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과 관객의 호흡에 대해
누구에게나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 내게는 키르히너의 작품이 그러하다. 처음 그의 작품을 보았을 때가 떠오른다. 나는 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가는 모마(Museum of Modern Art)에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었다. 뉴욕 미술관들을 무료로 갈 수 있는 아트스쿨 학생 신분 덕이었다. 고흐, 샤갈, 고갱 등 내가 좋아하는 인상파 작가들의 작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키르히너를 보았다.
키르히너는 내가 따라 그리고 싶었던 최초의 화가였다. 키르히너의 작품을 보았을 때, 진부하다고 생각했던 문장이 내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내가 뉴욕에 왔나 보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그냥 좋았다. 때로 사람이든 사물이든 우리는 이유 없이 대상이 좋아지는 경험을 한다. 내게는 <거리, 드레스덴>이 그러했다. 무어라 설명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닮고 싶었다.
나는 무엇을 닮고 싶었을까? 그의 그림을? 그의 붓질을? 그의 색감과 구도, 구성, 예술의 대상을?
나는 이 그림이 왜 좋았던 걸까. 그림을 보는 순간, 그림이 나를 집어삼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사람들이 내 앞뒤로 지나쳐 갔다. 모마에 걸린 다른 수많은 작품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 하루는 온전히 이 그림에 집중했다.
하루에 한 작품에 집중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항상 모마에 가면 다양한 작품들을 차례로 감상하고는 했다. 여러 작품들을 눈과 마음에 담으며 볼 때면 영감을 받았다. 뛰어난 구성과 색채, 기법을 보는 것은 재미있었으니까. 그랬던 내가,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작품을 찾은 건 행운이었다.
키르히너는 왜 거리를 분홍색으로 칠했을까? 아트스쿨 학생이던 당시의 나는 내 그림의 형식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실제적으로 그린 작품이 잘 그린 것인지, 나만의 스타일로 완성한 작품이 더 좋은지를 생각했다. 나는 색감을 사실적으로 그려내기보다 내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했는데, 키르히너의 작품은 그런 고민을 하던 내게 용기를 주었다. 당시 내 질문에 대한 답을 그의 작품에서 찾은 것 같아, 위로받은 기분이 들었다.
<거리, 드레스덴>을 보면 어딘가 불안해 보인다. 인물들의 얼굴도 평범하지 않은 색으로 칠해졌다. 단순히 색깔 때문에 이 작품이 불편해 보이는 걸까? 안 어울리는 색들은 서로 충돌하고, 인물들의 표정은 밝지 않다. 키르히너는 이렇게 불안한 <감정>을 표현했다. 작품을 보면 우리는 불편함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인물들의 표정은 왜 어두 워보이는 걸까? 서로 다른 곳을 향한 인물들의 시선은 만나지 않는다. 우리는 키르히너가 선택한 색감과 구도, 인물의 형태로 구성된 감정을 우리 내면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나는 이것이 작품과 관객의 호흡이라고 생각한다.
시간과 공간을 넘어선 작품과 관객의 호흡이 예술의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거리, 드레스덴>을 보았을 때 느낀 불안함과 낯섬은 내 삶을 흐르던 감정과 맞닿아 있었다. 당시 나는 뉴욕이라는 낯선 땅에 정착한 이방인이었고, 외로움과 불안함을 종종 느끼곤 했다. 혼자 살았기에 밥을 혼자 먹고, 뭐든지 혼자 해결하는 것이 익숙했던 나에게, 이 그림에서 표현되는 불안함은 내게 오히려 정답게 다가왔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 마치 자신도 불안하지만 이렇게 아름답게 빛날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이상하게 고마웠다. 나는 이 작품과 같은 호흡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 후로 나는 이 작품만을 보기 위해 모마에 가곤 했다. 내가 미술관에서 최초로 스케치한 작품이기도 했다. 내가 쭈그리고 앉아 이 작품을 스케치하면, 몇몇의 관객들은 내게 다가와 스케치와 작품을 번갈아보았다. 내게 말도 걸고, 웃으며 칭찬도 해주었다. 내가 스케치한 모습이 다른 관객들과 소통하는 또 다른 연결고리가 되어준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예술은 다른 창작의 모습으로 발현되고, 상호교류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만든다. 나는 이 작품에 영감을 받아 더 이상 남들과 다른 나만의 고유한 색채를 의심하지 않고 그림을 창작할 수 있었다. 색채를 중요시하던 내게, 키르히너의 작품들은 다양한 실험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때때로 나는 궁금했다. 이 색채를 음악이나 글로 표현해내면 어떤 예술작품이 나올지. 서로 교류하는 예술이 어디까지 나아갈 수 있을지를.
우리는 살면서 질문을 던지는 예술을 만난다. 그 예술은 회화작품이 될 수도 있고, 영화나 음악, 설치미술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누군가 건네는 행동 하나가 물결처럼 밀려와 하나의 예술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예술을 만나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된다. 왜 이 예술이 좋은지. 이 예술을 통해 우리의 무엇이 변하였는지를.
내게 키르히너의 작품은 많은 궁금증을 남겼다. 그 궁금증 중 몇은 찾아냈지만, 아직 해답을 찾아야 하는 질문들이 남아있다. 어떠한 방향으로든 내게 변화를 주었다는 점에서, 나는 <거리, 베를린>을 사랑하게 되었다. 앞으로 이런 작품을 또 만나게 되기를 기대하면서, 키르히너의 작품에게 받은 영감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해낸다. 내가 창조한 예술이 또다른 예술에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