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신긍정 Jun 11. 2022

작고 소중한 성실함의 가치

성실함이 무시받는 세상에서  따뜻한 위로가 되길 바라며

대퇴사의 시대.

코로나 이후 직장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하죠.

이런 말도 생기고 있어요 Antiwork 

일을 하지 않는 운동. 

대퇴사의 시대와 안티워크는 "일을 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졌기에 일을 해봤자 힘만 든 세상에서 덜 풍요롭지만 편안하게 살기 위해 선택하는 현상이라고 해요.  

그런데 저는 또 다른 의미로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성실하게 일하지 않아도 큰돈을 버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 허탈감을 이기지 못해 노동을 포기하거나, 너무 작아진 노동의 가치가 시시해서 한 탕을 위해 떠나는 시대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최근에 많이 보이긴 했어요. 

코인, 주식, 갭 투자.. 

성실한 노동력이 아닌 돈이 돈을 버는 구조. 

돈이 돈을 벌기 때문에 나의 성실함이 아닌 대출로 받아낸 종잣돈 또는 물려받은 자산을 굴리기만 하면 늘어나는 재산. 

열심히 일해서 벌려고 하면 반편생을 일해도 벌지 못할 돈을 일주일, 한 달이면 벌었다는 얘기는 저도 많이 들었습니다. 듣다 보면 땀 흘리는 사람은 바보같이 여겨졌고, 정보를 듣고 투자를 해야만 남들처럼 살 수 있다는 확신이 들곤 했어요. 불법은 불법이 아닌 똑똑함이었고, 무분별한 투기는 알짜배기 투자, 현명한 투자라는 이름으로 불리곤 하더군요.  

성실하게 일만 하면 바보고, 정보를 모으고 대담하게 투자를 해야 부자가 되는 세상.

그리고 부자가 진리고 정의인 세상. 

성실함은 미련함이고, 돈이 최고며 돈은 언제나 옳고 돈은 돈이 번다는 논리가 만연해진 것 같습니다. 


노력이 아닌 정보와 감각으로 쌓아가는 재력. 

가끔 들을 때는 저도 그런 게 부러웠습니다. 그런데 자주 듣다 보니 그래도 되나? 하는 의심이 생겼고, 

정보와 감각은 내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어요. 


저의 20대는 친구들과 함께 실험실에서 실험하고 논문 쓰는데 다 보냈고(물론 해가 지고 달이 뜨면 젊음이 그렇듯 술 마시고 놀고 싸우고 화해하고 그랬습니다), 30대는 취업-퇴사-재취업의 반복이었습니다. 

사실 세상에 불만이 많았어요. 왜 나의 노력은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하는가? 왜 나의 열정은 쉽게 여겨지는가? 왜 세상은 공평하지 않은가? 이런 불만이 상당히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사건 사고를 겪고 헤쳐나가면서 이 모든 경험이 내 것이고, 고난을 때려 맞고 헤쳐가면서 또 하나 알아간다는 짜릿함도 있었지요. 

여러 회사를 다녀보면서 겪은 일을 술자리에서 풀면, 이걸 드라마로 쓰면 개연성 없는 막장드라마라고 시청자들이 욕한다는 얘기도 많이 들을 정도로 다이내믹한 사회생활을 하면서 고생도 많이 했지만 그러고 돌아서는 길엔 내가 해냈다는 짜릿함, 우리가 함께 이겼다는 성취감, 그리고 이 경험은 우리만 했고 이게 우리의 자산이라는 자부심, 이런 경험들이 쌓여서 또 다른 내가 만들어져 간다는 뿌듯함이 있었어요.


40대가 되니, 전에는 몰랐지만 지금은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그중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건 인생은 길고, 그 긴 인생에 비해 세상은 빨리 변하며, 그렇기 때문에 인생은 어떻게 풀릴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성실하게 쌓은 경험은 살아가는데 반드시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성실하게 닥치는 대로 몸으로 익히고 쌓은 내 경험은 아무도 훔쳐갈 수가 없어요. 주식과 코인은 어느 순간 나랑 상의 없이 나락으로 내려가거나 상장폐지당하는 일이 있지만, 내 경험은 나 몰래 배신하지 않습니다. 


20대에는 비인기학과인 농업대학을 다녔습니다. 근데 다니다 보니 학교 다니는 게 재미있었고, 실험하는 게 좋았어요. 더 눈치 있고 똑똑했다면 유학을 준비해서 다녀왔을 텐데, 순간의 재미에 빠져서 취업과 나의 미래는 생각하지도 않고 실험만 하다 보니 어느덧 석사, 박사 과정을 마치게 되었습니다. 

한참 열심히 연구할 때는 화분에 흙 담아서 식물 심고 물 주고 크기 재고 그러다가 더위 먹고 실신한 적도 있고, 어느 겨울에는 폭설로 연구동이 무너져서 비닐하우스를 해체하고 다시 세우고 실험을 한 적도 있었어요. 실험농장을 빌렸더니 돌밭이라 친구들과 돌 골라내느라 몇 주를 허비한 적도 있었지요. 새벽에는 물 주고, 낮에는 조직 배양하고 밤에는 추출하고 통계내고 논문 쓰고 그러다 누가 부르면 나가서 술 먹고 다시 돌아와서 허벅지 꼬집어가며 논문 보고 그런 기억도 선명하네요. 

학위를 마치고 드디어 현실에 눈을 뜨게 되었어요.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장학금으로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취업을 준비하겠다고 공백을 둘 수 없던 상황이라 닥치는 대로 이력서를 내고 취업을 준비했었습니다.  그런데, 비인기학과인 농업분야로 국내에서 박사까지 한 여성 연구원에게 주어진 일자리는 아주 좁았고, 여기에 나의 지리적 여건과 하고 싶은 일을 더하고 결혼과 출산의 문제까지 겹쳐지다보니 연봉, 복지 그리고 근무조건의 일부는 포기해야만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30대는 10대, 20대보다 더 치열하게 살았어요. 희한하게 새로운 일을 많이 맡았고, 희한하게  다양한 분야의 일이 엄청나게 주어졌기 때문에 닥치는 대로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었습니다. 야근은 물론 주말에도 일을 하는 경우가 많을 뿐 아니라 너무 급해서 출퇴근길에 휴대폰으로도 자료를 찾아보고 검색하고 그런 일이 많았고, 큰 산을 하나 넘으면 더 큰 산이 나타나고 그랬죠. 그때는 그 모든 것이 너무 부당해서 많이 싸우기도 했고 덕분에 퇴사와 입사를 반복하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지금은 그때의 피땀 눈물로 획득한 경험 덕분에 어떤 일을 맡아도 놀라지 않고 과거의 기억을 꺼내서 활용하곤 합니다. 그냥 주어지지 않았기에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고, 쉽지 않았기 때문에 더 오래 기억하게 되더군요. 


미친 듯이 쌓았던 성실함은 시간이 지나고 나니 큰 무기가 되었습니다. 지난 10년은 사실 우리나라에 지속적으로 취업난이 있었죠. 그런데 저는 취업이 어렵진 않았습니다. 다양한 경험을 성실하게 쌓다 보니, 제 경험이 필요한 회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고 이력서를 많이 내볼 수 있었어요. 그래서 면접보고 합격해서 다녀보면 저의 A 경험이 필요해서 채용했는데 함께하다 보니 제 과거의 B, C 경험이 도움이 되기도 하고 시너지가 생기고 그러다 보면 D, E , F 일도 해보게 되고 하면서 경험의 폭이 점점 넓어지더군요. 


쓸데없이 왜 겪었는가 싶었던 자잘한 경험도 나중에는 도움이 되고, 하다못해 선배들과 싸웠던 경험까지 업무에 활용할 때도 있었습니다. 이 사람 왜 이러지? 싶을 때, 아! 나 이런 유형이랑 싸워본 적 있다. 그때 나는 그렇게 해서 된통 혼났는데, 다른 애는 어떻게 했더라? 그래! 이거지! 하면서 활용하는 날이 생기더라고요.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면, 한 순간의 행운은 달콤하지만 쉽게 잊히고, 쓰고 떫었던 경험은 잊히지 않고 온전히 내 것이 되어서 언젠가는 다 써먹게 되더군요. 내가 닥치는 대로 쌓은 나의 경험은 다 언젠가는 세상살이에 써먹을 온전한 나만의 자산이 되지요. 이 경험이란 자산은 언제가 될지는 모르지만, 반드시 언제 한 순간은 나에게 돈이건 명예 건 무언가를 가져다주는 것 같아요.


내가 성실하게 움직이며 내 몸과 기억에 새겨 넣은 나만의 경험은 내 것이고, 돈은 누가 털어갈 수 있지만 내 경험, 내 습관, 내 기술, 내 재능은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온전히 나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가치이지요. 


성실함이 무시받는 대혼란의 시대. 

저는 대퇴사의 시대를 대혼란의 시대라 부르고 싶습니다.


우리 모두는 혼란스러운 거예요. 갑자기 달라진 노동의 가치, 갑자기 오르는 부동산과 코인. 

한탕주의가 만연하고, 성실하게 저금만 하면 바보라고 했었죠.

그런데, 요즘에는 금리가 오르고 주식과 코인이 급락하고 부동산도 하락하면서 적금에 대한 인기가 높아지고 있더군요. 적금은 최소한 원금을 까먹지는 않으니까요. 

경험은 적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씩 쌓이지만 절대로 잊히지 않아요. 


수명이 점점 더 늘어가고 있고, 백세시대를 지나 120세 시대라고도 합니다. 

우리가 경험을 쌓을 시간이 더 늘어나고 있다는 뜻이지요.

저는 세상에 하찮은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언제나 하찮음이 쌓여서 위대함이 되기 때문이지요. 하찮음은 꾸준히 쌓이기만 한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위대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고 다만, 가장 위대한 것이 꾸준함이라고 믿고 있어요. 

누군가는 쉽게 잊힐 한 탕에 집중할 때, 누군가는 성실하게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30대에 시작한다고 해도, 성실하게 작게 조금씩 쌓이는 경험이 30년을 채우면 우리는 고작 60세예요. 요즘 60세면 뭐 등산 따위는 거뜬할 정도로 건강하기 때문에 새로운 인생을 출발하기에 충분합니다. 

내가 60이 되었을 때 누가 털어가려고 마음만 먹으면 털릴 수밖에 없는 재산만 갖은것보다는 뭐든 해볼 수 있는 경험을 쌓아둔 쪽이 인생살이에 더 유리하지 않을까요? 


인생살이의 다양한 경험을 내 몸에, 내 기억에 강렬하게 새겨 넣지 않으면 우리가 넘어졌을 때 다시 일어날 수 없어요. 직접 움직이고 경험한다는 것은 상당히 굉장한 일입니다. 

그래서 할 수 있을 때 더 많이 경험하고 익히고 내 몸과 기억에 새겨 넣어야 합니다. 

경험에는 우위가 없는 것 같아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폭넓은 경험은 언제나 유용하게 사용될 테니까요. 

급변하는 세상이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데려갈지는 모르겠지만, 우리에게 새겨진 경험은 어떤 변화에서도 적절히 대응하면서 넘어진 우리를 또 일으켜줄 거예요. 


직장을 다니다 보면 왜 나만 이런 하찮은 일을 하지? 아니 이만큼 부려먹고 돈을 왜 요렇게 조금만 줄까? 이 시간에 남들은 한 탕 한다던데. 이런 생각이 참 많이 듭니다. 

그런데 이 하찮음이 쌓여서 나만의 위대함이 되고, 이 억울함이 쌓여서 나의 지혜가 되고, 이 서러움과 분함을 쌓아가면서 나만의 극복 노하우를 키우다 보면 살면서 겪을 또 다른 어려움을 가뿐하게 넘길 수 있는 더 강한 내가 될 거라고 생각하면 조금 힘이 나더라고요. 

지금의 나에게 주어진 하찮은 일들을 반복하면서 내 안에 경험을 쌓다 보면 오늘의 하찮음은 내일의 위대한이 될 거예요. 그리고 나에게 주어진 시련과 고통은 이 또한 반드시 지나간다고 믿고 이겨냅시다. 오늘의 성실함을 지탱하기 위한 고난은 지나고 나면 우리의 자산으로 남아 더 강하고 튼튼한 멋쟁이로 거듭나는 밑거름이 될 거예요.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 

우리 흔들리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봅시다. 

변화와 사기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흔들리지 말고 성실하게 살아봅시다.

서로 보듬어주고 위로하면서 꿋꿋하게 성실함을 이어갑시다. 

성실함을 함부로 대하지 말고, 참아내는 인내를 우습게 보지 맙시다. 

역사가 증명한 노력의 가치를 잊지 맙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