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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Apr 07. 2021

미국 아빠

스무 살 무렵부터 내 꿈은 '미국 아빠'였다. 대뜸 '미국 아빠'라고만 하면 오해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미국 국적을 취득하고 싶다거나 아이들을 미국에서 키우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미국 아빠'는 그러니까, 할리우드 영화 속에 등장하는 아빠들을 통칭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내가 아는 가장 이상적인 아빠였다. 작품도 다르고 배우도 다르지만 그들은 명문 아버지 학교를 동문수학한 것처럼 하나같이 바람직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할리우드 영화는 아메리칸 프로파간다의 최우수 사원답게 미국 사회가 원하는 아버지상을 보여줬던 것도 같다. 굵은 팔뚝과 잔디깎기로 수신과 제가를 하는 아메리칸 파더. 천조국이 치국 평천하하는 근간은 모두 단란한 가정에서부터 비롯되었음이라. 아! 팍스 아메리카나!


미국 아빠의 아침은 아들을 바래다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학교로 뛰어가려 하는 아들을 불러 세워 "뭐 잊은 거 없어?"하고 키스를 받아내고 꿀팁도 잊지 않는다. 헤이 주니어 혹시 싸울 일이 있다면 코를 노려. 대디의 말을 잘 듣는 아들이 기어이 친구 코를 박살 내놔서 마미가 "너 누가 그러라고 했어?"하고 혼내면, 엄마 뒤편에서 팔을 엑스자로 그으며 고개를 세차게 젓다가 낌새를 채고 뒤를 돌아본 엄마한테 딱 걸려서 부자가 쌍으로 혼쭐이 난다. 나란히 풀이 죽어서 집을 나서다가도 서로 손장난을 투닥거리고, 역시 아빠를 닮아서 주먹이 매섭다며 다친 손등에 약을 발라 주기도 하는. 연애 문제나 친구 사이의 문제를 편하게 상담해 줄 수 있고, 경청한 후에 깨알 팁도 전수해주는. 근데 또 직장에서는 완전 샤프하고 능력자여서 두루 인정받는 건 기본에, 허리케인이 올 거라는 뉴스에 아들보다 큰 빠루를 챙겨 들면서 "이건 할아버지가 아빠한테 준 선물인데, 남자는 자기 가족을 지킬 수 있어야 해"라는 대사와 함께 창고를 손보는, 그런 미국 아빠. 요새 말로 '미국 아빠 재질'의 한국 아빠가 되고 싶었다.


스무 살에 갑자기 그런 꿈을 가진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그때 만나던 여자 친구와 달콤한 미래를 상상했던 것은 아쉽게도 아니고, 오랜 꿈이 그제야 구체화되었다는 게 정확하겠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역할에 대한 꿈이 있었다. 아버지 같은 아버지는 되지 않으리라 하는 막연한 꿈. 자고로 어린 시절의 꿈이라는 게 밝고 희망차야 하는 것일 텐데, 가장 가까운 핏줄을 미워하는 뾰로통한 꿈을 나름 진지하게 꾸었더랬다. 꽤 오랫동안 아버지를 미워했고, 그와는 다른 아버지가 되리라 다짐했었다. 사자소학에서 '타산지석'이라는 사자성어를 처음 배웠을 때는 아버지를 떠올렸다.


'누구처럼은 되지 않으리라'에서 '누구처럼 되리라'로의 전환이 일어난 게 스무 살이었다. 할리우드의 아빠들은 내 아버지의 여집합과도 같았다. 친구처럼 편하고, 다정하고, 자상하고, 든든하고, 책임감이 있었다. 미국 아빠들의 장점들을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 아버지의 단점이 무엇인지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배경을 파낼수록 형체가 명료해지는 양각 판화처럼 아버지에 대한 나의 내적 갈등은 형체를 갖춰나갔다. 미움에 이유가 붙은 순간부터는 브레이크 없이 내달렸다. 이해보다는 미움이 편했고, 이유 없는 미움보다는 설명 가능한 미움이 쉬웠다. 한동안은 속 편하게 아버지를 미워했다. 누굴 좋아하는지 아닌 지 헷갈리는 순간에 좋아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자인해버리면 호감이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것처럼, 아버지에 대한 미움도 그랬다.


"그게 위선이라고"


20대 초반의 숱한 술자리 가운데 하나였다. 동틀 무렵 감자탕집. 몇몇은 졸고, 몇몇은 전화통을 부여잡고 골목으로 사라지는 그런 평범한 날이었다. 진심을 전하는데 서툰 남자애들은 이쯤은 마셔야 술기운을 핑계로 이야기를 꺼내곤 했다. 속을 게워낼 기세로 성급하게 토해내는 속 이야기들. 필연적 이게도 투박한 말들은 누군갈 다치게 하기 마련이었다. 그 날은 그게 위선이라는 비난이었고, 그 대상이 나였을 뿐이었다.


시작은 공통점에서부터 였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어울렸던 우리들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우리는 모두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서로가 서로의 어색한 부자지간을 알게 된 이후로는 묘한 동질감이 생겼다. 그 속에는 나만 아버지와의 관계가 유별난 게 아니라는 안도도 섞여 있었다. 안도와 동질감을 안주 삼아 우정은 더욱 돈독해졌다. 그 날은 우리가 이렇게 친해지게 된 게 그냥 우연인지 아니면 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이들 사이에 어떤 인력 같은 게 있는 것인지 하는 화두가 던져졌다. 가장 극렬하게 아버지를 성토하며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나에게 친구는 말했다. 어떻게든 자식은 부모님을 닮을 수밖에 없다고. 다정한 부모님의 슬하에서 자란 애들은 기질이 다르다고. 네 본질은 그렇지 않은데 자꾸 다정해지려고 노력하는 거라고. 그게 위선이라고 했다.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소리라도 지르고 싶었지만, 소리치는 순간 정말 아버지를 그대로 답습하는 것 같아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술기운도, 그 이후의 기억도, 심지어는 그중 몇몇과는 인연마저도 휘발되었지만, 그 대화는 지금까지 남아있다. 술자리에서 가장 먼저 휘발되는 것이 말이라고 누가 그랬는지.


그로부터 15년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타고난 천성이나 기질이라는 게 있지만, 성장하면서 충분히 바뀔 수 있다. 부모를 본다고 모든 자식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가정환경이 그 사람의 인격 형성에 전부도 아니다. 하나를 보면 열을 알 수 있지만 열을 보고도 하나를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사회생활을 하며 믿음이 흔들리는 순간도 많지만 애를 써가며 여전히 믿고 있다. 사람은 바뀔 수 있는 거라고. 이렇게 써놓고 나니 마치 내가 이상적이거나 따뜻한 사람인 것 같지만, 부끄럽게도 나는 둘 다 아니다. 나는 순전히 내가 바뀔 수 있다고 변호하기 위해서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가 너무 별로라고 느껴져서 견딜 수 없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아버지를 답습하는 나를 발견할 때가 그렇다. 갈등을 회피하려 하고, 말만 앞서고, 자기 과시적이고, 나태하고, 비겁하고, 무책임하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이 나한테도 있다는 걸 알았을 때, 자존감은 바닥을 긁는다. 바뀌려고 노력했는데 천성은 정말로 어쩔 수 없는건가. 역시 어렸을 때 기질이 인성의 큰 부분을 결정해버리는건가. 스스로 부정했던 말들을 다시 되뇌이는 것은 기본이다. 그럴 때면 내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만이 위안이 된다. 과거의 나는 지금보다 더 구렸는데 여기까지 나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도 충분히 더 나아질 수 있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라는 말은 공염불처럼 들릴 뿐이다.


얼마 전에 친구들과 다시 모인 자리에서는 아이들의 이야기가 나왔다. 친구들은 자식에게서 자기의 나쁜 면이 그대로 보일 때 가장 아찔하다고 했다. 처음엔 이게 유전인가 싶어서 신기했는데, 자꾸 반복되니까 그게 그렇게 밉더라는 얘기였다. 친구들은 여전히 진심을 보이는 데 서툴렀다. 결혼 생활도 아이에 대해서도 진심보다 투박하게 말하는 게 미덕이었다. 그런 그들도 취기가 오르면서 점점 진지해졌다. 둘러둘러 꺼내는 말이었지만 요지는 자식에게 부끄러운 짓은 하지 않고 싶다는 말이었다. 자식에게 부끄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그들의 얼굴은 15년 전의 얼굴과도, 그 아버지의 얼굴과도 달랐다. 잔뜩 취한 나도 그게 새삼스러워 15년 전에는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꺼냈다.  


"위선이 위악보다 나은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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