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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 Dec 02. 2024

귀여운 거 최고

무해한 존재에 대한 사랑

 요즘 참새 방앗간처럼 들르는 문구점이 있다. 오늘은 정말 자제해야지 하고 실컷 구경을 하다 보면 마음속에 정해둔 시간이 지났지만 왠지 그곳에서는 한 발짝도 나올 수가 없다. 그만큼 평소에 귀여운 것을 정말 좋아하기에 앙증맞은 모양새를 볼 때마다 동태같이 초점 없던 눈이 자동적으로 반짝반짝 빛난다. 소소함을 표방해 이것저것 사 모아 합쳐보니 아뿔싸 금액은 소소하지가 않다. 텅텅 비어버린 주머니에 잠시 슬펐지만 이내 ‘귀여우면 최고야!’를 외치며 회복한다. 어릴 적 쌈짓돈으로 사던 팬시용품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것 같아 당장 쓸 일은 없지만 주섬주섬 사 모으게 된다. 선구매 후사용 아니 어쩌면 후수집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날이 있을까요? 꿈을 찾게 되는 날이요.' 데이식스의 노래가 귓가에 울려 퍼진다. 어쩔 수가 없다. 손에 들고 있던 바구니를 채울 수밖에.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이런 나의 귀여운 것을 향한 덕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만화 엽서를 사 모으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여기서 덕질 연대기를 읊지 않기에는 입이 너무 근질근질하다. 10대부터 20대 초반까지는 만화책 마니아로서 활자 및 그림을 순식간에 읽어내 순정부터 스포츠, 무협까지 만화대여점을 통째로 섭렵하는 지경에 이른다. 또한 내 인생에서 친구와 단 둘이 떠난 첫 여행은 고등학교 때 놀러 간 부산 벡스코 코믹월드였다. 애니 동아리 회장이었던 덕질메이트와 함께 일러스트, 동인지, 굿즈 등을 구경하고 벅찼던 그날이 20여 년이 지나도 생생히 기억난다. 종이에 그린 천사 일러스트를 코팅한 고리를 품에 안고 돌아와(엄마한테는 예쁜 종이쪼가리였을 것이다) 책가방에 달고 매일 등교해 영롱한 자태를 볼 때마다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20대 후반에는 다 큰 어른이 리락쿠마에 푹 빠져 캐릭터의 고장 일본까지 가서 가진 돈을 털어 인형을 한 아름 안고 돌아온 적도 있다.   

딸이 재워준 리락쿠마들


 나는 왜 이렇게 귀여운 거에 열광하고 중년이 된 지금까지도 손발 오그라들게 좋아하는 것일까. 최근 읽었던 책에서 그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작고 귀엽고 순수한 것들의 특성을 ‘무해(無害)함’으로 범주화하고, 이렇게 무해한 사물들의 준거력 referent power(사람들이 따르게 하는 힘)이 강해지는 현상을 ‘무해력’이라고 명명했다. 무해한 존재들의 공통점은 해로움이 없고, 그래서 나에게 자극이나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며, 굳이 반대하거나 비판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 트렌드 코리아 2025


 학교생활, 사회생활에서 오던 압박감에서 벗어나 오롯이 편안히 있기 위해 귀여움이라는 안전지대를 그토록 오랜 시간 절실하게 찾아 헤맸던 것 같다. 무해한 존재들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결국 돌고 돌아 스스로를 귀엽게 여기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오늘도 정성스레 수집한 예쁜 스티커는 그 존재만으로 사람의 마음을 따스하게 해 준다. 먹지 않아도 배부른 그런 느낌이랄까. 작고 반짝거리는 스티커를 붙이고 있으면 마음에 반창고를 붙이는 것처럼 조금씩 마음이 포근해진다. 그 짧은 순간만큼은 이 세상의 모든 고단함과 잔소리가 잠시 멈추고, 은은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귀여운 스티커를 고르고, 작은 소품을 손에 쥐고, 말랑말랑한 감정을 공유하는 그 순간들이 때로는 나와 다른 사람을 연결해 주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어? 너도 이런 거 좋아해?"라는 짧은 말 한마디가 낯선 사람과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혀주니까. 세상이라는 복잡한 미로 속에서 잠깐 숨 돌릴 수 있는 아지트에서 귀여움은 사실 일종의 비밀통로 같은 것이다. 그 통로를 통해 우리는 잠시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마음 한구석에 숨겨둔 여유와 따뜻함을 꺼내 볼 수 있다. 귀여움은 그렇게 작고 소박한 방식으로 우리를 서로에게 다가가게 만든다.


 어떤 사람이던지 귀엽게 보이면 끝이라고 하지 않나. 여기서 귀여운 할머니가 되고 싶은 꿈을 소소하게 밝혀본다. 스스로의 불완전한 모습도 어여삐 여겨줄 수 있는 여유가 비밀 통로를 통해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가 닿기를. 그러니 오늘도 나만의 귀여움을 찾아볼 것이다. 마음 한구석을 반짝반짝 채워줄 작은 다리를 놓으며 말이다. 뭐, 내가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어차피 귀여운 건 항상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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