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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여름 Dec 30. 2020

당신도 분명 좋아하게 될 그녀

먼 훗날 우리 &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 주동우

넷플릭스를 처음 알려준 건 지독한 시네필이었던 친구 A였다. A가 말하길 미국엔 넷플릭스라는 게 있어서 만 원도 안 되는 월정액비(그 땐 구독료가 아니라 월정액이라고 불렀다)로 원하는 영화, 드라마를 다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꼬박꼬박 5천 원씩 내가며 영화를 보는 '굿 다운로더'였던 나는 그건 말도 안 된다며, 걔넨 어떻게 돈을 버냐고 반문을 했다. 그렇지? 금방 망하겠지? 하며 순순히 넷플릭스의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뜻을 모은 우리는, 어쨌거나 우리나라에도 넷플릭스 같은 게 있어서 맨날 영화만 봤으면 좋겠다는 염원으로 결론을 내렸다.


넷플릭스가 생활의 일부가 된 지금에서야 그게 얼마나 부질없는 생각들이었는지 실감한다. 우리가 걱정하던 넷플릭스는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 들이고, 나는 평범한 구독자 중 한 사람이 되어 넷플릭스 홈 화면을 띄워두고 뭘 볼까 망설이다가 금방 딴짓을 하고 만다. 하루 내내 영화만 볼 거라던 호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콘텐츠의 풍요 속에서 오히려 무얼 보아야 할지 가늠을 잡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는 일단 스트리밍 구독료부터 절감하라는 재테크 조언에 뼈를 맞고, 어차피 구독을 끊을 순 없으니 본전 이상으로 열심히 보겠노라 결심을 했다. 그래서 다시 꺼내 들게 된 특단의 비책은 좋아하는 배우 따라가기. 감독, 배우, 각본, 작품성, 평점, 러닝 타임 다 무시하고 오로지 팬심으로 특정 배우의 필모를 역주행하기로 했다. 따지는 게 많아서 어느 하나 쉽게 고르지 못하는 내게 적절한 처방이었다. 그러다 보면 의외의 순간을 마주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평점은 개차반인데 유독 나와 결이 맞는 작품이라든지. 혹은 알지 못했던 어떤 감독의 작품세계로 취향이 확장된다든지.


기대와는 조금 달랐지만 의외의 순간이 찾아오긴 했다. 영화 <먼 훗날 우리>에서 '주동우'라는 배우에게 꽂혀서 그녀의 다른 작품들을 찾아보다가 "과연 매력이란 게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한 가지 답을 찾은 것이었다. 사람들은 종종 설명할 수 없지만 사람들을 끌어 당기는 아우라를 매력이라고 부른다. 객관적으로는 별로인데 끌리는 이성 혹은 눈길이 가는 영화 속 빌런들에게 이상하게 매력이 있다고들 하는 건 모두 매력이 일반적인 기준으로 불가해한 끌어들임을 통칭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애초에 알 수 없고 설명할 수 없는 게 매력이라고 하, 매력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나는 궁금했다. 그래서 매력이 뭔데?


그 질문에 괜찮은 답을 얻게 해 준 두 영화가 <먼 훗날 우리>와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다.   




영화 <먼 훗날 우리>



1. 먼 훗날 우리


영화는 과거 회상으로 시작한다. 10년 전 춘절, 베이징에서 흑룡강성 야오장으로 가는 기차에서 두 사람은 만난다. 야오장은 가상의 지명인데, 하얼빈이 흑룡강성에 있는 도시란 걸 감안한다면 엄청난 벽지인 건 확실하다. 두 사람은 베이징으로 상경(북경이니까 상경이라고 해도 될 듯하다)해서 분투하고 있다. 엄청난 빈부격차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베이징에서 성공을 꿈꾸고 밀려나지 않기 위해 버티는 중이다. 그런 와중에 사랑은 현실을 견디는 힘이 될 수도 있지만, 현실과 공존할 수 없는 사치일 수도 있다. <먼 훗날 우리>는 전자의 낭만과 후자의 센티멘털리즘 사이에서 균형추를 잘 맞추고 있는 작품이다.


영화의 큰 틀은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이외에도 요즘 중국사람들의 여러 면이 비친다. 급격한 자본주의화 속에서 기회를 찾기 위해 무일푼으로 베이징에 상경하고, 누군가의 성공담에 조급해져 질투와 자기혐오에 몸부림치고, 그 와중에 치열하게 사랑도 하지만, 모든 게 서툴러서 실수를 저지르기도 하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청춘의 모습. 큰 땅 덩어리에서 고향과 타향살이가 갖는 의미. 사람과 사람.


주동우는 첫 장면에서 떡진 머리로 사연 있는 미소를 지으며 등장한다. 그리고 첫 등장에서부터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는 순간까지 감정선을 놓치지 않는 연기를 보여준다. 기쁠 때 정말 기쁘게 웃고, 슬플 때 정말 슬프게 운다. 과장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감정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게 정확한 연기가 영화가 표현하려고 하는 여러 이야기를 끌고 가는 힘이 된다.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2.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


두 번째 영화 <안녕, 나의 소울메이트>의 주인공은 영화 포스터의 두 사람이다. 같은 동네에서 함께 자란 두 사람은 평생 서로를 가장 가깝게 여겼다가 또 멀어지기도 하지만 결국 서롤 완전히 떠나지는 않는 '소울메이트'다. 14년의 세월 동안 두 사람이 느끼는 서로의 감정을 요약하자면 동경과 질투이다. 나만큼이나 잘 아는 상대방에게서 나와 다름을 발견했을 때, 미숙한 우리들이 다들 그렇듯 말이다.


주동우가 맡은 '안생'이라는 역할은 둘 중에서 더 자유롭고 더 외로운 인물이다. 친구 '칠월'보다 불우한 가정환경 속에서 일찌감치 아르바이트를 통해서 돈을 벌고, 동네 뮤지션들과 어울리기 시작한다. 안정과 자유로 대비될 수 있을 칠월과 안생의 삶은 두 사람에게 종종 왜곡되어 보인다. 칠월은 안생의 자유를, 안생은 칠월의 안정을 자신이 가진 것보다 부러워하면서 동시에 무시한다. 그 왜곡은 평상시에 우정 아래 도사리고 있다가, 갈등이 고조되면 불쑥 튀어나와 관계를 엉망으로 만들어 놓는다. 감춰둔 감정은 눌러둔 스프링처럼 반발력을 가지고 튀어 올라서 본래 의도보다 더 악담을 쏟아놓곤 한다. 친구든 연인이든 가까운 사람에게 맘에 없던 소릴 쏟아내고 후회해본 적 있다면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 영화 곳곳에 놓여있다. 이 영화로 주동우는 칠월 역을 맡은 마사순과 대만 금마장 영화제에서 영화제 최초로 공동 여우주연상을 수상한다.

 



92년생의 중국 배우 주동우는 왜소한 체구에 전형적인 미인상도 아니지만 자꾸 눈길이 가는 배우이다. 아마 사진만 검색해보고 이 배우의 매력을 알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사실 그녀의 매력은 사진보다 영상물에서 빛이 난다. 영화가 사진보다 매력을 담아내기 유리한 매체이기 때문이다. 표정, 감정표현, 어조, 억양, 몸짓. 매력은 움직임에 깃들어 있다. 어떤 배우는 정말 아름답지만 매력이 없다고 하고, 어떤 배우는 그렇게까지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매력이 넘친다고 한다. 작품 속에서 더욱 빛나는 배우는 보통 후자이다.


매력의 정확한 실체는 결국에 알 수 없겠지만, 나는 주동우의 영화들을 보면서 언제 매력이 드러나는지 한 가지 답을 얻었다. 매력은 사진보다 영상에서 더 빛나는 것이다. 멈춰 있을 때보다 움직일 때 더 드러나는 것이며, 프로필 사진의 정제된 표정보다 웃거나 울 때 더 도드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확신한다. 주동우의 영화를 보고 나면 당신도 분명 그녀를 좋아하게 될 거라는 걸. 마치 "I like watching you move"라는 영화 <love affair>에서 아네트 베닝이 남긴 명대사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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