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발랄 Aug 09. 2022

마흔 살의 꿈  

꿈.을.찾.아.서.떠.난.다.

꿈을 찾아서 떠난다. 


꿈.을. 찾.아.서. 떠.난.다.


이발랄씨는 그렇게 여덟 글자를 힘주어 적었다. 


나이에 따라 변하는 말이 있다고 생각한다. 위에 적은 문장도 그 중 하나다.

스무살에 꿈을 찾아서 떠나는 이는 반짝반짝 빛난다.

봄바람처럼 달콤하고, 보는 이마저 설레게 한다. 


스물 하고, 아홉해를 더한 나이, 스물아홉.


스물아홉에 꿈을 찾아 떠난다는 건 달랐다.


이발랄씨는 스물 아홉살의 나이에 꿈을 찾아서 떠난 적이 있었다. 그때 그녀는 불나방처럼 꿈을 향해 뛰어들었다가, 혹독한 현실 앞에 타죽을 뻔했다. 탈출도 쉽지 않았다. 무모한 도전이 실패했을 때에는 야박한 평가가 따른다. 그래도 이대로 사회에서 내 이름이 지워지는 것은 싫었기에, 이번엔 도전이 아니라 안전한 선택을 했다. 간신히 이직을 했고, 새로운 환경에서 8년 가까운 시간을 나름대로 커리어에 꽃을 활짝 피우려고 애썼다. 동료들은 더할 나위없이 친절했고 업무강도도 견딜만 했지만, 문제는 하락세인 업계였다. 아무리 꽃을 피우려고 해도 더이상 꽃이 피지 않았다. 땅이 점점 황폐해져가는 것을 느낄 무렵, 그녀는 운좋게 육아휴직을 쓰게 되었다. 집에서 아가를 키우며 지내다보니, 영양가 없던 흙에 대한 기억 따위는 희미해졌다.

 

복직이 끝나고 다시 '농부'로 돌아가산지 두달이 지났을 무렵, 그녀는 깨달았다. 


흙은 이미 말랐고, 벌써 오랫동안 비는 오지 않고있다는 걸. 

눈치를 채고 이미 떠난 사람들도 있었다. 회사가 휑하고 어수선하게 느껴지는 것은 재택근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 땅이 좋았다. 타죽을 뻔한 자신을 데려와 먹여주고 재워준 곳이었다. 팀장과 막내만 나오는 회사의 자리에 고집스럽게 출근하며 꿋꿋이 지켰다. 이땅에서 아름다운 정원을 가꾸고 싶었다. 그렇지만 땅은 적막했다. 뭔가를 심어보려고 하면 엉겅퀴가 무섭게 솟아났다. 


그래도 엉겅퀴만 뽑으면 해볼 만할 것 같았다. 저녁금식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발랄씨의 혈기가 없어지진 않았다. 거대한 엉겅퀴를, 이발랄씨는 베어내지 못하고 실패했다. 불명예와 함께, 몸과 마음만 다친 이발랄씨는 오늘 휴가를 썼다. 이럴 때에는 하루를 쉬어줘야지 회사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지고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다는 걸, 경험이 알려주었다.  


우산을 쓰고 도서관에 와서, 이발랄씨는 생각한다.


회사를 그만두고 이루고 싶었던 꿈에 대하여.

가슴 속에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씨앗, 오랜 꿈에 대하여.

그리고, 

그 대가로 버려야하는 연봉과 편안한 삶에 대해서.


꿈.을. 찾.아.서.떠.난.다.


마흔 살에 이 말은 스무살 때처럼 향기롭지 않다.

절박하고 막막한 마음만 쇳조각처럼 남았다.

그래도 역시, 이 쇳조각을 잘 다듬어 보고싶다. 

내 씨앗을 심을 곳으로 향할 문의 열쇠가 되어주길 바라며.  


그래도 타죽긴 싫은데,

이번엔 불나방이 아니라 무엇이 되어야 할까?


모르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여름밤의 살구 설탕절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