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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준 Apr 19. 2024

철학적 글쓰기, 나의 생각을 다진다

[광주 지혜학교, 철학교육 이야기 9] 인문반 철학수업 톺아보기⑶

이제 ‘철학강독’(읽기), ‘철학연습’(생각하기)에 이어 ‘철학적 글쓰기’ 수업이다. 철학연습이 자신의 생각을 쫙 펼치는 과정이라면, 이번 수업은 펼쳤던 생각들을 꾹꾹 담아서 다지는 활동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수업시간에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미리 써낸 자신의 글을 공개적으로 ‘합평’하는 시간이다. 학생들은 철학연습 수업이 끝난 뒤에 철학적 글쓰기 수업 전날 밤 11시까지 각자 자유 주제로 쓴 글을 제출해야 한다.


1.

글을 쓰는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다. 바로 ‘개요 짜기’다. 개요를 짤 때에는 세 가지 요소를 반드시 챙겨야 한다. ⑴ ‘화제’ ⑵ ‘주제’ ⑶ ‘핵심 생각’이다.


먼저, ‘화제’(話題)는 ‘이야깃거리’이다. “무엇에 대해 쓸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화제이며, 이는 글의 출발점으로서 역할을 한다. 글을 쓸 때, 글의 첫 문단에 화제를 배치하면 되는 것이다. 독자들은 첫 문단을 읽은 뒤에 이 글이 무엇을 다루는 글인지 짐작을 할 수 있게 된다.


그다음으로, ‘주제’(主題)는 핵심 주장에 해당한다. “위의 화제를 통해 최종적으로,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주제이다. 글의 도착점 역할을 한다. 글의 가장 마지막 문단에 배치할 수 있다. 독자들은 마지막 문단까지 읽고 난 뒤에 글쓴이가 궁극적으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알 수 있게 된다.


화제와 주제의 구분은 그리 특별한 설명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소통은 대개 이런 구조를 띠고 있다. 언어학자 소쉬르가 제시한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의 구분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말의 ‘겉표현’과 그 말에 담겨 있는 ‘속뜻’이 구분되어 있다는 사실을 주위에서 쉽게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글 또한 마찬가지다. 겉으로는 ‘지혜학교의 철학교육’에 대한 내용을 구구절절 설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독자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 싶은 생각이 따로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 땅에서의 청소년 철학교육에 대해 함께 고민하자’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핵심 생각’이다. 핵심 생각이란 화제(출발점)에서 주제(도착점)로 이어지는, 글의 내용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생각이다. 개요 짜기의 요소를 설명하기 위해, 나는 강을 건너는 일에 비유하기도 하고, 우리가 널리 알고 있는 ‘흥부전’을 예로 들어서 화제와 주제, 핵심 생각을 유비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 화제: ‘흥부-놀부의 형제 이야기’
⦁ 주요 사건(핵심 생각): ‘까치가 박 씨를 물어다 주는 사건과 이를 통한 흥부와 놀부의 각기 다른 태도’
⦁ 주제: ‘평소에 선한 마음으로 살면 복이 온다’


학생들의 글에 대해 수정·보완할 부분을 설명하면서 매번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 글의 화제와 주제가 무엇입니까? 다시 한번 말로 설명해 주세요.”이에 척척 답변을 하면 이 학생은 개요를 제대로 짠 뒤에 글을 쓴 것이다. 반면 우물쭈물하거나 버벅거리면 개요 따위는 저기 안드로메다로 보내고 손가락이 키보드 자판 위를 뛰어다니는 대로 글을 쓴 것이다. 뒤의 학생들에게는 굳은 표정으로 ‘같은 설명을 반복하게 하지 말라’는 말을 곁들이면서 개요를 꼼꼼하게 짠 뒤에 써야 글이 흔들리지 않는다고 힘주어 말한다.


‘화제’와 ‘주제’를 어느 정도 고민해 온 학생들의 글에 대해서는 이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바로 ‘핵심 생각’에 대한 설명이다.



2.

이 수업이 ‘철학적’ 글쓰기를 다루는 한에서 특히 힘주어 요구하는 점은 바로 ‘핵심 생각’을 설정하는 일이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자면, 중요한 건 ‘핵심 생각’이다. 어차피 드넓은 하늘 아래 새로운 화제나 주제는 없다. 대부분의 ‘인간의 문제’들은 3,000년 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씨름했던 고민거리이며,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제출한 답변들이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생각의 새로움이란 바로 ‘핵심 생각’에 달려 있다. 어떤 글의 ‘특성’, ‘질감’, ‘결’ 등을 규정하는 본질적인 요소는 바로 ‘핵심 생각을 어떻게 설정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철학적 글의 경우에는 ‘철학적 쟁점’을 핵심 생각으로 다루어야 한다.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깊이 내려가서 고민해야 하는 문제, 인간으로서 피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근본적 문제, 생각을 끝까지 밀고 나간 뒤에 막다른 곳에서 던지는 질문들. 학생들이 각자 자유롭게 선택한 화제와 주제를 다루면서 어떤 ‘철학적 아포리아’(aporia)를 핵심 생각으로 설정한 뒤에 그 문제와 어떻게든 씨름한다면, 본격적인 철학적 사유 활동을 시작했다고 볼 수 있겠다.


예를 들어 다음의 장면을 보자. 바로 지난 수요일, 24년 4월 17일에 있었던 6학년 수업에서 한 학생은 “애인은 소유물일 수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지고 그에 대해 글을 썼다. 다음의 문장을 보자.


“… 나는 그 사람에 대해서 완전히 다 알지 못하고 애인이 되었다고 해서도 정확히 다 알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애인이 되었다는 것만으로는 애인이 소유물이라고 생각할 순 없다.… ”


글을 읽고 나서 한 무리의 학생들 사이에서 질문이 나왔다. ‘굳이 소유물을 다 알아야 하는가?’, ‘소유에서 중요한 것은 아는 것이 아니라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통제력이 아닌가?’


이에 다른 학생들의 반론도 나왔다. ‘대상을 제대로 모르고서 제대로 소유했다고 할 수 있을까?’ ‘대상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기본이고, 더 나아가 대상에 대해 잘 알아야 제대로 소유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에 건너편에서 또다시 이런 물음이 나왔다. ‘그런데 우리가 인간의 능력으로 대상을 완전히 알 수 있는가? 우리는 언제나 대상을 일부분만 아는 것 아닌가?’


한참 이야기가 오간 뒤에 나는 이 물음들이 ‘소유와 인식의 관계’ 문제라는, 일종의 ‘철학적 문제’를 반영하고 있는 점을 환기시켰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을 포함하고 있다.


Q.‘무언가를 소유한다고 하는 것이 성립되려면, 소유하고 있는 대상에 관하여 무엇을 알아야 하는가?’

Q. ‘소유물에 속해 있는, 소유자가 알아야 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Q. ‘여기서 안다는 말은 어떤 의미인가? 즉 이론적으로 아는 것인가, 아니면 실제로 할 줄 아는 것인가?’

Q. ‘물질적인 대상을 소유하는 것과 정신적인 관념을 소유하는 것은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가?’

Q. ‘애인을 소유한다는 것은 물질과 정신 중 어디에 더 가깝다고 볼 수 있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


이러한 물음들은, 프롬이 자신의 텍스트에서는 다루지 않았던, 수업 시간에 학생들이 이끌어 낸 철학적 문제들이다. 이제 나는 처음에 글을 쓴 학생에게 다음과 같이 수정 제안을 한다. 


“이처럼 소유와 인식의 관계 문제에는 여러 가지 하위 질문들이 펼쳐집니다. 짧은 글 한편에 모든 질문들을 다룰 수도 없고 다룰 필요도 없습니다. 펼쳐낸 철학적 질문들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서 그것을 ‘핵심 생각’으로 설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화제와 주제를 다시 고민해서 자신의 생각을 조리 있게 펼치면 됩니다. 다음 수업 시간 전까지 이러한 조언을 바탕으로 글을 수정해서 제출하세요.”



3.

마치 광산에서 캐낸 바위 덩어리에서 빛나는 보석을 골라 내듯이, 글 속에 흩어져 있는 생각의 조각들에서 ‘핵심 생각’이 될 만한 철학적 쟁점을 다듬어 내어 보이는 것, 이것이 내가 수업 시간에 공들여 하는 일이다. 학생들은 공개적으로 자신의 글에서 이런저런 부족한 점을 지적받는 동시에, 자신의 생각들이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그 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고치면 되는지 설명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이 과정에서 학생이 배우는 것은 여러가지일 텐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글에 대한 태도’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다듬어서 한 편의 글을 쓴다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몸소 겪는다. 글쓰기가 어렵다는 것을 배움으로써 다른 이가 쓴 글을 진지하게 읽어야 하겠다는 태도를 갖추게 된다.


그다음으로 학생이 배우는 것은 바로 핵심 생각, 철학적 쟁점을 설정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직, 간접적인 경험, 즉 ‘자기 자신’ 안에 쌓여 있는 ‘텍스트’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야 한다는 점이다.


비유하자면, 핵심 생각을 고민할 때 필요한 것은 ‘독수리의 눈’이 아니라 ‘두더지의 코’이다. 하늘 높은 곳에서 유유히 날개를 펼치며 땅을 내려다보면 모든 게 또렷해 보인다. 모든 장면이 한눈에 다 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시선으로 글을 쓰면 이상하게도 하나마나 한 당연한 말, 교훈적인 메시지, 입바른 생각이 담겨 있다. 독수리의 눈을 가지고 내려다보고 쓴 글은 대개 ‘답을 제시’하려는 글이 된다. 독자들이 이런 글을 읽고 나면, ‘네 그럼요, 당연한 말이죠’라는 반응을 얻지만 거기까지이다.


반면에 두더지는 하늘이 아니라, 땅, 그것도 땅 속에서 헤매다시피 흙을 파헤치며 다닌다. 눈은 뜰 수도 없어서 코를 킁킁 대며 앞으로 나가야 한다. 가다가 나무뿌리나 큰 바위를 만나면 돌아가야 한다. 우왕좌왕 시행착오의 연속이라 할 수 있겠다. 가다가 막다른 곳을 만나면 돌아가야 하기도 한다. 모든 게 흐릿하고 애매모호하다. 두더지의 코를 가지고 땅 속을 헤집으며 쓴 들은 ‘질문을 던지는 글’이다. 철저하게 파헤치고 난 뒤에 막다른 골목(aporia)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독자들이 이런 글을 읽고 나면 ‘그러게 이게 문제네! 그럼 이제부터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라는 질문을 스스로 던진다. 독자도 글을 읽다가 글 속에 뛰어들어 함께 문제를 다루게 된다. 비로소 더불어 생각하는 것이다.


'독수리의 눈'과 '두더지의 코'의 대비는 이런 예시로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책의 문장을 보면서, ‘아 그렇지!’ 하고 생각한 한 학생은 자신의 글에서 이런 생각을 펼친다.


“다른 이들을 잘 사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잘 사랑해야 한다. 나 혼자 있어도 외롭지 않을 때, 그때 다른 사람도 잘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영 틀린 말은 아니지만, 내가 수업 시간에 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이는 독수리의 눈으로, 즉 사태에서 멀리 떨어져서 팔짱 끼고 하는 생각에 가깝다.


반면에, 자기를 사랑한다는 말이 당연한 듯하지만, 자신의 경험으로 가져와서 곰곰이 생각하면 당연함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연이어 나온다.


“나는 언제 나 자신을 사랑했더라? 그때 나는 나 자신에게 무엇을 어떻게 했었지? 나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을, 어떻게 한다는 말일까? 나를 사랑하는 일은 그저 순간의 자기 위로, 또는 자기 자신만을 위하는 이기적인 마음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 나를 사랑하기 위해서는 사랑하는 대상으로서 나를 잘 알아야 할까? ‘나 자신’을 안다고 할 때, 나의 무엇을 알아야 하지? 그것은 또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등


글에서 ‘함께 생각하기’를 권하려면, 생각할 거리, 즉 ‘핵심 생각’을 잘 설정해야 한다. 이처럼 ‘철학적 글쓰기’ 수업에서 힘주어 배우는 것은 바로 ‘핵심 생각에 대해 생각하는 일’이다.




4.

이렇게 지혜학교 6학년 인문반 학생들은 한 주 사이에, 3일 동안 세 번의 수업을 통해 철학자의 글을 읽고, 그 글에 대해 생각을 펼친 뒤에, 그렇게 펼친 생각을 다시 한 편의 글로 매듭짓는 활동을 진행한다. 매주 읽고, 생각하며, 글을 쓴다. 이러한 활동을 4월 초부터 11월 중순까지 진행한다. 학기 말에는 기말과제를 제출하는데, 그동안 썼던 글 가운데 한편을 골라서 논문의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지혜학교에서는 이런 활동을 9년 간 되풀이 했다. 교실 안팎의 수많은 변화 속에서도 이러한 철학수업의 구성과 방식은 흔들림 없이 제 자리를 지켜왔다.


여기까지가 지혜학교의 인문반 철학수업에 관한 대략적인 설명이었다. 글을 마무리 할 즈음 나는 누군가가 이렇게 묻는다고 상상해 본다.


“당신이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화제’와 ‘주제’, ‘핵심 생각’을 되돌려 주겠다. 한마디로 간단히설명해 달라. 당신이 구상한 이 철학 수업은 무엇을 하는 수업인가?(화제) , 그것은 어떤 핵심적인 토대 위에 이루어지는가?(핵심 생각) 이러한 수업을 통해 최종적으로 무엇을 이루고 싶은 것인가?(주제)”


이에 대한 나의 답변은 다음과 같다.


“지혜학교의 인문반 수업에서 철학 텍스트, 그것도 철학자의 1차 문헌을 직접 읽고, 그에 대해 자기 질문을 던지면서 생각한 뒤에, 자신의 생각을 철학적 문제와 연관지은 글을 쓰는 활동을 하는 수업입니다.


이 수업을 떠받치고 있는 핵심적인 토대는 눈앞에 있는 ‘철학자의 텍스트’(철학적 문제)와 자기 안에 쌓여 있는 ‘내면의 텍스트’(자기 문제)를 상호연관 지어 해석하는 활동입니다. 철학자의 텍스트를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자기 안의 텍스트를 활용하기도 하고, 반대로 자기 안에 축적되어 있는 경험을 새롭게 해석해 내기 위해 철학자의 텍스트를 활용하기도 하겠지요.


이런 활동을 통해 각각의 학생들은 자신만의 ‘의미의 세계’(세계관, 인간관, 가치관)을 지어 올리게 될 것입니다. 제 생각에 인간의 주체성은 자신의 세계를 형성하는 일을 통해 자라나므로, 이 수업은 ‘지혜학교의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인간으로 자라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 믿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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