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손이 야무지지 못하여 일상생활에서 자잘한 어려움을 겪곤 했다. 예를 들어 쭈쭈바 아이스크림 꼭지를 못 딴다든지, 쿠크다스 과자 껍질을 제대로 못 까서 다 부스러뜨리든지 하는. 내가 낑낑대고 있으면 손이 야무진 누군가 ㅡ 친구 또는 곁에 있는 어른이 ㅡ 도움을 주었고, 나는 그럴 때마다 왜 나는 이런 것 하나 스스로 못하나 조금 의기소침해졌다.
특히나 천하장사 소시지를 먹을 땐 늘 그랬다. 돌출된 빨간 테이프 부분을 잡아당기고서 주욱 밑으로 내리면 소시지가 까진다는 것을 이론적으로는 알고 있는데 실전으론 도대체 되질 않았던 것이다. 빨간색 테이프를 잡아 뜯었으나 밑으로 주욱 이어지지 못하여 소시지 머리가 나올 수 없는 작은 구멍만 생겼을 뿐이었다. 가위나 칼과 같은 도구가 없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그 작은 구멍으로 소시지를 짓누르듯이 짜 먹을 때면 기분이 이루 말할 수 없이 불쾌했다. 나는 온전한 모양의 소시지를 깔끔하게 먹고 싶은데 이게 이토록 어려운 일이란 말인가!
김소영 작가의 <어떤 어른>을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온다. (인류애 충전이 필요할 때는 김소영 작가 책이 도움이 많이 된다)
어린이들은 조심성이 없다는 오해를 많이 받는다. 조심성이 없다기보다는 서툴러서 실수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중략)
현성이는 총 열다섯 권짜리 만화책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지금 제7권까지 나왔는데 한 권이 완성될 때마다 나에게도 가져와 보여준다. (중략)
" 선생님은 지금까지 본 것 중에 몇 권이 제일 재미있어요?"
" 이번에 나온 게 제일 재미있네!"
현성이는 싱글벙글 웃으며 이렇게 대꾸했다. "왜냐하면 제가 실력이 점점 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까 다음에 나올 거는 더 재미있을 거예요!"
'앞으로 점점 더 자라게 된다'는 확신은 어린이가 자신을 성장시키는 큰 동력이다. 그럼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현재의 자기 모습이다. 재작년보다 작년, 작년보다 지금 더 그림을 잘 그리고 축구를 잘하고 아는 게 많다. 앞으로도 지금보다 더 잘하게 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열심히 공을 차고 공부도 한다. 그러고 보면 서툴다는 것도 어른들 생각이지. 어린이 입장에서는 연습을 거듭한 지금이 가장 잘하는 때다.
나이가 들며 서툴렀던 내 손도 자연스레 여물어 나에게 소시지 껍질 까기는 더 이상 어려운 과제가 아니었다. 의식하지 않아도 착착착 순서대로 순조롭게 이어졌던 것. 어른이 되어서는 소시지를 사 먹는 일 자체가 줄어들어서 더 이상은 소시지 껍질에 대해 생각할 일이 없었다.
아이 엄마가 된 후 나의 아이가 소시지를 낑낑대며 까고 있으면 '아이인 너한테는 어렵구나. 난 어른이라 잘하지롱!'이라며 속으론 득의양양하게, 그러나 겉으론 무심한 척 아이를 스윽 도와주곤 했다.
그런데 얼마 전에 천하장사 소시지를 오랜만에 먹었는데, 아니 세상에, 빨간 부분을 잡아 밑으로 끌었는데 중간에 똑 끊겨버린 거다. 아직 옆면을 다 까지 못했는데!!! 결국 먹기는 잘 먹었지만 가장 아랫부분은 깨끗하게 먹지 못하여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아니, 이거 아이와 어른의 숙련도 차이인 줄로만 알았는데 맥스봉과 천하장사의 차이였나? 그러고 보니 그동안 맥스봉을 주로 먹었고, 천하장사는 오랜만에 먹은 것 같기도 하고.
짜증이 좀 났지만, 어떤 어른은 어떤 방면에서 여전히 서투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직 연습을 거듭하여 성장해야 하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