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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성식 Aug 26. 2021

독일의 노사 간 협약 구도 (2)

밖에선 단체협약, 안에선 사업장협약 - 계속

좀 더 부연 설명해 보자.


사업장기본법 제77조 제4항에 따라,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 사이에 사업장협약 (Betriebsvereinbarung)이 체결되면, 그 사업장협약은 직접적이고 강행적인 효력을 가진다.


직접적 효력에 따라, 어떠한 중간적인 매개물 없이 직접적으로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며, 굳이 이를 재차 개별적인 근로계약에 명시할 필요가 없다. 또한 강행적 효력에 따라, 사용자는 사업장협약에 구속되며, 이 협약에 반하는 개별 근로계약의 조항은 무효가 된다(근로자에게 사업장협약의 조건보다 더 불리한 조건의 규정을 만들어 적용해서는 안된다). 즉, 사업장협약은 사실상 법률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


따라서, 사용자는 협약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부과되는 등 추가적인 부담을 진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권리의무 관계에 있어서 투명성이 보장된다는 장점을 향유하게 된다. 다만, 사업장협약을 통해 사용자는 모든 근로자에게 적용되는 구속력 있는 규정을, 일률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장점이 있기는 하다. 또한, 사업장기본법 제77조 5항에 따라, 3개월의 기간을 두고 사업장협약을 해지할 수 있다. 따라서 개별근로계약에서 규율하는 것보다 해지 또는 변경이 수월하다는 이점도 있다.


사업장기본법 제87조 제1항에 열거된 사안은, 사업장평의회에게 가장 강력한 “공동결정권“이 부여된 사안이다. 이 사안에 관해 사용자는 사업장평의회의 동의 없이는 어떠한 결정도 할 수 없다. 따라서 사용자는 사업장평의회가 제87조 제1항에 열거된 사안에 관해 사업장협약의 체결을 요구하면 응해야 한다.


그 외에도 사업장기본법 제88조에, 임의적으로 사업장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사안을 열거해 두고 있다. 업무상 재해 및 질병을 예방하기 위한 조치들, 사업장내 환경보호를 위한 조치들, 근로자 재산형성을 위한 조치(재형저축 등)들이 이에 해당한다.


사용자는 사업장협약을 이행해야 하는 의무를 부담하고, 근로자가 이를 준수하는지 여부를 살펴야 하는 의무 또한 부담한다. 때로 사업장평의회는 사업장협약(예를 들어 작업장 안전에 관한 협약)을 준수하지 않는 사용자에 대하여 제소하기도 한다. 이때 사업장평의회는 변호사의 조력을 받게 되는데, 이 비용을 사용자가 부담해야 한다


사업장협약은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 간에 체결된다. 이를 위해 종업원총회(Betriebsversammlung)의 결의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업장평의회의 결의(Betriebsratsbeschluß)로 충분하며, 이 결의를 바탕으로 사업장평의회 의장이 대표성을 가지고 사용자와 협약을 체결하게 된다. 따라서 사용자와 사업장협약을 체결한 후에 다시 사업장평의회의 결의를 거쳐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우리 노동법에서 노조 대표가 대표성을 가지고 단체협약을 체결하는 것과 같은 모습이다.


밖에선 단체협약, 안에선 사업장협약


다음의 그림을 보면, 사업장협약의 위치(적용 순서)를 알 수 있다. 근로계약서보다는 상위에 위치해 있고, 단체협약 보다는 하위에 있다.



따라서 사업장협약은 헌법-법률-단체협약에서 정한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지만, 회사 내에서는 사용자의 지시권과 근로계약의 규율 범위를 넘어서게 된다. 사용자의 지시권에 우선한다는 것은, 사업장협약 자체가 이미 사용자와 협의하여 체결하면서, 이를 준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단체협약에서는 주로 임금 및 그 밖의 근로조건에 관해 규율하게 되는데, 물질적인 근로조건, 즉 임금의 크기, 휴가일수, 주당 근로시간은 단체협약에서 정한다. 이것은 단체협약의 대상이 될 뿐이고, 사업장협약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단협우위의 원칙).


다만, 사업장협약에서는 이미 정해진 임금을 어떻게 지급하느냐에 관한 임금지급의 방법 및 형태라든지, 정해진 유급연차휴가를 어떻게 신청하고 관리하는지, 정해진 일일 근로시간을 언제 시작하고 언제 종료하는지, 휴게시간을 어떻게 구성하는지 등등에 관한 각 회사의 규정 등에 관해 정하게 된다.


유리의 원칙 또는 유리한 조건 우선적용의 원칙이 있다. 우리 노동법과 달리 독일에서는 이 원칙이 법률로 규정되어 있다. 즉 단체협약법 제4조 제3항에서, “단체협약에서 이와 달리 정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또는 근로자에게 유리한 내용을 규정하고 있는 경우에만 단체협약상의 규정과 달리 정하는 것이 허용된다.”


이 원칙에 따라, 비록 근로계약서가 사업장협약보다 적용상 하위에 위치해 있더라도, 근로계약서의 근로조건이 사업장협약의 조건보다 근로자에게 유리하다면 근로계약서의 조건이 우선해서 적용된다. 사업장협약과 단체협약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취업규칙과의 비교


우리의 취업규칙은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작성하는 것이다. 물론 작성 이후에는 근로자에게 불리한 내용으로 개정할 경우에 반드시 근로자 대표와 협의하여 동의를 구한 후에 개정할 수 있다.


이에 반해 사업장협약은 아예 처음부터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가 협의하여 체결한다.


사업장협약 체결 후의 사용자의 권리 및 의무


 사업장협약이 체결되고 나면, 사용자는 이를 사내에 게시하거나, 개별 근로자에게 배포하거나, 또는 사내 인트라넷에 게시하여 근로자들이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법 제77조 제2항 3문).


체결된 사업장협약을 실행하는 주체는 사용자이다. 사업장평의회가 사용자의 실행 권한에 대해 침해하는 행위를 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법 제77조 제1항). 다만, 사업장평의회는 사용자가 사업장협약의 내용을 실행하지 않을 경우 이행을 촉구하는 이행요구권과 사업장협약의 내용과 다르게 실행되는 경우 이를 중지하라고 요구할 수 있는 중지요구권을 가진다.


따라서 사용자는 체결된 사업장협약이 제대로 이행되고 있는지 감독하고 관리해야 할 의무를 담하게 된다.


팔다리 없이 머리로만 움직인다고?


반복해서 썼듯이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감독이사회와 사업장평의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제도이다. 위 4가지 통로 중에서 법적인 제도가 아닌 노조의 사내활동가를 일단 제외해 보자. 그리고 노동보호위원회에는 사용자와 사업장평의회 임원(2명) 등이 참여하는데, 사업장기본법에서 안전과 보건에 관해서도 사업장평의회에 강력한 경영참여권을 부여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종업원의 이해를 대변하는 실질적인 두 기구는 감독이사회와 사업장평의회가 된다.


이처럼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감독이사회에 의한 종업원대표의 경영참가와 사업장평의회에 부여된 경영참여권이 '한 세트'가 되어 운용되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는 기업의 최고 상층부에서, 다른 하나는 현장인 사업장에서 작동한다. 뭔가 손발이 착착 맞는 것 같지 않은가.


그러니 공동결정제도를 벤치마킹하겠다면 최소한 이 두가지 기구를 모두 테이블에 올려 놓고 분석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독일은 산업별로 노조가 조직되어 있는 반면에, 우리는 기업별로 조직되어 있다. 그리고 독일 기업에는 사업장평의회가 설치되어 있고, 우리나라의 기업 내에는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노사협의회가 설치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노사협의회에는 독일의 사업장평의회에 부여된 것과 같은 강력한 경영참여권이 없다.

 

이렇게 다른데, 달랑 머리 위에 ‘노동이사제(현재 도입되고 있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를 말한다)’만 도입하면 몸통이 제대로 움직일까? 팔다리가 되어 줄 기구가 반드시 필요하다. 단순한 협의체가 아닌,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종업원협의체가 사업장 단위에서 설치되어 기능해야 할 것이다. 활발한 논의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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