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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식 Aug 21. 2019

[3] 라인자본주의는 미국식 자본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A-3] 라인 자본주의는 미국(한국)의 자본주의와 무엇이 다를까?


독일의 경제체제를 라인 자본주의(Rhein Kapitalismus) 또는 라인 모델(Rhein Modell)이라고도 부른다.


영미 자본주의에 비교해서 사용되는 표현인데, 사회적 시장경제, 노사공동결정제도와 교섭자유주의 및 노동조합모델로 대표되는 독일 특유의 노사관계, 이미 1883년 비스마르크에 의해 도입된 의료보험제도를 필두로 한 독일의 탄탄한 사회보험제도, 그리고 과거 초인플레이션의 경험으로부터 확립된 중앙은행(Bundesbank)의 확고한 위상 정립 등 독일의 경제체제를 특징짓는 여러 요소들을 두루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히는 미셸 알베르는 선진국의 자본주의를 영미형 자본주의와 라인형 자본주의로 구분했다. 그에 따르면 독일을 필두로 라인강 연안, 스위스, 네덜란드, 스칸디나비아, 그리고 문화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도 라인형 자본주의로 분류된다.

미셸 알베르

영미형 자본주의는 단기수익, 주주이익, 개인의 성공이 다른 무엇보다 우선시되는 체제이고, 라인형 자본주의에서는 주주만이 아니라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중시하며, 기업을 장기적인 목표를 가지고 자본과 노동을 결합시키는 사회 공동체라는 시각으로 바라본다.


알베르는 라인형 자본주의의 사회적 우월성을 3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1) 사회의 안정성, (2) 사회적 불평등 시정, (3) 신분변동성 또는 사회적 이동성(social mobility)


알베르는 3 가지 중에서 앞의 2 가지 점에 있어서는 라인형 자본주의가 영미형 자본주의보다 분명히 우위에 있다고 주장하는데, 흔히 말하듯 라인형 자본주의의 사회적 우위는 경제적인 측면에서의 경쟁력의 희생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회가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들어가고, 공공비용으로서 그것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되는데, 그러나 그것이 경제를 희생시키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류라고 지적한다. 오히려 그와는 반대로 경쟁력과 연대의식은 양립해 나간다고 말한다.


‘우리사회’가 얼마나 미국 사회와 닮아 있는지, 그리고 그 사회가 얼마나 현재를 위한 이익에 몰두하고 있는지, 20세기 프랑스 최고 지성의 눈을 통해 들여다 보자(Michel Albert, 자본주의 대 자본주의, 소학사, 1993).


“개인의 성공을 무조건 정당화하고 승자를 신격화해 가면서 개인주의는 더욱 발전해 간다. 단기를 우선시하는 세태, ‘내가 죽은 뒤에는 난 몰라’, 주저하지 않고 남의 돈을 빌리고 보는 경향, 이것은 모두 이 시대의 쾌락주의에 딱 들어맞는다. 도덕이나 철학을 백안시하고, 모두 다 미래보다는 현재를 지향하고 있는 이 시대에 저축의 필요성이나 장기적 이익의 중요성을 가르치기는 어렵다. 그리고 남는 것은 정글의 법칙일 것이다. 다른 법칙이나 모든 형태의 공적 규제는 모조리 불신감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이익의 최종 목표는 이익이다!”


무엇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 따위는 안중에 없고, 원하는 것은 기어코 얻어 내야만 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어떤 수단을 선택하든 상관없다. 허구로 가득 찬 사회진화론에 기댄 경제적 약육강식의 논리가 부끄러운 줄 모르고 공론의 장에서 펼쳐진다. 성공이 모든 것을 정당화한다. 우리 사회의 모습과 거의 판박이가 아닌가?


라인 자본주의의 가치관이나 사고방식에 대해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 사회가 워낙 미국 일변도로 발전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보니 우리나라에서는 여전히 독일식 사회민주주의(Sozialdemokratie)를 말하고, 사회적 시장경제를 언급하면 곧바로 상대방의 ‘왼쪽’ 눈이 의심과 의혹으로 가늘어진다. “이 놈 봐라, 이거 빨갱이 아냐?”

학생들이 많이 보는 토익 책. 표지 색깔에 따라 빨갱이(듣기), 파랭이(읽기)라고 부른다.

독일식 자본주의에서는, 기업들이 종업원들을 이름도 없는 부속품(생산요소)이 아니라 장기적인 회사의 파트너로 대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독일의 기업들은 청년들을 직업훈련생으로 채용해서(정식 계약을 맺고 정규직 급여의 20~30% 정도에 해당하는 훈련생수당을 준다) 실무교육을 직접 시키는 소위 ‘직업교육의 이원제도’에 참여하는 것을 당연한 의무로 생각한다. 종업원들의 육아휴직에 대응하는 회사의 태도에서도 이런 것을 느낄 수 있는데, 독일 전체의 미래에 대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듯하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면, 독일이 자랑하는 이 직업교육제도의 이원모델(Duales Berufsausbildungsystem)에 대해서는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 교수 뿐만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도 호평한 바 있고("독일의 들은 학교를 졸업하는 것과 동시에 일자리를 가질 준비가 다 갖춰진다": 2013년 의회 연설에서), 딸 이방카와 함께 메르켈 총리로부터 직접 과외(^^)까지 받은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제도에 감명(!) 받아 미국의 직업교육 시스템의 개혁을 위해 매년 2억 달러를 투자하겠다고 천명했다(슈피겔 온라인, 2017.6.16.). 독일의 이원모델에 대해서만은 트럼프가 예외적으로 오바마와 같은 의견이었다고 는 이죽거렸다.

트럼프 대통령과 메르켈 총리

독일이 세계에 자랑하는 이 시스템은 당연히 한국에도 영향을 미쳐서 '한국형 도제식 직업학교', '산학일체형 도제학교'를 표방하는 특성화고 그리고 '마이스터고' 등이 생겨났다.  


그런데 독일의 이원모델이 한국에 수입되면서 원래의 제도에는 없는 '실습'이라는 변종이 묻어와(이론은 직업학교에서 배우고, 실습은 기업 현장에서!), 우리 특성화고 현장 실습생들을 열정페이라는 고열에 시달리게 하더니 급기야는 사망사고라는 참사로까지 이어지고 말았다.   

열정페이...

독일 직업교육의 이원모델은 기업이 중심에 있는 모델이다. 직업교육을 원하는 학생은 우선 기업과 직업훈련생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직업학교(Berufsschule)에 입학한다. 관련된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왜 이런 모델을 한국에 도입하면서 '실습'이라는 발상을 는지 궁금하다. 우리나라 현실에 맞게 만들다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한다. 하지만, 독일 직업교육의 이원모델을 설명하면서 한결같이 '이론은 직업학교에서, 실습은 기업 현장에서'라는 잘못된 구호를 내세우고 있는데, 이건 어떻게 설명하려는가?  

독일 교육제도의 기본구조. 복잡하다!

하긴 독일의 제도들은 일단 겉으로 드러난 것만 봐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가 잘 안다고 하는 공동결정제도에 대해 소개한 글에도 오류가 많이 보였었다. 서울시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다고 할 때에도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을 대변하는 이들이 내 놓은 글(신문, 잡지)들이 여기저기 올라 왔었는데, 나중에 수정한 것도 있었지만, Mischmasch(mishmash)가 제법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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