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일기
초록이 선명한 날들이다.
이 곳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처럼 무덥지도 끈적이지도 않지만, 사방이 초록 초록한 들판과 해 질 녘 살랑거리는 바람에 흔들리는 야자수 잎을 보고 있으면 '아, 여름이다아' 하고 느끼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사우스 베이 쪽은 내가 살던 서울이나 뉴욕처럼 사계절이 뚜렷하지 않아, 어제가 오늘 같고 오늘이 내일 같은 약간은 단조로울 수도 있는 하루들을 마주하게 된다. 1년 전 이 곳으로 이사 왔을 적에 누군가가 내게 이 곳은 항상 같은 날씨 때문에 세월이 곱절은 더 빨리 가는 느낌이라고 투덜거리듯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제야 알 것도 같다. 하지만, 사우스베이 2년 차 거주인으로서 내가 느끼는 이 곳의 날씨는 단조로움이 매력인 것 같다. 예상 가능한 날씨와 예상 가능한 동선과 일정들. 단조로움 속에서 찾아내는 소소한 행복의 조각들. 이게 이 곳의 가장 큰 매력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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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금요일이다. 늦은 저녁과 이른 밤사이.
예정되어 있던 저녁 약속은 취소되었지만 집에서 쉬고 싶었던 마음도 컸기에 갑자기 생겨난 금요일 밤의 홀로 시간이 막막하거나 심심하지 않다. 오히려 잘되었지 싶다. 꽤나 긴 한주였다. 일 끝나고 집에 와서 쉬어도 뒤돌아서면 다시 피곤해지는 그런 날들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번 한 주가 유독 길게 느껴졌는데, 중간중간 잡다하게 드는 오만가지 생각들과 이상한 감정들이 뒤죽박죽 섞이기까지 하니, 뭔가 보이지 않는 무형의 것과 홀로 싸우고 있는 느낌이랄까. 그래서 오늘 밤은 나를 위한 숨을 고르는 밤으로 치련다. 어제와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이지만 하룻사이 잠시 동안이라도 나는 새로운 생각과 감정들을 마주했고, 스스로를 다독였고, 나의 방식으로 표현했다. 차분차분 고르는 숨들 속 정답은 아니지만 나름의 위안을 주는 것들이 분명 있다. 예컨대 퇴근길 양 옆으로 보이던 초록 들판의 탁트임을 보고 --- '아, 여름이다아!' 하고 외친 것처럼.
'아, 여름이다아!'
2019년 7월 19일 금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