중간에 마취가 풀리면 어떡하나 걱정을 한다. 이 고통은 당연한 고통인가 (마취를 해도 어쩔 수 없이 느껴지는 불편함 같은), 아니면 참으면 안되는 고통인가 (마취가 먹히지 않았다는 걸 더 늦기 전에 알려야 하지 않을까). 작년 코로나 확진을 받던 날, 목은 어떠냐는 의사에 말에 조금 따끔거릴 뿐이라고 했다. 그녀는 입을 벌리게 하더니 목이 엄청 헐어 있다고, 함께 확진을 받은 남자친구의 배가 되는 약을 처방해주었다. 처음에 아프다고, 병원에 가보자고 한 건 남자친구였는데. 뻐끔뻐끔. 이제 더 이상 참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아프다고 말을 해보았다. 하지만 이번 의사는 다정하게 그러나 기계적으로 "그렇죠? 세 번만 더 견디면 돼요." 라고 했다. 탕, 탕, 탕. 총 네 번의 찌름으로 유방암 조직검사가 끝났다.


그녀는 하루에 얼마나 많은 병든 가슴을 보아야 할까? 아니 다른 사람 걱정할 때가 아니다. 앞으로 나는 얼마나 이와 같은 검사를 겪어야 하는 걸까? 양쪽 가슴에 혹이 얼마나 많던지. 처음으로 초음파로 들여본 유방 안은 캄캄한 물 속 같았다. 해초 사이로 난 동굴 같은 검은 부위 몇 개를 가리키며, 이건 이러이러해서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하지만 6개월마다 추적 검사를 해야 하고, 이건 5~10퍼센트의 확률로 암이 의심되니 조직검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여기까지 설명 중 이해되지 않는 게 있나요?" 뻐끔뻐끔. 한번도 아파보지 못한 사람의 자신감으로 나는 암 여부는 전혀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단지 이런 검사를 매년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 두렵고 짜증스러웠다. 이전까지 나는 공공연하게 130살까지 살고 싶다고 했다. 지금 기대 수명이 80살이니깐 내가 죽을 때가 되면 그 정도는 무리 없이 살 수 있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한 나이다. 아직 배우고 싶은 것도, 읽고 싶은 책도 많으니 오래오래 공부하며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동안 몸은? 앞으로 100년 동안 1년에 두 번씩 200번이나 이걸 반복해야 한다는 걸까. 뻐끔뻐끔.


불과 일주일 전에는 자궁경부암 검사도 받았다. 나는 아이도 낳지 않을 건데, 젖도 물리지 않을 건데 왜 이런 것들을 거추장스럽게 달고 다녀야 하는 걸까. 어머니를 일찍 여읜 여자들을 알고 있다. 그들 앞에서는 내 엄마에 대한 말을 자제한다. 엄마는 나와 가장 가까운 존재다. “이거 엄마가 사준 거야”, “엄마 때문에 짜증나 죽겠어” 무심코 나오던 말이 목에서 턱 걸리고 대화는 끊긴다. 뻐끔뻐끔. 그들과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병든 몸, 나이든 몸, 죽은 몸은 그렇게 나의 세계에서 지워졌다. 그들에게 전화를 할 수는 없어 엄마에게 전화를 한다. 엄마도 조직검사를 몇 번 한 적 있다고 했다. “매년 똑같이 하라고 하던데, 그러고는 귀찮아서 말았어.” 나와 가장 가까운 이는 왜 속옷을 모두 벗고 맨살에 초록색 미지근한 젤을 바르고 여러 사람 앞에서 가슴을 깠던 일을, 낚시바늘에 찔렸던 일을 여태 말하지 않았던 걸까. 암은 다른 게 아니라 세포가 정상 사멸 주기를 무시하고 무한 증식하는 것이라고 했다. 내 안에 통제되지 않은 생명이 자라고 있는 걸까. 마치 낳지 않기로 결심한 아이처럼. 그런데 왜 그것의 이름은 생명이 아니라 병일까. 뻐끔뻐끔. 엄마가 낯설다. 내 몸이 낯설다.



들불에서 주관하고 리외님이 이끄는 클라리시 리스펙토르 (한국 출간) 전작 읽기 북클럽에 참가했다.

감상을 정리하기가 어려운 작가였는데

마지막 주 "리스펙토르처럼 글쓰기" 시간이 있어서

그나마 내가 느낀 리스펙토르를 남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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