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윙 시끄러운 핸드피스 소리들 사이에서도 근관치료의 시간은 의외로 조용하게 흘러간다. 환자들은 치료받을 생각에 긴장했던 몸과 마음이 어느새 스르륵 풀리곤 한다. 입이 다물어지기도 하고, 달그락거리는 기구를 만지는 손만 분주히 움직일 뿐, 진료실 안은 고요하다. 착착 탁. 드라마처럼 “메스” 따로 말하지 않아도, 마스크 너머 교감하는 눈빛으로 내 손에 원하는 기구가 쏙 하고 들어온다. 나의 위생사 샘, 그녀는 과묵한 편이다. 처음엔 내가 예측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마다 꽤나 당황하곤 했던 그녀가 이제는 ‘얘 또 그러겠지’라며 생각하는 듯 자연스럽게 적응했다. 그녀와의 팀워크가 무르익은 건, 서로를 이해하려는 다정한 노력 덕분이리라.
진료실은 단순히 환자와 의사만의 공간이 아니다. 진료실에서는 어시스트와 술자, 그리고 환자, 이 셋이 마치 한 무대를 이루는 배우들처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치대생 시절, PK 기간 동안 직접 어시스트로 나섰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나 또한 술자의 손 움직임과 말 한마디까지 집중했던 순간들을 거쳐 왔기에 얼마나 품을 들여 합을 이룬 건지 그녀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치과 진료는 세밀한 합의의 예술이다. 의사 선생님마다 선호하는 진료 스타일이 조금씩 다른데, 장갑 사이즈 하나부터 기구를 배치하는 방식까지 개인마다 천차만별이다. 예를 들어 어떤 선생님은 근관 탐침(endodontic explorer)을 항상 손에 쥐어야 마음이 놓이는 반면, 또 다른 선생님은 그것이 매번 필요하지는 않다. 우리 치과에는 세 명의 선생님이 계시다 보니, 각 스타일에 맞춰 변화를 주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작은 디테일 하나에도 세심함이 요구된다. 만약 이런 까다로움에 대해 성토대회를 연다 해도 그저 '힘들지' 머쓱하게 위로하고 묵묵히 원망을 들을 수밖에 없으리라.
술자뿐만 아니라 위생사 선생님들도 각자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조금씩 달라, 나 또한 진료실에서 이 차이를 조율하고 서로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을 필수적으로 거치게 된다. 각각 다른 예로, 한 분은 시간을 철저히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다른 한 분은 정해진 진료 순서를 꼼꼼히 따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기도 한다.
시간 엄수는 단순히 효율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치과에서 환자가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중 하나가 대기 시간이다. 예약 시간이 지연되면 환자는 불편함을 느끼고, 그 불편이 때로는 불만이나 컴플레인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시간을 정확히 지키는 것은 환자와의 신뢰를 유지하고, 긍정적인 진료 경험을 만드는 데 기본이 된다.
한편, 진료 순서를 지키는 것 또한 치료의 완성도를 높이는 핵심이다. 진료 과정을 마치 길을 따라 걷는 여정에 비유하자면, 정해진 순서를 지키지 않고 무턱대고 나아가다 보면 길을 헤맬 수도 있다. 반면, 정해진 순서를 따르며 나아가면 복잡한 길을 돌아가지 않고, 디테일을 놓치지 않으면서 최적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숲 속을 걸으며 풀과 나무를 모두 관찰하듯, 진료에서도 꼼꼼함이 빛을 발한다.
어느 것이 더 좋고 나쁨이 없지만, 시간 우선 위생사 샘과 만나면 가장 핵심적인 치료를 빠르게 진행한다. 내가 시간 단축을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이면 어시스트도 덩달아 신이 나서 더 열정적으로 진료에 임하는 경우가 있다. 진료 순서 우선 위생사 샘과 만나면 어시스트의 손이 내 손이오 찰떡같이 기구의 주고받는 합이 맞아 치료에 몰입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나와 위생사 샘 사이 스타일의 균형을 잘 잡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함께 가는 동반자라는 표현이 진료실의 팀워크를 가장 잘 설명한다. 한 번 내가 길을 잃을 때, 그녀가 미리 준비한 기구와 재료가 방향을 찾아준다. 반대로 그녀가 바쁜 와중에는 내가 미리 환자를 준비해 그녀를 도울 때도 있다. 서로의 배려가 큰 위로로 다가온 순간들마다 우리 사이에 형성된 믿음과 유대감이 느껴진다.
한 사람의 역할이 흐트러지면 진료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에, 진료는 마치 액션 배우들처럼 짜인 구성 안에서 유연하고 화려한 액션 합을 맞추는 과정 같다. 원펀치 강냉이 날리던 신혼부부처럼 서툴던 시절을 지나 서로를 이해하며 보완해 가는 과정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루 이틀 만에 이루어지진 않지만 결국 시간이 지날수록, 각자의 장점을 극대화하며 자연스럽게 합이 맞아간다. 이렇게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이야말로 치과 진료실을 하나로 묶는 중요한 연결 고리이다.
잘 짜인 액션합을 보여주는 진료실은 매일이 탐색전이다. 시나모롤 마니아에 야구를 좋아하는 그녀와 보라색 수술모자만 쓰는 나. 서로의 습관과 선호도를 파악하며, 때로는 알코올 솜 하나, 선호하는 석션 위치, 환자 눕히는 각도까지 "이런 것까지 챙겨준다고?"라는 놀라움을 주기도 한다. 티키타카를 이어가며 매일 저녁 6시 반 퇴근이라는 목표를 향해 맹렬히 달려간다. 가끔 술자와 어시스트, 환자 3인 4각 경기처럼 세 명의 합이 완벽하게 맞는 날에는 누구도 마음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모두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품에 안고 뿌듯하게 퇴근하기도 한다.
이러다 문득, 나는 정말 많은 사람의 도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그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두둥실 떠오른다. 혼자서는 살 수 없다는 진리를 새삼 깨닫는 순간들이다. 서로에게 의지하며, 부족한 부분을 메우며 함께 나아가는 진료실의 풍경은 내 일상 속 가장 큰 위안이자 동력이 된다.마치 맞물린 기계 톱니처럼 서로를 필요로 하기에, 우리 사이가 더욱 빛난다는 것을 알까?진료실의 문을 열며 다짐한다. ‘오늘도 환자와, 그리고 함께하는 이들과 연결된 고리 위에서 최선을 다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